1989년 12월29일, 무소속의 이철 의원이 국회에서 신군부 쿠데타 세력의 언론탄압 계획인 ‘K-공작계획’을 공개했다. 

K-공작계획은 1980년 신군부의 집권시나리오 중 언론분야 관련 계획으로 전두환이 주도하던 보안사령부 정보처 산하 별도 대책반이 작성했다. 여기서 K는 왕(王)을 뜻하는 King의 K로 전두환을 왕으로 만들기 위한 공작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1980년 3월27일 ‘언론조종반 운영계획’에 결재했다. 비상계엄 선포 후 언론검열이 장기화하면서 언론의 반발과 검열질서 문란 등 부작용이 파생되고 있으니 언론의 협조를 유도하고 순화하려는 목적이었다. 

▲ 전두환 ⓒ 연합뉴스
▲ 전두환 ⓒ 연합뉴스

신군부 내에선 쿠데타 직후인 1979년 12월 하순경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등이 집권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언론공작이 필수라고 생각하며 적임자를 찾았다. 인사처장 허삼수가 준위 이상재를 허화평에게 추천했고 허화평이 이상재를 보좌관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보안사령관의 보좌관인지 정보처장의 보좌관인지는 또는 보도검열단장의 보좌관인지는 주요 관계자들의 증언이 엇갈렸다. 

이상재는 언론반장을 맡아 K-공작계획을 수립했고 ‘강기덕’이라는 위장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언론반을 처음에는 이상재를 포함해 이아무개(문공부 파견요원), 안아무개(701 보안부대), 김기철(문공부 파견요원) 등 4명으로 구성했다가 K-공작 수행을 위해 확대해 14명까지 늘었다. 

K-공작계획은 8개 항으로 구성했다. 첫째항 ‘목적’은 “단결된 군부의 기반을 주축으로 지속적인 국력 신장을 위한 안정세력을 구축함에 있음”이다. 

두 번째 조항 ‘방침’으로는 “오도된 민주화 여론을 언론계를 통해 안정세로 전환”한다며 “언론계 호응을 유도에 주력”하기로 했다. 박정희 집권기가 끝난 이른바 ‘서울의 봄’ 상황을 “오도된 민주화 여론”이라고 묘사하며 12·12 쿠데타로 자신들이 집권해 ‘안정세’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언론계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보도 검열단을 통한 봉사활동”과 “중진들과 개별 접촉 회유공작 실시”를 계획했다. 

세 번째 항목으로 ‘현 상황과 목표’를 제시했다. 시국관에 따라 정치세력 유형을 ‘민주화 위주’와 ‘안정위주’ 두 가지로 분류하고 ‘안정위주’ 세력을 다시 ‘안보중점’과 ‘경제중점’으로 구분했다. 표현상 국민여론이 ‘민주화가 우세’하고 ‘안보 중점의 안정세력이 열세’인 상태이고 ‘경제중점의 안정세는 잠재’됐다고 진단했다. 

‘민주화 위주의 여론동향’을 ‘열세’로 바꾸고 ‘안정위주 세력’을 확대시켜야 하는데 이중에서 ‘경제중점’은 일부 잠재세력으로 두는 반면 ‘안보중점 안정세력’을 절대적으로 ‘우세’하도록 목표를 세웠다. 민주주의는 혼란한 상황이고 안보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안정적이라고 전제한 국면전환 목표였다. 

▲ K-공작계획서 표지 사진 공작계획의 방침 등이 내용에 나온다. 사진=진실화해위원회 보도자료
▲ K-공작계획서 표지 사진 공작계획의 방침 등이 내용에 나온다. 사진=진실화해위원회 보도자료

네 번째 조항으로 ‘목표달성 기본방안’으로 “보도검열단을 통한 봉사활동”과 “중진들과 개별접촉 – 회유공작 실시”를 규정했고 다섯 번째는 ‘회유공작 세부계획’이다. 

신군부는 회유공작 주 대상자로 언론계 중진 94명을 설정했고 학자와 평론가 등 ‘지식인 투고를 조종’하는 방안과 ‘일반 독자란 활용’ 방안을 함께 강구했다. 94명의 대상자는 7대 중앙일간지와 5대 방송사 2대 통신사의 사장, 주필, 논설위원, 편집국장, 보도국장, 정치부장(차장), 사회부장 등인데 도표로 만들었다. 

이후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서울신문 등 5개 일간지와 KBS, MBC, DBS 등 3개 방송사, 동양통신의 일부 중진간부급 언론인 18명에 대한 1차 회유공작 결과 분석표도 제시했다. 3김(김대중, 김영삼, 김대중)에 대한 지지성향, 시국관 등을 정리한 내용이다. 

회유공작 세부계획을 보면 1단계 80년 3월24일~5월31일, 2단계 80년 6월 한달, 3단계 7월1일~종료시 등으로 정하고 1단계 기간 동안 각사의 정치·사회부장급 이상 94명에 대해 공작을 지시했다. 

그 외 여섯 번째로 ‘계획 실시를 위한 반 개편’에선 소요인원과 업무장악 한계, 장단점을 제시했다. 새로 언론반을 신설한다는 의견부터 언론업무만 전담하는 완전 독립형태의 업무처리방안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일곱 번째 항목으로는 ‘소요예산’을 산정해 제시했다. ‘언론계 중진 회유’와 ‘차장급 이하 대상 여론조성 및 대군부관 개선’, ‘보도 검열단 요원 사기진작’에 필요한 예산을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 책정했다. ‘특수공작 케이스는 제외한다’는 부분도 있는데 문건에 밝히지 않은 비밀 공작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 항목인 ‘참고사항’에는 “본 공작은 극도의 보안이 요구됨으로 K-공작이라 약칭하고, 공작업무 수행과정에서 수정 및 보완을 요할 때는 사전 사령관의 재가를 득한 후 실시한다”고 했다. 

신군부는 K-공작계획에 따라 언론인들 성향을 분석해 ‘양호’ ‘협조희망’ ‘적극’ ‘경계’ ‘소극’ 등으로 평가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의 한 논설위원에 대해 ‘시국관은 안정(경제역점), 정치 주도 세력관은 중산층, 근로자 양심적인 지식인 및 국방 참여자, 3K(3김)지지 성향은 중도’라고 평가했고 정책 주장에 대해 ‘노사 관계 개선과 부정축재 처리, 정치일정 확정 발표’이며 비고 란에 ‘1회 접촉, 양호, 계속 접촉’이라고 기록했다. 분석표를 보면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을 부정하는 언론인을 3회씩 접촉했고 ‘적극’으로 분류했다. 

K-공작계획으로 수집한 자료는 전두환 집권 이후 이뤄지는 언론인 강제해직과 언론사 통폐합 과정에서 참고자료로 활용했다. 또 보안사가 언론 해직자 711명을 3등급으로 나눠 6개월, 1년, 영구적으로 취업을 제한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참고문헌
김주언, 한국의 언론통제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신군부의 언론통제사건 조사결과보고서(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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