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13일, 인기 아이돌 그룹 BTS(방탄소년단)의 멤버 ‘진’이 군에 입대했다. 이미 그 전부터 유튜브 등으로 여러 차례 그룹 활동의 비중이 줄일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왔지만, 진의 군 입대는 한동안은 BTS의 일곱 멤버가 ‘완전체’로서 함께 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임을 매우 확정적으로 알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7명 전원이 한꺼번에 활동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니 여전히 다양한 매체에서 BTS의 모습들을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모든 멤버들의 모습을 몇 년 간은 한 자리에서 보지 못할 팬들의 아쉬움은 결코 작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BTS의 소속사 하이브는 ‘진’이 입대한지 약 일 주일이 지난 12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작년 10월 2030 부산세계박람회(EXPO, 등록 엑스포)의 유치를 응원하기 위해 기획된 무료 공연 ‘BTS Yet To Come in BUSAN’의 공연 장면을 담아낸 영상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100개 지역에서 2월 중으로 개봉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것도 단순한 공연 실황이 아니라, CJ CGV와 협력하여 CGV가 보유한 옆면까지 영사하는 기술 포맷 ‘스크린X’와 미리 입력해둔 동작 설정에 맞춰 좌석을 흔들거나 물방울 발사 등 각종 특수효과를 구현하는 ‘4DX’ 기술에 바탕을 둔 작품이었다. 즉, 이미 녹화된 공연 영상을 트는 것이지만 여러 차원의 특수 기술을 통하여 마치 영화관에서 공연 실황을 보는 관객들이 실제 BTS의 공연에 온 것처럼 감각을 재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 포스터.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 포스터.

흥행의 결과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이미 2018년에도 BTS의 공연을 담아낸 실황 영상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이 개봉하여 한국에서 34만 관객, 전세계적으로는 약 10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는 전세계가 코로나의 위협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도 일찌감치 전작의 흥행 성적을 훌쩍 넘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직 한국 관객은 9만명을 살짝 넘긴 수준에 불과하지만, 글로벌 흥행은 2월 16일 현재 ‘박스 오피스 모조’(Box Office Mojo) 집계 기준 전작의 약 2배에 가까운 2179만 달러의 흥행을 모으고 있다. 2023년 전 세계에서 개봉한 영화 중에서는 무려 9위의 성적이다. 아직 2023년이 된지 한 달하고 절반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2023년 연말에는 다른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밀려 순위가 많이 떨어져 있겠지만, 이를 감안해도 이번 공연 실황의 흥행은 무척이나 강력하게 흘러가는 상황이다.

그 사이, 일본에서는 또 다른 ‘영화가 아닌 영상’이 극장가를 강타했다. 바로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극장가가 신음하던 2020년 말과 2021년 초 일본은 물론 한국 등 여러 나라의 박스오피스에 조금이나마 단물을 준 고토게 코요하루(吾峠呼世晴) 원작 만화이자, 애니메이션인 ‘귀멸의 칼날’이다. 해당 작품의 새로운 영상을 담아낸 ‘귀멸의 칼날 :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가 일본에서는 2월 3일 개봉해 개봉 2주만인 2월 12일 누적 관객 147만명, 누적 흥행 20억엔의 압도적인 인기몰이를 기록했다.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 역시 일본 개봉 첫 주 한국(9위)보다 더 높은 4위를 기록했지만, 같은 주에 개봉한 ‘귀멸의 칼날’의 새로운 작품에는 흥행에서 밀리고 말았다.

그런데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 같은 작품은 분명 엄연히 극장에서 개봉한 작품인데, 왜 이번 작품은 ‘영화가 아닌 영상’이라 언급하는 것일까. 처음부터 영화관 상영을 우선적으로 여기며 제작한 ‘무한열차편’과 달리 이번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는 작년 2월에 방영한 TV 애니메이션 2기 ‘환락의 마을편’의 10화와 마지막화인 11화, 그리고 4월에 방송 예정인 3기의 1화를 묶어서 선행 상영하는 일종의 팬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마치 ‘방탄소년단 : 옛 투 컴 인 시네마’가 BTS의 팬들을 위하여 공연 실황을 촬영하여 개봉했듯, 이 ‘귀멸의 칼날 :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도 제작사 ufotable(유포테이블) 차원에서는 ‘월드 투어 상영’이라 명명하며 빠르게 TV 애니메이션 3기를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80개국에서 ‘특별 상영’을 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런 ‘서비스격 작품’이 ‘귀멸의 칼날’이 지니는 계속되는 인기와 맞물려 박스오피스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귀멸의 칼날 :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 포스터.
▲'귀멸의 칼날 :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 포스터.

