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2년 1월11일 오후 4시께 광주 서구 화정동에서 신축 공사 중인 고층아파트의 외벽이 무너져내렸다. 사진은 사고 현장의 모습. ⓒ 연합뉴스
▲ 지난 2022년 1월11일 오후 4시께 광주 서구 화정동에서 신축 공사 중인 고층아파트의 외벽이 무너져내렸다. 사진은 사고 현장의 모습. ⓒ 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이 5~49인 중소 규모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해 27일부터 시행된다. 정부와 여당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를 2년 추가 연장하는 개정안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개정안 처리 전후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5인 이상 규모의 빵집과 식당 등 영세사업장 사장도 처벌받을 수 있다며 적용유예를 주장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실체가 없는 공포를 조장하고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악법’으로 몰아가려는 정부 여당 주장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빵집이나 카페, 식당 사장에 대한 처벌 관련 보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은 지난 15일이다. 이날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 사장님도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가 사망하면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도록 하는데 빵집이나 식당 사장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후 언론에선 법 시행에 대해 두려움을 말하거나 혼선이 많다는 중소 규모 사업장 사장을 인터뷰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동아일보는 식당과 카페, 미용실, 건설업체 등 30곳을 찾아 취재했는데 27곳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는 걸 알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보도는 처음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 된 걸 알고 혼란이 있다거나 처벌이 두려워 사업장을 접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인터뷰 내용이 대부분이다.

2022년 재해조사대상 사망사고 통계를 보면 사망자는 644명이다. 건설업 사망자가 341명으로 52.9%를 차지하고 제조업 사망자는 171명(26.5%)다. 숙박 및 음식점업 사망자는 5명으로 0.7%에 불과하다.

과거 통계와 적용 대상 범위와 기준 등 규정에 따르면 식당, 빵집과 같은 사업장에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언론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대중의 공포와 두려움을 부추기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26일 <영세사업자 83만명 예비범법자 만드는 정치>라는 사설까지 썼다. 서울신문은 “자칫 수십만명의 영세기업인과 소상인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여기서 일하는 800만 근로자들의 일자리마저 위태롭게 하는 사태가 생길까 우려된다”고 했다. 당장 27일부터 법이 시행되면 혼선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적용 대상 사업장에서 ‘중대재해’ 발생을 전제로 해서 대거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인데 과도한 내용이다.

오히려 서울신문은 다른 보도에서 자사 사설과는 반대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국면에서 공포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신문은 <노동계 “노동부는 공포마케팅 멈추라”…중대재해법 유예 불발>에서 “정부가 ‘빵집’이나 ‘음식점’ 등을 언급하면서 법 시행으로 인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중소·영세 업체의 부실한 준비를 뒷받침할 정책을 마련하고 제도를 안착시켜야 하는데 공포만 부추긴다는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브리핑에서 “상시노동자가 5명 이상인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 사장님도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대상이 된다”고 말했는데 이를 정면 반박하는 내용이다.

서울신문은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상시근로자 5명 이상을 쓰는 경우가 많지 않은 데다 법 적용 대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음식점이나 빵집 등에서 사망자 1명 이상,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하는 중대재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라고 전했다.

▲사진=Getty images.
▲사진=Getty images.

중앙일보는 <“가뜩이나 장사도 안되는데”…동네사장님들 ‘중처법’에 떤다>에서 서울 북창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를 찾았는데 사실관계가 맞지 않은 A씨 인터뷰를 내보냈다. A씨는 “지금도 기본적인 안전 수칙은 지키고 있는데, 앞으로 직원 대여섯 명 중 한 명을 안전 전담 인력으로 두란 말이냐”라며 “요즘 장사가 안 돼 사람을 더 쓸 여력도 없다”고 말했다.

A씨 인터뷰 내용은 맞지 않는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업무 전담 조직을 두지 않아도 된다. 제조업 등 20~49인 일부 업종 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담당자를 선임해야 하지만 A씨 사업장의 경우 두지 않아도 된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2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담 조직은 500인 이상 사업장이나 200인 이내에 들어가는 건설사의 경우에 두도록 돼 있다. 골목 상권엔 아예 해당하지 않는다.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는 사업을 총괄 관리하는 사람을 지정해야 하는데 대부분 사장들이다. ‘안전보건관리자’는 50인 이상 사업장에만 두도록 돼있고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는 20인 이상 50인 미만으로 돼 있다.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는 자격증을 요하지도 않는다. 고용노동부 교육 몇시간을 이수하면 자격을 준다. 겸임할 수도 있다. 직원 중 담당자로 지정하고 교육을 받게 하면 되는데 그 것도 안되면 안전보건 전문기관에 위탁하면 될 일이다.”

A씨가 법 조항을 모르채 말을 했다고 해도 언론은 사실관계를 따져 바로잡아었야 했다. 언론이 부작용이나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에서 고충을 듣는 것은 필요하지만 정확한 정보 제공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권영국 변호사는 “기자들이 ‘적용유예를 하지 않으면 당신 가게에 안전관리자를 둬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라고 이런 식으로 질문한다. 법에도 없는 내용을 가지고 질문을 하고 가짜뉴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식당이나 카페, 빵집에서 사람이 죽을 일이 뭐가 있나. 사망자가 나오지 않아야 할 사업장인데 나왔다면 안전을 등한시한 것이고 그런 영업을 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며 “그런데 언론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 최대치를 가지고 소설을 쓰고 있다. 법적인 해당 사항이 없는데도 마치 의무인 것처럼 기망해서 기사를 쓰고 있다. 진짜로 척결해야할 가짜뉴스”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 50인 미만 사업장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공포 후 3년 간 유예기간을 뒀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현실이 문제다.

유예기간 동안 중소기업들이 산업보건안전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사업장내 산업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면 ‘예견된 혼란’은 없었을 수 있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연장 반대 기자회견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법의 엄격한 적용에 미온적인 정부와 국회의 태도가 50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주들에게 여지를 주어 준비 부족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해달라는 중소기업 사업주의 이유가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면 국민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달라는 이유는 일터에서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건강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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