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인터뷰를 듣다가 전파가 아깝다고 생각한 적 있다.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2019년 10월4일 TBS 시사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조국 법무부 장관 딸 조민씨가 나왔을 때다. 서울대 허위 인턴 활동, 조 장관이 증명서를 직접 위조했다는 의혹, 동양대 표창장 위조 등등. 지금은 대법원에서 조씨의 ‘7대 허위 스펙’이 사실로 확인됐지만, 그때만 해도 무엇이 진실인지 가늠하기 어려웠기에 뉴스공장 인터뷰는 청취자 이목을 집중시켰다.

진행자 김어준씨는 인터뷰 시작부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사안의 사실관계는 묻지 않겠다”고 질문의 한도를 미리 그었고, 이어진 질문 역시 답이 정해진, ‘답정너’ 질문이었다.

“본인이 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에 대한 보도가 계속 나오는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버티느냐.” “지금 언론이 24시간 가족들을 뒤쫓고 있다. 힘들지 않으냐.”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닌데, 언론에 할 말은 없느냐.” “본인이 기소되고 대학원이나 대학 입학 취소가 되고 그래서 고졸이 되면 어떻게 하느냐.”

▲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2023년 11월6일 자 화면 갈무리.
▲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2023년 11월6일 자 화면 갈무리.

의혹의 진위 확인은 ‘수사 중’이기 때문에 뒤로 미룬 채, 언론 취재와 수사 압박을 받는 조씨의 심리·감정 상태에 관한 질문을 주로 던졌다. TBS는 관련 내용을 담은 인터넷 기사 제목을 <조국 장관 딸 조민 “언론에 사냥감 된 것 같다…잔인하다”>로 뽑으며 조국 지지자 공분을 부추겼다.

검찰 수사 중인 사안에 당사자가 얼마든 공중에 말할 수 있고, 언론 역시 무엇이라도 물을 수 있는데도 김씨는 “검찰 수사 중…” 운운하며 질문을 스스로 포기했다. 뉴스공장이 ‘청취율 1위’ 방송이었던 만큼 김씨가 의혹을 따지고 묻는 저널리즘의 본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조국 사태로 벌어진 수년의 갈등과 반목이 지금보다는 덜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가 입에 달고 사는 ‘합리적 의심과 추론’은 왜 문재인·조국·이재명 등 진보인사 앞에선 휘다 못해 소멸하는가. 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대담에서 불편한 질문을 던져 그 지지자로부터 “죄지은 사람 불러놓고 취조하는 줄 알았다”는 비난을 받았던 손석희 앵커와 대조적 모습이다.

김씨는 유튜브 방송에서 더 노골적이었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자녀 입시 비리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그는 “기득권이 반격하는 것”, “죽어봐라 이 새끼들아, 이런 식의 판결”, “결론을 낸 뒤 재판을 요식행위로 진행했다”며 판사를 맹비난했고, “정치인 조국의 탄생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가 항소심에서도 징역 4년을 받자 “반드시 조국의 시간이 오게 돼 있다”며 “그 시간이 원하는 내에 오려면 대선을 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장외 발언’이래도 노골적으로 ‘조국 수호’를 자처한 것은 공영방송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자격을 의심케한다.

▲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2023년 11월6일 자 화면 갈무리.
▲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2023년 11월6일 자 화면 갈무리.

조 전 장관은 지난 6일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내년 총선 출마를 시사했다. “비법률적 방식으로 명예를 회복하는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번에도 조국 입장을 듣는 방식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와 윤석열 정권 실정을 비판하는 데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다. 조 전 장관이 조씨 인턴 확인서를 직접 위조했는지 여부를 언론에 확인한 적 없기에 개인적으로 궁금했으나 진보 인사 앞 김씨 질문에 ‘검증’을 기대하는 건 과도한 바람일 뿐이다.

진보언론과 시민사회는 김어준의 ‘비판 없는 질문’을 견제하지 못하고 방치했고, 현 정권은 ‘편향 방송 정상화’를 명분으로 공영언론과 공론장을 뒤엎으며 폭주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이라면, 김어준류 방송인을 밀어낸 자리엔 정치색만 달리한 또 다른 편향 인사로 채워질 전망이다.

정권과 진영에 대한 비판 질문이 없던 문재인 정부 시절 5년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낙하산으로 투하될 윤 정권 나팔수들을 어떻게 제대로 감시할까. 저널리즘 회복은 조국 출마보다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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