관객이 떠나가는 영화관,
‘확실한 팬’을 잡을 ‘비영화’에 눈을 돌리다

한국에서는 3월 2일이 되어서야 ‘귀멸의 칼날 :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이 개봉할 예정이지만,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의 흥행을 생각하면 상당히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한일 양국 모두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가 꽤나 나쁘지 않은 흥행을 기록한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가깝지만 먼 나라 모두에서 처음부터 자신을 ‘영화’라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작품이 박스오피스를 장식하는 독특한 상황에서 똑같은 시기에 벌어진 셈이다.

심지어 이러한 흐름에서 CJ하면 떠오르는 영화 및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주자 CJ ENM(CJ엔터테인먼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의 제작사와 메인 배급사는 다름 아닌 CJ CGV의 자회사 ‘CJ포디플렉스’(CJ 4DPLEX)이기 때문이다. CJ ENM이나 CJ포디플렉스나 다 같은 CJ그룹 계열사니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CJ를 대표하며 움직여 왔던 곳은 CJ포디플렉스도 CJ CGV도 아닌 CJ ENM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러한 대표 주자의 변화는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다.

이러한 모습은 대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인가. 이를 말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계를 앞으로 당길 필요가 있다. 바로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던 2020년이다.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의 특성상 밀폐된 공간에서, 그것도 호흡기를 통해 잘 감염되기 쉬운 전염병이었다. 그러한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사람들은 영화관에 발길을 끊기 시작했고, 정부 지침 등으로 인해서 코로나 확산 방지 등을 이유로 몇 달간 기약 없는 운영 중단이 된 적도 몇 차례나 있었다. 심지어는 운영이 되던 시기에도 의무적으로 자리를 비워두고 표를 팔아야 했으며, 영화관의 주된 수익원인 매점 운영은 꿈도 꾸기 쉽지 않았다. 과당 경쟁의 위험성이 연일 지적받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몰락할 기세를 보이지 않던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휴업을 넘어 폐업을 선언하는 일이 다발했다.

이때 영화관들은 한국 사회에 전방위로 퍼진 ‘극장 같은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코로나가 감염되기 쉽다’는 위험성을 이겨내고, 그래도 어떻게든 극장에 찾아와 줄 관객들을 개발할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형국에서 ‘비영화 콘텐츠’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공연 실황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이 34만 관객을 모으면서 흥행했다고 하지만, 이는 결코 한국 영화관의 주된 콘텐츠라 말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실황 콘텐츠들은 영화관 사이의 협약으로 다른 영화보다 2배 이상의 관람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관객수로 보나 수익으로 보나 다른 대형 블록버스터가 훨씬 수익에 이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 서울 한 영화관의 모습. ⓒ 연합뉴스
▲ 서울 한 영화관의 모습. ⓒ 연합뉴스

그러나 코로나가 급속도로 번지고, 영화관에 대한 감염 우려가 확산되며 상황이 급격하게 반전되었다. 일반 관객이 영화관을 기피해도,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대상을 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보기 바라는 팬들은 어떻게든 영화관을 방문할 것이다. 그러한 확신 아래 영화관들은 적극적으로 비영화 콘텐츠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특히 CJ는 이 과정에서 CJ CGV가 2019년 론칭한 브랜드인 ‘CJ CGV ICECON’(CGV아이스콘)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CGV아이스콘은 본래 강연, 예술, 또는 스포츠 중계 콘텐츠에 주력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에는 주로 영화관에서 강의 콘텐츠를 준비하거나, 대형 e스포츠 경기 ‘롤드컵’ 중계, 또는 이런저런 오페라나 뮤지컬의 공연 실황을 해당 회사를 통해서 상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코로나 이전 CGV아이스콘이 개봉한 스타 공연 곤텐츠는 BTS의 콘서트 후기나 소감을 중심으로 담아내 2019년 개봉한 ‘브링 더 소울 : 더 무비’가 전부였다.
[관련 글 : 극장에서 영화만 볼 수 있다는 생각은 NO! CJ CGV ICECON 콘텐츠사업팀 인터뷰]

하지만 코로나의 확산은 CGV아이스콘의 성격을 좀 더 ‘인기 가수의 콘서트 실황’으로 옮기는 것에 큰 기여를 했다.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한 초창기 ‘프라도 위대한 미술관’ 같은 미술 소개 콘텐츠,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 같은 무대극의 공연 실황, 심지어는 ‘공포체험라디오 4DX’나 ‘정브르의 동물일기’ 같이 인기 유튜버와 함께 영화관에서 괴담을 실감나게 전하거나 유튜브의 영상을 더욱 고품질의 화면으로 즐겨보자는 식의 컨셉의 작품도 상영했지만 2023년 현재 CGV 아이스콘에서 제작, 배급하는 작품의 절대 다수는 BTS를 비롯해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 아스트로(‘스타게이저: 아스트로스코프’), 세븐틴(‘세븐틴 파워 오브 러브 : 더 무비’)과 같이 유명하거나 팬덤이 많은 가수들이 등장하는 영상에 치중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시기 CGV포디플렉스도 CGV아이스콘과 협력하며 비슷한 경향성을 강화했다.

