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다시보기’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PD가 “집 팔아 독립운동 나서는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 이 다큐의 제목은 2013년 방송된 KBS ‘다시 와락! 벼랑 끝에서 희망 찾기’다.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서로 아픔을 다독이는 심리치유 공간 ‘와락 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이명박 정권이던 당시는 노동 현장의 문제는 거의 보도되지 못했던 때라 “독립운동”하듯 제작했다는 말이 이해됐다. 이 다큐도 이례적인 사전 심의 대상이 되면서 불방될 뻔 했다. 최근 KBS가 세월호 10주기 다큐를 무산시킨
경남 마산에는 남성동파출소가 있다. 정확히는 ‘옛’ 남성동파출소다. 지금은 펌프차만 한 대 갖춘 동네 소방서로 바뀐 그 건물. 마산 토박이들에게는 여전히 남성동파출소로 통한다. 택시기사에게 “남성동파출소로 가입시더”라고 말하면 군말없이 그곳 구도심으로 달려갈 테다. 한때는 번성했던 옛남성동파출소 사거리는 이제 젊은이들은 구태여 찾지 않는다. 골목골목 남은 낡은 다방 몇곳이 과거의 활기를 아스라이 떠올리 게 할 뿐이다. 나는 지난해 여름 오후 그 골목 보리수다방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그는 3·15 의거 생존자다. 꽤 다부진 체형에 짙
2014년 5월9일 길환영 KBS 사장은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 “이 아름다운 아들딸들의 희생이 앞으로 대한민국이 안전 사회가 될 계기가 된다면 KBS는 무엇이든지 여러분 입장에서 마음을 헤아리면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10년이 흐른 2024년 봄, KBS 사장의 약속은 거짓말이었다. KBS 사측이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를 4월이 아닌 6월에 하라고 했다.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란다. 세월호 참사가 특정 정당에 불리한 사건이라고 치자. 총선이 4월10일, 방송예정일은
“무능하고 부패한 윤석열 정부는…” 웃자고 만든 정치 풍자 영상에 죽자고 달려들고 있다. 제목도 ‘가상으로 꾸며본 양심 고백 연설’이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경찰 요청에 영상을 접속차단 했고, 경찰은 영상 게시자를 찾는다며 압수수색에 나섰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들을 압수수색 하더니 이번에도 대통령 명예훼손이 이유다. 제작자 스스로 가상으로 꾸몄다고 밝힌 영상인데도 대통령 명예가 훼손됐다며 긴급 심의가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2021년 10월 ‘SNL코리아’에 출연해 “대통령이 되신다면 SNL이 자유롭게
지난 2월 8일 기획재정부는 23년 총세입 총세출 마감 결과를 발표했다. 작년 얼마를 벌고 얼마를 썼는지를 집계해서 발표했다는 의미다. 뉴스를 보면 작년 우리나라 정부가 지출하지 못한 ‘불용’액은 45.7조원으로 역대 최대라고 한다. 연합뉴스가 그린 그래프를 보면 2023년도 역대 최대 불용액의 규모는 그야말로 극단적으로 이례적인 ‘넘사벽’ 규모다. 불용액 규모는 23년 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를 평가하는 주요한 정량 지표다. 23년 대한민국 총지출액은 639조원이다. 나는 23년 대한민국의 본질은 639조원을 쓰는 정치집단이라
흔한 오해와 달리, 소재 측면에서 정론과 타블로이드의 차이는 없다고 지난 글에 적었다. 타블로이드도 정치인을 다루고, 정론도 셀럽을 다룰 수 있다. 다만, 타블로이드는 마구잡이로 보도하고, 정론은 검증하여 보도한다. 차이는 취재 대상이 아니라 취재 방법에 있다. 방법이 다르지 않은 한국의 전통 언론과 타블로이드의 경계는 얇디얇다. 남현희에서 이선균으로, 다시 이강인으로 옮겨갈 뿐이다.방법을 갈고 닦아야 타블로이드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퍼질러 앉아 있으면, 옐로우 저널리스트로 살 것이다. 그리 살기 싫은 기자에게
사과가 없다. 대응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2022년 ‘바이든-날리면’ 사건과 2024년 ‘명품백-파우치’ 사건은 닮았다.대통령 발언을 “바이든은”으로 처음 보도한 MBC는 20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소위에서 법정 제재를 받았다. 음성 감정 결과는 ‘감정 불가’였지만 1심 법원은 정정보도 판결을 냈고, 방심위는 확정판결 전엔 심의 안건으로 올리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심의를 강행했다. 100여개가 넘는 언론사가 “바이든은”으로 보도하고,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바이든은”으로 들었다고 해도 모두 다 MBC의 편향된 첫 보도 때문이라는
