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 시간으로 지난 2월 5일,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 시상식이자 영화의 ‘아카데미 시상식’처럼 미국 밖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상식으로 여겨지는 ‘제65회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가 개최되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BTS(방탄소년단)의 수상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며 그래미 어워드 중계를 본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2021년 듀엣이나 그룹 차원에서 부른 노래에 상을 주는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Best Pop Duo/Group Performance)의 후보가 되며 한국 아이돌 그룹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의 수상 후보가 된 BTS는 2023년 시상식까지 3년 연속으로 그래미의 후보로 등재되었다.

특히 2023년에는 2021년 이래 꾸준히 후보에 오르는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이어, ‘베스트 뮤직비디오’, 그리고 BTS가 2021년 수록곡 ‘My Universe’의 피처링으로 참여한 영국의 록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의 정규 9집 앨범 ‘Music of the Spheres’가 ‘올해의 앨범’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BTS는 콜드플레이와 함께 해당 앨범의 제작 참여자로서 후보에 오르게 되었다. 비록 완전하게 주도하여 만든 앨범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그래미 어워드의 주요 시상 부문 중 하나인 ‘올해의 앨범’의 후보에 올랐다는 것에 많은 팬들과 언론들은 수상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물론 이 글을 쓰는 2월9일 현재 많은 사람들은 올해 그래미 어워드의 답을 알고 있다. BTS는 결국 후보로 등재된 세 개 부문 모두에서 상을 타는 것에 실패했다. 프로듀싱부터 시작해 믹싱, 엔지니어링 작업 등 비롯한 곡을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할 레코딩 작업의 완성도로 노래를 평가하는 ‘올해의 레코드’ 부문에는 Lizzo(리조)의 ‘About Damn Time’. 앨범 전반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올해의 앨범’ 부문에는 해리 스타일스의 ‘Harry's House’. 그리고 작곡/작사/편곡 등의 측면에서 노래를 평가하는 ‘올해의 노래’에는 보니 레잇의 ‘Just Like That’이 수상하였다.

▲제 65회 그래미어워즈 관련 이미지. 
▲제 65회 그래미어워즈 관련 이미지. 

BTS가 끝내 그래미 어워드에서 상을 타지 못한 것에 시상식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여러 말이 들리고 있다. 특히 BTS의 멤버 ‘진’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입대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한동안 BTS의 멤버 전원이 함께 활동하는 형태로는 그래미 어워드와 같은 시상식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을 팬들 모두가 알기에 더욱 아쉬운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그래미에서 주목할 것은 BTS만은 아니었다. 2021년 시상식에서 ‘더 위켄드’(The Weekend)가 아무런 부문에서 상을 타지 못하며 그래미의 보수성이 본격적으로 지적받고,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던 그래미가 조금씩 변할 것을 선언한 모습이 드러난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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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남아있는 불신 속에서, 변화를 택한 그래미

물론 아직도 모두가 그래미를 신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21년 시상식에서 4집 앨범 ‘After Hours’가 단 한 개의 부문에도 후보로 오르지 못하며 그래미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낳은 더 위켄드는 작년에 발매해 지난 앨범에 이어 연속으로 대중적으로는 물론 평단에서도 호평을 얻은 5집 앨범 ‘Dawn FM’을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드레이크’(Drake) 같은 흑인 음악 영역에서 활동하는 가수 몇몇이 지속적으로 그래미를 비판하며 아무런 곡도 출품하지 않는 식으로 보이콧을 이어나갔다.

그 우려대로 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모습이 적지는 않았다. 흑인 가수가 부르는 힙합이나 R&B와 같은 소위 ‘흑인 음악’(블랙 뮤직)의 노래는 오랜 시간 꾸준히 그래미의 여러 부문에 후보로 오르고 상도 타고 있으나, 정작 그래미의 주요 3개 시상 부문인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에는 쉽게 상을 타지 못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존재했다. 정작 시장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며 2010년대 이후 미국 음악계를 주도하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흑인 음악은 아무리 높은 완성도를 보여도 주요 부문의 상을 타는 것이 무척이나 쉽지 않았다. 올해도 그런 모습이 적지는 않았다. 올해 ‘BREAK MY SOUL’로 다시 한 번 대중과 평론의 지지를 모두 이끌어낸 비욘세의 앨범 ‘RENAISSANCE’는 결국 주요 부문에서 상을 타는 것에 실패했다.

