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망’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국내 인터넷 언론과 유튜버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제25민사부(재판장 송승우)는 지난달 14일 인민망의 한국지사 피플닷컴코리아와 저우위보(周玉波·주옥파) 대표가 인터넷 경제지 파이낸스투데이, 가로세로연구소 등 언론·유튜버를 상대로 제기한 기사·영상 삭제 및 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저우위보 대표는 지난 3일 항소했다.

▲ 파이낸스투데이 2021년 4월21일자 기사 화면 갈무리.
▲ 파이낸스투데이 2021년 4월21일자 기사 화면 갈무리.

파이낸스투데이는 지난 2021년 4월21일자 기사 <중국공산당, 최문순에 의도적 접근? “미국 망가뜨린 수법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 의혹”>을 통해 저우 대표에게 간첩 활동 의혹을 제기했다. 파이낸스투데이와 뒤이은 반중(反中) 유튜버들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저우 대표가 의도적으로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에게 접근해 환심을 사고 친중 행보를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국내에서 중국을 위한 간첩 활동을 한다는 의혹이 있고 △저우 대표는 이와 같은 간첩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여성성을 이용했으며 △인민망의 한국법인 피플닷컴코리아는 실체가 불투명한 유령회사라는 것.

재판부는 언론과 유튜버들의 의혹 제기를 폭넓게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들(피플닷컴코리아·저우위보)이 국내에서 간첩 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관한 단정적 표현은 없다. 단지 그런 활동을 한다는 취지의 타인 표현을 간접적으로 인용하거나 우회적으로 드러내거나, 의혹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라며 “(기사·영상 내용은) 원고들의 국내 간첩 활동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간첩 의혹은 의견 표명에 불과하고 구체적 간첩 활동이라는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간첩’ 단어의 범용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북한과 정전 중인 대한민국에서는 ‘간첩’이라는 용어가 일상에도 파고들어 반드시 ‘적국을 위해 국가 기밀을 탐지·수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며 “수사학적·비유적 표현으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국가·반사회적 세력’과 같은 의미에서부터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 등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정치적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확장·변용돼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이 사건 표현(간첩 활동을 한다는 의혹)을 접한 일반인이 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감수성 차이는 그 폭이 매우 넓어 표현 의미를 문맥이나 발언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의적으로 단정하거나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저우위보 인민망 한국지사장. 사진=유튜브 인민망 한국지사.
▲ 저우위보 인민망 한국지사장. 사진=유튜브 인민망 한국지사.

재판부는 “외교관이 아닌 외국인이 국내에서 자국과 대한민국의 교류·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민간 외교 사절로서 활동을 펼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원고들의 활동이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간첩 활동에 해당하는 것인지 여부는 그 경계가 모호한 바, 국내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영향력이 커지는 데 반감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원고들 활동이 간첩 활동에 해당한다고 의심할 여지도 있다”면서 “(중국에 반감을 갖는) 국민 입장에서 중국에 우호적 입장을 갖고 있는 국내 공직자를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바 (간첩 의혹은)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저우 대표가 여성성을 이용해 간첩 활동을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 적시에 해당하지 않는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남성 시각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등 다소 불량한 측면이 있으나 원고(저우 대표)가 공산당 당원이자 인민망 한국법인 대표로서 국내에서 수행한 활동들은 사생활이 아니라 공적 활동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언론과 유튜버들의 표현이) 수인 한도를 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플닷컴코리아가 유령회사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무 구조를 분석한 전문가의 의견 표명에 불과할 뿐”이라며 “표현 방식이 원고를 비하하는 등 다소 불량한 측면이 있대도 원고가 공산당 기관지에 해당하는 인민망의 자회사인 점에 비춰 볼 때 그 방식이 수인 한도를 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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