이러한 콘서트 콘텐츠들은 분명 절대적인 관객수나 수익으로 따지면 마냥 많는 수치라고 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상당히 흥행을 한 편인 ‘브링 더 소울 : 더 무비’나 현재 개봉 중인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 모두 관객수는 많아도 몇십만 명, 수익도 몇십 억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체 흥행 수익을 관객수로 나눠, 한 명이 관객이 영화를 보기 위해 사용한 금액을 보여주는 지표 ‘객단가’로 평가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계속 영화 티켓 가격이 올랐다고 원성은 많지만 여전히 한국의 일반적인 개봉작이 기록하는 객단가는 1만 원을 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비영화-공연 실황 콘텐츠는 최소 객단가가 2만 원을 훌쩍 넘긴다. 이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각종 굿즈, 매점 등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을 생각하면 절대치로는 낮아도 실질적인 수익 획득 구조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 각 영화관이 꾀한 바가 어느 정도 현실로 이뤄진 셈이다.

▲'브링 더 소울 : 더 무비' 포스터.
▲'브링 더 소울 : 더 무비' 포스터.

영화관의 변신은 그저 영화가 아닌 콘텐츠의 상영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영화관에 적극적으로 영사시설이 아닌 즐길 거리를 심어넣는 작업이다. 이미 이전에도 CGV는 거점 지점인 용산아이파크몰점, 영등포점, 강변점 등을 리뉴얼하는 과정에서 ‘영화를 보러오지 않아도 즐길거리’를 선사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보여웠다. 특히 2017년 기존 용산점을 증축까지 거치면서 전면 개조한 용산아이파크몰점은 스포츠 펍, 무료 노래방, VR 체험시설, 방탈출, 팟캐스트 녹음 스튜디오 등을 적극적으로 배치하며 야심찬 구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코로나는 CGV가 본래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영화관의 재배치를 가져왔다. 코로나 확산을 이유로 불특정 다수가 신체를 갖다 대거나, 이를 관리하기 어려운 비영화 체험 시설은 더 이상 간판 주자로 홍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영화관이 경쟁적으로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으로 게임을 즐기자’는 식으로 관객을 유치하고자 했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그 결과 영화관들이 택한 방법은 ‘영화관 자체의 수를 줄이고, 그렇게 생긴 공간에 다른 시성를 배치하자’는 길이 되었다. 여기서도 적극적인 기업은 다름 아닌 CGV다. CGV는 2021년 피카디리1958점을 시작으로 2022년에는 구로점의 2개 상영관에서 스크린과 객석을 제거하고 대신 인공 암벽을 설치한 클라이밍짐 ‘피커스’(PEAKERS)를 런칭했다. 올해에는 상반기 중으로 일부 지점의 상영관을 개조해 ‘디 어프로치’(The Approach)라는 브랜드로 실내 골프연습장을 설치할 예정이다.

영화관, 다른 가치를 고민할 수는 없는가

그렇게 영화관은 코로나의 유행을 만나며 역설적으로 영화가 아닌 길로 새로운 고객을 만나 생존을 꾀하려 하고 있다. 물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몇 십년전부터 벌어졌던 변화의 연장선이다. 한국에서는 대중문화의 고도화나 산업화가 상당히 늦었기에 변화의 순서 역시 달랐지만 이미 해외의 영화관들은 흑백 TV와 컬러 TV의 보급으로 두 차례, 그리고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놀거리’가 번성하며 결코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아왔던 전례가 있다.