▲사진출처=Grammys 유튜브 갈무리.  
▲사진출처=Grammys 유튜브 갈무리.  

그러나 변화의 가능성을 완벽하게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번 그래미에서 주요 시상 부문 3개 중 하나인 ‘올해의 레코드’ 상을 받은 Lizzo는 여성 솔로 래퍼로서 그래미의 주요 3부문에서 상을 타는 것에 성공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그렇게 비율이 많지 않은 ‘여성 래퍼’이자 흑인인 Lizzo는 자신의 SNS 등을 통하여 사회나 사건에 대한 의견과 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사회 참여형 가수’이다. 특히 장르에 상관없이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가수, 특히 여성 가수는 상당수가 다이어트 등으로 몸을 가꾸는 것에 비해 Lizzo는 덩치가 큰 자신의 몸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며 조금씩 미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리부트의 붐과 더불어 ‘신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가는 가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온라인에서 많은 안티를 지닌 가수기도 하지만, 그래미는 Lizzo의 4집 앨범 ‘Special’의 수록곡 ‘About Damn Time’에 ‘올해의 레코드’ 상을 선사하며 Lizzo의 활동에 더욱 큰 가치를 매겼다.

하지만 Lizzo 이상으로 신경을 써야 할 수상자가 있다. 바로 BTS가 후보에 올랐던 3개 부문 중의 하나인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에서 ‘Unholy’로 상을 받은 샘 스미스(Sam Smith)와 킴 페트라스(Kim Petras)이다. 샘 스미스는 커밍아웃을 한 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엘튼 존과 같은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 가수들이 여럿 상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 이상으로 훨씬 주목을 받은 가수는 다름 아닌 킴 페트라스다. 그는 본래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여성으로 인정하며 상당히 어린 나이인 10살 때부터 호르몬 요법을 시작해 10대 중반의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렌스젠더이다.

꾸준히 가수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가던 킴 페트라스는 2020년부터 본격적인 메이저 활동을 이어나가기 시작해, 2022년 9월에는 샘 스미스와 함께 공동으로 작업한 싱글 ‘Unholy’를 발매했다. 그 이전까지는 ‘어린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가수’로만 알려지던 킴 페트라스는 이 노래를 통해 ‘최초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트랜스젠더 가수’로 등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그래미 수상을 통해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상을 받은 트랜스젠더 가수’가 되었다. 물론 시상식 이후에 공식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아 트랜스젠더임을 선언한 가수까지 포함하면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와 ‘샤이닝’에 참여해서 유명해진 웬디 카를로스(Wendy Carlos)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그래미에서 상을 받은 1969년 당시에는 호르몬 요법을 받고 있어도 수술까지 받은 상황은 아니었다.

▲사진출처=Grammys 유튜브 갈무리.  
▲사진출처=Grammys 유튜브 갈무리.  

그래미의 변화를 위한 노력, 한국에 던지는 고민들

이렇게 그래미는 완벽하게 변신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Lizzo의 주요 3부문 수상과 킴 페트라스에 대한 수상을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에 성공했다. 최대한 다양한 지향과 정체성을 지닌 아티스트들에 조금씩 포커스를 맞추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물론 여전히 더 위켄드 등이 그래미에 참여를 거부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모두가 그래미 시상식의 변화를 위한 행보에 신뢰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그래미가 변화를 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를 짧은 기간 일회성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실천과 선언을 통해서 자신들이 분명하게 변하고 있음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마치 근래 여러 실험과 수상/후보작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처럼 말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미국과는 또 다른 반발로서 올해의 그래미 어워드를 볼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BTS의 계속되는 수상 불발에 그러한 아쉬움을 가질 이들이 상당히 많았으리라. 동시에 한편으로는 Lizzo나 킴 페트라스 같이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동시에 조금씩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나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은 수준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수상 소식을 상당히 혐오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다른 훨씬 좋은 노래가 2021-2022년에 무수하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노래의 질보다 페미니즘이나 퀴어적 성향을 보이는 이들에게 상을 선사하는 것은 시상식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래부터 시상식은 단순히 ‘작품의 완성도’만 평가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니었다. 냉정히 말하면 평단에서 호평을 일정하게 받는 순간, 그러한 위치에 오른 노래들은 백지장보다도 더 얇은 수준으로의 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또는 평가하는 사람들의 취향이나 입장에 따라 조금씩 순위가 엇갈릴 뿐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시상식의 수상 결정은 단순히 ‘좋은 작품’를 고르는 이상으로, 시상식이 어떠한 기준으로 어떠한 경향의 작품에 더욱 주목을 하며 앞으로 이러한 작품에 더욱 초점이 맞춰지길 바라는 일종의 의사 표명이기도 하다.

