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차 운행 모습. 사진=코레일
▲ 열차 운행 모습. 사진=코레일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 25일 국회를 통과했다. 수도권에서는 그 이름조차 낯선 ‘달빛철도’는 대구의 옛 이름인 ‘달구벌’과 광주의 옛 이름인 ‘빛고을’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철도노선이다. 광주를 출발해 전남 담양, 전북 순창·남원·장수, 경남 함양·거창·합천, 경북 고령을 지나 대구까지 10개 역을 지나며 198.8km를 달리게 된다. 

달빛철도 특별법은 꽤 정치적인 법안이다. 광주와 대구가 거대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강하게 지지하는 지역이라서다. 두 곳은 비수도권으로 차별을 받지만 광역시인데다 정치적으로는 타 지역보다 관심을 받는 곳일 수밖에 없다. 달빛철도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고 지난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해 261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윤석열·이재명 두 대선 후보도 달빛철도 건설을 약속했다. 양당에게는 동서화합의 상징으로 내걸기 좋은 정책이다.

▲ 26일자 매일신문 달빛철도 관련 기사
▲ 26일자 매일신문 달빛철도 관련 기사

그럼에도 실무적으로 단선·복선 여부, 고속·일반철도 등 논쟁과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향한 비판으로 지난해 통과가 무산됐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살피는 과정인데 인구 감소 등으로 비수도권에서 시행할 정책은 대부분 경제성이 낮게 나온다. 사실상 정치권에서 예타를 면제해주지 않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없다. 이에 비수도권에선 ‘지역은 경제성이 없는 곳’이란 자조와 ‘수도권만 발전하냐’는 분노가 혼재돼있다. 

노병하 전남일보 정치부장이 지난 30일자로 쓴 <지난했던 달빛철도 통과 과정>을 보면 지난해 12월 초 상임위에서 비용 증가 등을 이유로 특별법에 제동이 걸리면서 느끼는 지역민의 절절한 입장이 담겨있다. 광주뿐 아니라 대구 여론을 살피고 여당과 야당에서 특별법에 미온적인 의원들을 파악해갔다. 노 부장은 “취재를 할수록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느낌이었다”며 “전후좌우 확인을 하고, 어떤 의원인지까지 체크한 뒤 기사를 써내려갔다”고 회고했다. 

실제 달빛철도는 대구와 광주 행정력을 총동원해 추진한 사업이다. 중앙정부라는 ‘서울권력’의 벽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위 전남일보 기사에서도 한 의원실 보좌진이 ‘기획재정부부터 설득해오라’고 한 발언이 나온다. 지난 24일자 대구신문은 사설에서 “기재부의 반대를 핑계로 의석수가 많은 수도권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며 “여야 의원을 포함해 대표 발의한 윤 원내대표 등 TK의원들이 수도권 눈치를 살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 대구신문 24일자 사설
▲ 대구신문 24일자 사설

비수도권 지역개발사업을 둘러싼 시선은 다소 복잡하다. 서울의 보수언론은 예타 면제를 특혜로 규정하고 비판하고, 서울의 일부 진보언론은 기본적으로 토건사업을 비판적으로 본다. 비수도권 지역 입장에서 보면, 수도권에선 기본적으로 인구가 많기 때문에 예타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비수도권에서는 예타 면제가 사실상 필수가 된 현실을 설명해야만 한다. 수도권에선 ‘투자’가 비수도권에선 ‘낭비’이자 ‘특혜’로 규정된다.  

지난 25일 정부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 계획을 발표했는데 예산 134조 원이 드는 초대형 사업이었다. 앞서 지난 15일에는 정부가 경기도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는데 오는 2024년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심이 돼 622조 원을 투자해 346만 개 일자리를 만든다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계획이다. 달빛철도는 고속철도로 진행할 때 11조 원짜리 사업이었지만 일반철도로 수정하면서 6조~8조7000억 원 정도로 축소됐다. 

경북일보는 31일 사설 <앞뒤 안 맞는 ‘지역균형발전 정책’ 재점검을>에서 “예산 6조 원이 드는 ‘달빛철도건설특별법’ 통과에는 기재부와 국토부 등 공무원들과 서울 지역 언론들까지 합세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예타 면제 조항을 트집 잡았다”며 정부의 수도권 투자 계획에 대해 “지방의 청년들이 모두 수도권으로 빨려들 수밖에 없는 블랙홀인 셈인데 지역균형 발전을 얘기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달빛철도가 통과하자 해당 지역신문에선 일제히 환영하며 조기개통을 주장했다. <달빛철도 국회 통과, 균형발전의 모범사례로>(29일 경북매일), <영호남 염원 달빛고속鐵 5년 후 달린다>(29일 경상매일), <달빛철도 조기 개통·복선화 추진하자>(29일 전남매일), <지역소멸 극복의 단초 달빛철도특별법 통과 환영>(29일 광주매일) 등 다수 신문이 관련 사설을 냈다. 지난 26일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총선용 포퓰리즘 입법”, “정치력 센 두 도시의 ‘철도 새치기’”라고 비판한 것과 상반된 분위기다. 

달빛철도가 지나가지 않는 지역에선 달빛철도 특별법 통과를 두고 다소 다른 논조를 드러내고 있다. 강원일보는 지난 30일 사설 <여야, 민생법안 처리 미적대면 총선서 심판받아>에서 “달빛철도 건설 특별법과 같은 여야 텃밭의 표심과 직결된 법안에는 의기투합하면서도 쟁점 민생법안을 두고는 셈법을 달리하며 끝장 대치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충청권에선 달빛철도를 두고 ‘충청홀대론’이 나온다. 오래전부터 충청지역에선 자신들이 수도권-영남-호남 다음 순번이라고 여겨왔다. 

▲ 29일자 중도일보 사설
▲ 29일자 중도일보 사설

대전·충청지역신문인 중도일보는 지난 29일 사설 <‘예타’ 지역 편중 드러낸 달빛 철도 사례>에서 “서산공항 설치나 대전교도소 이전 등 숙원사업이 예타에서 번번이 좌초되면서 지역 간 형평성에 반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며 “상대적으로 21대 국회 들어 영호남 예타 면제가 30조원에 육박하면서 홀대론까지 불거진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총선 국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표심잡기용 교통정책 성격이 다분하다”며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은 단적인 예”라고 했다. 

여당 소속 충청권 지역구 의원들은 지난 30일 국회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충청권 숙원 사업인 국립경찰병원 아산분원 설치가 이유없이 지연되고 있다며 예타면제와 정부차원의 지원을 요구했다. 해당 의원들은 “달빛철도 특별법은 조건없이 본회의를 통과했고 경기 용인산단, 대구광주공항, 수도권 환경 관련 산업은 모두 예타를 통과했는데 해미민간비행장 조성사업과 경찰병원 아산분원 건립사업만 예타를 지연하는 것은 충청홀대론”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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