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KBS 사장이 지난 13일 임명한 장한식 신임 KBS 보도본부장은 ‘정직 1개월’ 징계를 놓고 KBS와 징계무효소송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8월 1심은 KBS 손을 들어주며 장 본부장에 대한 징계는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현재는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중이다. ‘보도본부 내 인사 업무 공정성에 심각한 불신과 우려’를 초래했다는 이유 등으로 중징계를 받았던 인물을 보도본부장으로 기용한 데 대해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장한식 보도본부장은 과거 보도국 국·부장을 중심으로 한 비공식 모임 ‘KBS기자협회 정상화를 위한 모임’(아래 정상화 모임) 결성을 주도하여 조직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등 직장 질서를 문란케 했다는 사유로 2020년 6월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았다.

▲ 박민 KBS 사장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 사장 바로 옆에 장한식 KBS 보도본부장이 서 있다.©연합뉴스
▲ 박민 KBS 사장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 사장 바로 옆에 장한식 KBS 보도본부장이 서 있다.©연합뉴스

‘KBS기자협회 정상화를 위한 모임’이 뭐길래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재판장 홍기찬) 1심 판결문을 보면, 정지환 전 KBS 보도국장, 박영환 전 취재주간, 강석훈 전 국제주간, 장한식 전 방송주간(현 보도본부장)은 2020년 11월 KBS를 상대로 징계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은 지난해 8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들은 △‘정상화 모임’ 결성을 주도하고 △보도국 국·부장단이 보직, 근무평정, 연수, 특파원 선발 등 강력한 인사권을 갖고 있음을 이용해 일선 기자들의 모임 가입을 종용했고 △정상화 모임 참여 여부가 인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을 초래하는 등 보도본부 내 인사 업무 공정성을 저해했다는 이유 등으로 징계를 받았다.

정상화 모임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3월 기자들을 대표하는 KBS 기자협회가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며 국·부장단 중심으로 규합한 기자 세력이다. 정지환 전 보도국장을 필두로 129명이 연명하여 기자협회를 비판했고, 모두 9차례에 걸쳐 성명서를 게시했다. KBS 보도본부 소속 국장 9명, 부장 25명 전원이 정상화 모임에 참여했다. 당시 “정상화 모임은 국장과 부장, 팀장이 대다수고 일부 부장이 평기자들에게 가입 여부를 묻고 있다. 인사권 등에 의한 강요로 볼 소지가 매우 다분하다”(KBS 기자협회장)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KBS 조직은 반으로 나뉘었다.

▲ 정연욱 KBS 기자가 2016년 7월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광장에서 열린 언론노조 KBS본부의 보복인사 규탄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 정연욱 KBS 기자가 2016년 7월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광장에서 열린 언론노조 KBS본부의 보복인사 규탄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특히 7년 차였던 정연욱 KBS 기자가 2016년 7월 언론기고를 통해 KBS의 박근혜 청와대 무비판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세력으로 정상화 모임을 꼽았다가 제주총국으로 부당전보되자 장 본부장을 포함한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 31명은 “KBS인으로서 KBS를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는게 당연한 자세가 아니냐”며 KBS의 부당전보 발령을 두둔했다.

고대영 사장에서 양승동 사장으로 KBS 경영진이 교체된 후 장 본부장은 2020년 6월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았다. 정상화 모임 결성을 주도했다는 사유다. 정직 1개월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는 “정상화 모임 결성과 9차례에 걸친 성명서 게시는 내외의 부당한 간섭과 압력으로부터 방송 독립을 지키고 취재 및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는 KBS의 직장 질서를 저해하는 행위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장 본부장 등) 원고들은 개별 직원들에게 직접 연락해 정상화 모임에 참여할 것인지 의사를 묻거나 다른 직원들을 통해 의사를 타진하는 등 정상화 모임 참여자 수를 늘리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했다”며 “이와 같은 시도는 실무자들로 하여금 모임 참여를 거절하면 어떠한 불이익을 입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정연욱 기자에 대한 KBS의 불법 전보발령이 법원에서 무효로 확정된 것을 언급하며 “정연욱에 대한 인사발령과 그에 대한 원고들의 지지는 정상화 모임에 반대하거나 모임의 입장을 비판하는 경우 불이익한 처우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장 본부장 등이 “실무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 창의적 취재 및 제작 환경을 조성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고 공정하고 객관적 보도를 위한 KBS 직장 내 질서를 저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박민 KBS 사장과 신임 본부장들은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KBS 제공
▲ 박민 KBS 사장과 신임 본부장들은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KBS 제공

법원 “정상화 모임 결성, KBS 직장 질서 저해 행위”

KBS 노동조합이 지난 2월 발행한 ‘진미위 흑서, 쟁투의 기록’을 보면, 장 본부장은 자신에 대한 징계를 권고한 KBS진실과미래위원회(진미위)와 진미위 조사를 토대로 징계를 내렸던 KBS에 “정상화 모임은 구체적이고 지속적 모임이 아니라 성명을 내는 주체를 밝히는 일회성 명칭이었다. 대표나 총무가 있고 규약이 존재하며 회비를 걷거나 회합을 갖는 등의 조직체적 모임은 아니었다”며 “몇 차례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행위를 ‘모임의 결성’으로 단정하고 ‘모임 가입을 종용했다’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장 본부장은 “본인은 2016년 당시 KBS기자협회가 정치편향적 활동에서 벗어나 공정하게 활동하기 바라는 취지에 공감해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회사 간부가 아닌 기자협회 회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것”이라며 “어떤 사안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양심의 영역이자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어떤 성명이든 참여 여부는 개인 양심과 자유 의사에 따라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성명서 참여를 종용하거나 강요한 적 없다”고 덧붙였다.

장 본부장은 21일 통화에서 현재 KBS를 상대로 다투고 있는 징계무효 항소심에 관해 “소송은 현재 사측이 아니라 이전 사측과 다투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 당시 징계를 내린 사람은 양승동 전 KBS 사장과 김의철 전 보도본부장”이라며 “1심은 김의철 사장 체제에서 아주 비싼 돈으로 고급 로펌을 동원해 이끌어 낸 판결로 보이는데, 부당한 조직인 진미위의 결정을 정당화한 부당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장 본부장은 “제2의 진미위가 발족해 과거의 잘못된 일을 반복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상적 상황이라면 법원도 제대로 된 판결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진미위 흑서’에도 “진미위 징계의 불법성과 부당성은 차고 넘친다”며 “과거 사장 시절의 보도국장과 주간 등 보도국 핵심 간부 출신들만 골라 징계했다. ‘블랙리스트 경영’의 절정인 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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