보도전문채널 대주주가 공기업인 소유구조가 최선일 순 없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계속된 이 소유구조 속에서 YTN이 언론 신뢰도 1위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공적 소유구조는 구성원들이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게 만든다. 나아가 언론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해당하는 ‘공정방송’을 구조적으로 지탱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심사 없이, 방송통신위원회가, 그것도 5명이 아닌 대통령 추천 단 2명이 쫓기듯 대주주 변경을 승인했다. ‘공공기관 자산 효율화’라는 정부 방침은 “언론장악 하청업자 선정”(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으로 끝났다
‘건국전쟁’의 흥행은 그야말로 이변이다. 일반적인 홍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력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통상 극장 개봉작은 별도의 영화전문 홍보사를 고용한다. 이 홍보사가 각종 이야깃거리를 보기좋게 정리한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면서 기사 노출을 유도한다. ‘건국전쟁’은 이런 역할을 전담하는 별도의 홍보사 없이 김덕영 감독이 SNS로 직접 영화를 알렸고, 그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입소문을 내면서 스크린 수를 늘린 경우다. 한동훈 장관 등 유력 정치인이 관람하면서 기세에 화력이 붙었다. 영화계를 넘어 언론과 정계까지 작품을
올해 5명이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죽었다.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1월12일 한화오션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가스 폭발 사고 나 20대 하청 노동자가 숨졌다. 1월18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는 60대 하청노동자가 3m 높이 계단에서 추락해 중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했다. 1월24일엔 한화오션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30대 하청노동자가 물속에서 선체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다가 사망했다. 2월5일 통영 HSG성동조선에서는 50t 크레인에 깔린 40대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달 12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공장에서는 60대 하청노
설 명절을 맞아 영화 를 봤다. 모처럼 가족 모두 행복한 기분에 푹 젖어 들게 한 작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영화평을 찾아보니 우리처럼 영화를 보고 잔뜩 기운을 얻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 듯했다. 특히 이런 코멘트들이 눈에 띄었다. “보고 나오면 행복한 영화”라고.이런 평을 듣는 작품들은 종종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도 비슷했다. 그러나 행복하고 순수한 라고 해서 영화 속에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건 아니다. 윌리 웡카를 위협하는 초콜릿 연합은 실제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기업
기성 언론사 기자의 삶이 궁금할 때가 있다. 비영리 독립언론인 뉴스타파와 단비뉴스에서 취재를 배웠고, 시민단체에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비영리 매체 ‘뉴스어디'를 창간해 기자가 됐다. 한국 대다수 기자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자가 됐다 보니 염탐하듯, 공부하듯 기성 매체를 기웃거린다. 출입처가 있는 기자의 취재는 무엇이 다른지, 새벽에 경찰서나 파출소를 돈 뒤 보고하는 훈련은 사건을 파악하는 눈을 키워주는지, 얼굴도 본 적 없는 다른 회사 기자를 선⋅후배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물어본 적 있다.최근에도 궁금한 게 생
“우리나라가 발전해야 되겠다는 걸 느낌다. 우리 원수님께서는 정말 그렇지 않은데 우리 사람들이 머리 나쁜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됐는가…” 목숨 걸고 탈북한 노 씨 할머니가 죽을 고비를 십 수 번도 더 넘기며 백두산 중국 경계에서 빠져나와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카메라 앞에서 울먹이며 전하는 말이다. 그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 건 대단한 게 아니다. 베트남 어디에서든 콸콸 흘러나오는 조촐한 물줄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수도시설이 없어 사위가 길어다 주는 물에 의존하며 생활했던 북한에서의 삶이 얼마나 낙후된 것