▲사진출처=MBC 유튜브 갈무리. 
▲사진출처=MBC 유튜브 갈무리. 

앞서 언급한 ‘흑인 가수나 흑인 음악 장르를 택하는 가수들이 그래미의 주요 부문에서 상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때, 그 당시에 흑인 가수들을 제치고 상을 받은 가수들은 노래가 너무나도 좋지 않은데 그저 차별적인 시선에 힘입어 받지 말아야 할 상을 받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시상식 자체는 논란에 시달렸어도, 상을 받은 노래나 가수가 결코 실력이 형편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훌륭한 실력을 지닌 가수들 사이에서 그래미 시상식이 계속 '백인'이라는 안전한 선택만 택할 뿐, 더욱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을 갖춘 이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심증에 의한 문제 제기가 가해지고, 이윽고 2021년 더 위켄드의 전 부문 후보 등극 실패로 이 심증이 물증으로 바뀌며 큰 비판을 낳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시상식들은 이따금씩 수상작 선정으로 영화나 음악과 같은 특정 장르를 넘어 보다 직접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마치 2004년 칸 영화제가 당시 미국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에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선사하고, 나아가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작품상으로 실제 청각 장애인이 출연해 중요한 연기를 수행한 ‘코다’를 선정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의미로는 올해의 그래미 역시 수상자의 선정을 통해 여전히 그래미에 가해지는 여러 불신을 조금씩 해소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2022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코다'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트로이 코처. 한국의 윤여정 배우가 시상을 맡았다. 사진출처=오스카 홈페이지. 
▲2022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코다'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트로이 코처. 한국의 윤여정 배우가 시상을 맡았다. 사진출처=오스카 홈페이지. 

그런 상황에서 앞으로의 그래미를 말하기 위해서는 ‘좀 더 넓게 보는 시선’과 ‘문화 다양성의 중요함’을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분명 BTS의 3년 연속 후보 등재도 무시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랜 시간 세계 음악 시장의 변방이었던 한국이 이렇게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낄 사람도 적지 않겠다. 그러나 지난 1월 18일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에 연구자 오온이 쓴 글 ‘케이팝 아이돌의 다목적 남성성: 대안도 혁명도 아닌’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그 성공 신화는 Lizzo나 킴 페트라스처럼 적극적인 다양성을 내세운 것이 아닌 철저한 시장 논리에서 탈정치적으로 안전한 노선을 택하며 거둔 성과임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관련 글 : 케이팝 아이돌의 다목적 남성성: 대안도 혁명도 아닌]

그래미 시상식이 결코 항상 완벽한 것도 아니고, 애시당초 상을 받는 노래만에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노래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계속 이 상에 주목을 해야 한다면, 끊임없이 한국 문화 산업계나 이제는 팬들도 소리 높여 외치는 ‘글로벌’을 말하고 싶다면 그 글로벌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면밀하게 봐야하지 않을까. 특히 한국의 대중 음악 환경이 2010년대 이후 ‘높은 이윤 효율성’을 위해 철저하게 아이돌 중심으로 흘러가는 현재, ‘그래미’에 대한 시선만 높고 정작 그 그래미를 비롯한 전반적인 시상식의 흐름을 주시하지 못한다면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올해 그래미에서 꾸준하게 대중 음악과 월드 뮤직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나가며 평단에서 인정받았던 일본 작곡가 타쿠미 마사노리(宅見将典)가 앨범 ‘Sakura’로 이번 그래미에서 ‘월드 뮤직’이라 분류되는 장르에 상을 주는 ‘최우수 글로벌 음악 앨범상’(Best Global Music Album)을 수상한 것도 눈여겨 볼 모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그래미를 말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아이돌만을 말하는 것을 이상으로 대중 음악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의 대중 음악 환경은 다양한 장르들이 지속과 순환이 가능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하는 작업이 함께 뒤따라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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