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12월17일, 국내 최초의 민간 무선전화방송(라디오방송) 실험이 성공했다. 

이날 조선일보가 주최한 한국 최초 민간 무선전화방송실험을 직접 보기 위해 서울 종로 우미관 앞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이미 실험방송을 했기 때문에 이날 실험은 ‘민간 최초’이며 한국인이 주관했다는 점에서 ‘국내 최초’였다. 무선전화방송은 라디오방송의 과거 표현이다. 

당시 방송 진행자는 조선일보 최초 여성 기자인 최은희 기자였고, 처음 전파를 탄 사람은 독립운동가인 이상재 조선일보 사장이었다. 윤극영의 동요 ‘반달’과 홍난파(홍영후)의 바이올린 독주도 방송으로 전달됐다. 

▲ 1924년 12월18일 조간 2면 '무선전화' "홍영후씨 바이올린 보내는 광경" 사진기사
▲ 1924년 12월18일 조간 2면 '무선전화' "홍영후씨 바이올린 보내는 광경" 사진기사

다음날인 12월18일자 조선일보에는 “홍영후씨 ‘바이올린’ 보내는 광경”이란 사진설명과 함께 홍난파의 바이올린 연주 모습이 실렸다. 

또 이날 조선일보는 <경이의 눈! 경이의 귀!>라는 기사에서 첫 무선전화방송 실험 현장 상황을 보도했다. 해당 기사를 보면 “개최 시각은 11시였지만 여러 가지 준비관계로 아침부터 만원의 성황을 이뤄 오후 1시에나 진행된 것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함이나 매우 미안한 일”이라고 전했다. 

첫날 방송이 인산인해로 지연되자 둘째날과 셋째날은 좀더 넓은 경성공회당으로 옮겼다. 그럼에도 인천, 수원, 개성 등에서 몰려온 사람으로 전차 왕래가 중단될 정도였다고 한다. 

2년3개월 후인 1927년 2월16일 최초 경성방송국이 탄생했다. 

▲ 1924년 12월18일 석간 조선일보 2면. "나팔같은 것들은 우미관 무대에 설치한 무선전화를 받는 확성기(우)" "신비한 소리에 놀라는 관중(좌)"라는 사진캡션이 달린 '무선전화사진' 기사
▲ 1924년 12월18일 석간 조선일보 2면. "나팔같은 것들은 우미관 무대에 설치한 무선전화를 받는 확성기(우)" "신비한 소리에 놀라는 관중(좌)"라는 사진캡션이 달린 '무선전화사진' 기사

한편 1963년 12월17일, 박정희 제5대 대통령이 취임해 제3공화국이 시작된 날이다. 1974년 12월17일에는 대법원이 육영수 여사 저격범인 문세광에 사형을 선고한 날이다. 문세광은 3일 뒤인 12월20일 교수형으로 처형됐다. 

※참고문헌
조선일보, 오늘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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