해외의 멀티플렉스 체인이나 영화사들은 이러한 몇 차례의 위기를 거치며 일찌감치 영화가 아닌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왔다. 한국에서도 메가박스 등에서 서비스를 하며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뮤지컬이나 가수의 팬들에게는 익숙해진, 일본에서 극장 상영 공연 실황을 통칭하는 표현 ‘라이브 뷰잉’은 일본의 영화 산업이 1990년대 정체기를 맞이하며 새로운 관객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개발한 서비스였다. 특히 ‘라이브 뷰잉’의 대표 주자인, 2011년에 일본의 대형 연예 기획사이자 영화 제작사 ‘아뮤즈’가 설립한 공연 실황 전문 제작 및 배급사 ‘라이브 뷰잉 재팬’(ライブ・ビューイング・ジャパン)은 적극적으로 공연이나 오프라인 행사의 ‘실시간 극장 중계’나 일본 이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해외 지역 진출을 꾀하며 시장에 안착했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는 제법 아는 사람이 있을 해외의 유수 국공립 공연장이나 단체가 정기적으로 자신들의 공연을 영상으로 촬영해 극장을 통해 서비스하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메트 오페라 라이브’(MET Opera Live), 영국 국립극장의 ‘내셔널 씨어터 라이브’(National Theatre Live, NT Live)도 이러한 흐름에서 발현한 결과물이다. 점차 문턱이 높아지는 오페라나 작가주의적 연극, 발레 같은 콘텐츠를 좀 더 대중적인 장소에서 제공하고 영화관 역시 상대적으로 소비의 폭이 큰 클래식, 오페라, 발레 관객들의 구매력에 도움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 CGV 영화관 홈페이지 갈무리.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 CGV 영화관 홈페이지 갈무리.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한국은 많은 이들의 우려대로 영화관이 무수하게 난립하며 과당 경쟁 상태에 놓여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출생율이 계속 이어지는 한국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총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장기저긴 차원에서 영화관을 현재 그대로 운영하기 어려워질 것은 자명하고, 그러니 한국의 이러한 흐름도 코로나로 인해서 앞당겨진 것일 뿐 언젠가는 일어날 흐름이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그러나 그렇게만 넘어가기에는 좀 더 짚어야 할 것이 있다. 해외에서도 비영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며 영화관을 비롯한 영화 산업이 오랜 시간 새로운 수익원을 골몰해왔지만, 작품의 종 다양성 자체를 날리지는 않는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한국은 수익 감소를 이유로 새롭게 데뷔를 고민하는 감독들, 상업적이지는 않아도 작품의 생태계와 표현의 장을 더욱 풍성해줄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의 ‘비주류 영화’의 상영폭을 더욱 큰 폭으로 줄이고 있는 마당이다. CJ가 2019년 이후 CGV아이스콘을 키울 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CJ가 아주 약간이라도 비주류 영화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증거 같은 존재였던 ‘CGV아트하우스’ 조직을 폐쇄한 것은 그 상징적인 모습이다. 그나마 한동안은 상영관으로서의 CGV아트하우스는 남겨두었지만, 이 조차도 수를 계속 줄이고 있다.

분명 어느 나라나 영화판은 대형 자본이라는 큰 손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오랫동안 확립된 영화를 비롯한 일상적 문화 향유의 정착, 지역별로 자생하고 공동체를 이루는 문화 환경, 그리고 대형 자본이 형식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생태계의 종 다양성 유지를 위해 공존의 문을 여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은 ‘최소한의 위선’도 없이 CJ를 비롯한 대형 자본들은 다른 제조업 현장에서 산재를 방치하듯, 영화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이해 관계만 강조하며 공생의 가치는 내다버리는 행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는 그러한 자신들의 행보에 더욱 정당성을 심었다.

이렇게 전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 이상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 한국은 문화에서도 ‘대기업들의 놀이터로 삼기에 좋은 나라’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관들이 영화가 아닌 콘텐츠에 주목하는 움직임은 과연 해외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마주하면서 흐를 수 있을까. 이미 CGV아이스콘이나 CGV포디플렉스가 사업 초기 다양한 콘텐츠를 실험했지만 결국 아이돌 또는 트로트 가수의 콘서트 콘텐츠에만 집중하며 다양성은 사라졌다. 민간 자본이 최소한의 틈바구니도 꽁꽁 틀어막은 이 ‘시장 실패’의 상황에서, 정부나 지자체, 관련 부처를 비롯한 공공은 영화관을 그저 민간의 손에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더욱 몰두한다면, 대안적인 흐름을 고민하는 민간이 공공과 협력하며 ‘생태계의 폭을 넓히며 유지하는’ 방향을 고민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영화관과 공연 전문 극장이 분리되기 전 ‘극장’에서 영화와 각종 공연 및 행사를 모두 아우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러한 복합적인 방향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대안적인 ‘영화관이 영화 밖과 함께하는’ 길을 모색해야, 그저 영화관이 이윤에 맞지 않아 그냥 사라지는 결말 이상의 성취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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