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에 TV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의견을 제출한 기관·단체들 모두 방통위가 추진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반대하거나 보완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민주당 간사)이 방통위로부터 받아 4일 공개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 의견제출기관 목록’을 보면 18개 기관·단체들이 방통위에 의견을 냈다. 앞서 방통위는 당사자들 의사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단체명을 비공개했고, 동의를 구해 단체명을 밝히라는 의원실 요구에 18개 중 14개 단체명을 공개했다. 정작 ‘확인 중’으로 기재된 4곳 중 2곳(KBS시청자위원회·젠더정치연구소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은 의견서에 단체명을 써둔 곳이었다.

제출된 의견서들은 전부 방통위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반대하는 내용이다. 수신료로 공적 재원을 충당하는 KBS·EBS는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면 재원이 급감해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 시 전년 기준 6000억 원 규모의 관련 수입이 1000억 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전기요금 고지서로 수신료를 징수해온 한국전력도 수신료를 별도로 걷으려면 징수를 위한 비용이 늘고, 준비 기간 없이 제도를 바꾸면 혼란이 우려된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이 밖의 단체들은 현 시점에서 수신료 분리징수가 강행되면 공영방송이 추구해온 가치를 지키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일례로 방송연기자·성우·코미디언·방송인 등 방송실연자 권리를 신탁관리하는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는 “수신료 징수 정책은 방송문화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KBS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우리 협회원 1만4000여명의 방송연기자도 그 영향을 받는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좀 더 세심하고 넓게 살펴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 사진=미디어오늘
▲방송통신위원회. 사진=미디어오늘

가장 많이 언급된 공적 가치는 11개 단체가 입장을 같이 한 ‘성평등’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서울여성노동자회, 수원청소년성인권센터, 여성환경연대, 인권운동사랑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11개 단체는 “성평등한 방송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KBS가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라며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기반해 공영방송의 역할을 논의하고 이와 함께 수신료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고민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졸속 법안”이라고 했다.

이 단체들은 KBS 다큐인사이트 ‘개그우먼’ ‘국가대표’ ‘뉴스룸’ ‘빛은 무지개’ 등이 다양한 여성과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사회의 편견과 인식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KBS가 지상파 최초로 여성 메인뉴스 앵커를 배출하고 2018년 성평등센터 개소 이후 조직문화에서의 성평등을 위해 노력했으며, 올림픽 중계진에게도 성평등 언어 교육을 진행한 점 등을 호평했다. 이와 관련해 젠더정치연구소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여세연)는 지난해 대선 이후 주요 방송사에 개표방송 출연진의 성별 편향을 지적하는 공문을 보내자 유일하게 KBS만 응답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포항여성회의 경우 “대통령실은 ‘시청자의 선택권’을 핑계로 수신료를 통해 공영방송의 재정을 압박하고 공영방송의 존립 기반을 흔들게 될 것”이라며 “EBS도 정부의 TV수신료 분리징수가 이루어지게 되면 재원 구조가 악화해 결국 교육방송의 공적 역할이 후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했다.

지난 16~26일 방통위가 방송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는 동안 국민참여입법센터에 접수된 공개의견(2819건) 약 90%(2520건)도 ‘수신료 분리징수 반대’였다. 비공개 의견을 반대로 가정하더라도 전체 의견(4712건) 과반에 달한다. 대통령실이 수신료 분리징수 방안을 권고한 근거가 온라인 설문이었기에 반대 의견이 확인된 지금 숙의와 공론조사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온 이유이다. 그러나 방통위는 지난달 5일 대통령실 권고로부터 한 달, 14일 방통위 차원의 수신료 분리징수 논의를 시작한 지 3주 만에 관련 시행령 개정안 의결을 앞두고 있다.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방송법상 수신료 납부 의무가 있는 사람들은 수신료를 내야 하고, 이를 미납하면 국세체납자에 준하는 처분을 받는다.

조승래 의원은 “30년간 이어온 수신료 징수방식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윤석열 정권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일방독주로 변경을 강행하려 한다”며 “방송장악에만 혈안일 것이 아니라 이성을 되찾고 법률과 상식에 기반한 공영방송 논의를 진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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