지난달 22일 밤 충남 서천군 서천특화시장에서 큰불이 났다. 밤사이 점포 227개가 탔다고 한다. 보도사진 속 피해 상인들의 표정에는 허망함이 묻어났다. 23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서의 한 상인의 토로는 더욱 직접적이었다. “두 눈으로 볼 수가 없어요. 이렇게 처참하게 우리의 삶의 터전이 망가지다니….”이 폐허가 된 ‘삶의 터전’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갔다. 윤석열 대통령도 뒤이어 도착했다. 서울 쪽 언론은 이날 두 사람의 만남에 집중했다. 한-윤 갈등이라는 서사가 극으로 치닫던 중이었다. 서천시장에서의 만남은
모처럼 여야가 같은 목소리를 냈다. 여당도 야당도 인구부를 신설하자는 총선 공약을 동시에 발표했다. 문제는 여야가 싸운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여야가 합의했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데 있다. 저출산 관련된 기사는 거의 매일 언론에 나온다. 그러나 홍수가 나면 가장 부족한 것은 깨끗한 물이라고 한다. 저출산 관련 기사가 넘칠수록 오히려 저출산 관련 오해가 더 쌓인다. 저출산 관련된 대표적 신화와 진실을 따져보자.첫째, 우리나라는 저출산 관련 예산을 많이 쓴다? 언론에서 저출산 예산을 꾸미는 수식어는 ‘천문학’이다. 천문학적 예
대법원이 지난해 10월12일 노조 탄압 등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된 안광한 전 MBC 사장의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김장겸 전 MBC 사장의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원심을 확정했다. 노조 탄압 혐의로 김재철 전 사장 또한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형을 받으면서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공정방송을 탄압했던 MBC 전직 사장 3명이 모두 부당노동행위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 ‘공정방송’이라는 근로조건을 위한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안광한‧김장겸 두 전직 사장은 2014년 이후 신사업개발센터, 뉴미디어포멧개발센터
고발장을 받아 수사하는 검사가 누군가에게 고발을 사주했다면, 고발 사건의 수사 과정이 공정할 수 있을까. 2020년 총선 직전,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불리는 부서의 현직 검사가 검사 출신 야당 국회의원 후보에게 고발장을 건넸다. 당시 ‘검언유착’ 의혹을 보도한 MBC 기자들과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을 보도한 뉴스타파 기자가 피고발인으로 등장했는데, “선거 개입을 목적으로 한 일련의 허위 기획보도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이었다.공수처가 이 사건을 ‘국기문란’으로 판단해 손준성 검사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한 이유는 현직 검사가 정치적
몇 년 전, 여성 만화연구자들과 함께 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이라는 제목은 ‘그 비평가가 로맨스 판타지에 고료를 탕진한 사연’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좋아한다는 뜻이기는 했으나, 작품에 고료를 탕진하다 못해 늘 적자를 보는 건 만화평론가들의 현실이었다. 직무 특성상 한 달에 만화로 소비하는 금액만 수십만 원을 훌쩍 넘어서기 때문이다. 웹툰‧웹소설은 도서관과 같은 공공시설에서 볼 수도 없는 데다 전면 유료인 작품도 많아 매번 이용권을 충전해서 열람해야 한다. 이런 말을 꺼내는 건 도서정가제
미디어 감시 매체 뉴스어디는 뉴스타파에서 취재를 배우며 첫발을 내디뎠다. 여러 수업을 들었고, 대부분 유익했지만, 공감이 안 되는 강의 하나가 있었다. 여러 언론사의 데이터 기자들이 모여 경험담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데이터 분석이나 시각화에 문외한 기자와 소통하며 겪은 어려움, 그들로부터 받은 당황스러운 요청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보통의 기자는 데이터 전문 기자가 모든 유형의 자료를 뚝딱 분석해 내는 줄 알고 무리한 요청을 하기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필자도 데이터 분석을 잘 모르는 쪽이라 공감하기엔 지식이 부족했다. 더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야권 심의위원들을 연달아 해촉하더니 결국 대통령의 발언을 ‘바이든’으로 보도한 MBC 등 방송사들이 법정제재를 의결했다. 외교부-MBC 항소심 재판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정치적 행위’이자 윤 대통령 심기 경호를 위한 ‘묻지 마 의결’로, 방심위 역사에서 두고두고 기억될 최악의 법정제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지난 12일 외교부 손을 들어준 1심 재판부는 윤 대통령 발언이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특정하지 못했다. 뜬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