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웹툰 그리는 모습. 사진=Gettyimages.

몇 년 전, 여성 만화연구자들과 함께 <그로탕>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그로탕>이라는 제목은 ‘그 비평가가 로맨스 판타지에 고료를 탕진한 사연’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좋아한다는 뜻이기는 했으나, 작품에 고료를 탕진하다 못해 늘 적자를 보는 건 만화평론가들의 현실이었다. 직무 특성상 한 달에 만화로 소비하는 금액만 수십만 원을 훌쩍 넘어서기 때문이다. 웹툰‧웹소설은 도서관과 같은 공공시설에서 볼 수도 없는 데다 전면 유료인 작품도 많아 매번 이용권을 충전해서 열람해야 한다. 

이런 말을 꺼내는 건 도서정가제 때문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도서정가제에서 웹툰과 웹소설을 제외하겠다는 개정안을 내놨으나 즉각 대한출판문화협회의 반발이 이어졌다. 대형 플랫폼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도서정가제는 필수적이며, 웹툰‧웹소설의 할인 폭이 커지면 시장 안에 있는 다른 콘텐츠의 다양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도서정가제는 말 그대로 도서를 정가에 판매한다는 제도다. 종이책만 아니라 전자책도 해당한다. 웹툰‧웹소설이 도서정가제에 발목 잡힌 것도 전자 콘텐츠라는 특징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책은 단권에 그치지만, 웹툰은 평균적으로 연재 회차가 100회를 넘어선다. 회차별 단가는 100원~300원 단위로 저렴한 편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하나의 작품을 완독하려면 적게는 3만 원, 많게는 10만 원 이상을 지출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러한 연재 콘텐츠 특성 때문에 출판물을 관리하는 국제 ISBN 사무국에서는 웹툰‧웹소설의 ISBN 등록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단일 출판물이 아니므로 전자책과 다르다고 본 것이다.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면 대형 플랫폼이 웃는다는 출판계의 우려도 물론 이해한다. 도서정가제 취지 자체가 대형서점의 독식 구조를 막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도서정가제로 웹툰 플랫폼의 독과점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대형서점과 플랫폼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대형서점이 특정 도서의 할인 폭을 마음대로 조정한다면 동네서점이 분명 위협을 받겠지만, 네이버웹툰이 연재작의 가격을 낮춘다고 해서 중소 웹툰 플랫폼이 영향받을 일은 없다. 서점은 같은 시기 같은 책을 판매해도 상관없지만, 플랫폼은 일정 기간 특정 작품들의 전송권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웹툰‧웹소설과 출판계는 제로섬 게임처럼 서로의 독자를 빼앗는 게 아니라 상생 관계에 있다. 웹에서 전회차를 열람했어도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독자들은 단행본을 기꺼이 구매한다. SNS에서 무료로 전회차를 열람할 수 있는 인스타툰 역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때 큰 인기를 누리곤 한다. 독자들이 웹툰‧웹소설을 향유하다 출판 콘텐츠를 구매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웹툰과 웹소설을 도서정가제에서 제외한다는 이번 개정안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창작자와 생산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대형 업체의 독식을 막는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웹툰‧웹소설 업계에서 살려내기 위해선 도서정가제가 아닌 다른 해법이 필요하다. 도서정가제가 모든 콘텐츠를 살리는 ‘만능열쇠’일 수는 없다. 더불어 이번 개정안과 별개로 출판계가 처한 곤란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서울국제도서전 운영 지원금 삭감, 종잇값 인상에 따른 책값 상승 등 출판계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데 깊이 공감한다. 다만 생태계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했으면 한다. 도서정가제 개정은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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