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채널A 사건은 ‘검언유착’ 사건인가, 아니면 ‘권언유착’ 사건인가. MBC를 포함한 진보파는 이동재 기자가 한동훈 검사장과 공모해 1조 원대 사기죄로 수감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를 협박해 유시민 등 유력 진보인사 비위를 캐려 한 공작쯤으로 기억한다. 문재인 정권 검찰이 두 사람 공모 관계를 전혀 밝히지 못했고 지난 1월에는 이 기자의 취재원 강요미수 혐의에 무죄가 확정됐는데도 “한동훈 휴대전화를 열지 못했다”며 의혹의 불씨를 끄는 데 주저한다.

반면, 이동재 기자와 조선일보 등 보수파는 최강욱 전 의원을 비롯한 정치권과 김어준, 유시민과 같은 진보인플루언서, 양대 공영방송 KBS·MBC가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동훈 검사장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공작을 펼쳤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이 기자는 최근 펴낸 책 ‘죄와 벌’에서 “민주와 진보의 탈을 쓴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공작”이라며 진보진영에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신간 ‘죄와 벌’. 지우출판.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신간 ‘죄와 벌’. 지우출판.

양쪽 진영의 거친 언사와 ‘검(권)언유착’에 대한 믿음 및 확증편향을 제거해 보면, 가장 끝에 남는 건 기자의 취재 윤리와 보도 검증 원칙일 것이다. 이 사건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이 기자의 강요미수죄 유무를 심리한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취재 윤리 문제를 지적했다. 이 기자가 이철에게 보낸 서신에 관해 “피해자(이철)에게 겁을 주거나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함으로써 원하는 취재 정보를 얻고자 하는 피고인(이동재)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면서 “이런 행위는 취재 윤리를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이 기자가 채널A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소송 재판부도 “이철과 그 가족이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플리바게닝(형량협상제도)이 가능한 것처럼 언급해 자신이 원하는 취재 정보를 획득하고자 한 것은 정당한 취재 윤리를 벗어난 행위”라고 판단했다.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지난 1월19일 재판이 끝난 후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윤수현 기자.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지난 1월19일 재판이 끝난 후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윤수현 기자.

이철 대리인을 자처한 제보자X 지아무개씨가 이 기자와 만나 먼저 ‘검찰과 실제 연결돼 있는지’ 유도 질문을 던졌대도 그런 유도신문에 넘어가 ‘익명의 검찰 고위 간부 녹취록’을 만들어온 것도 이 기자 본인이다. 세간에 ‘한동훈 녹취록’이라 불렸던 가공 녹취록에 대한 이야기는 왜 책에 언급조차 않는가. 취재 윤리 위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그의 책에서 찾을 수 없다.

그는 그 대신 스스로를 ‘가짜뉴스 피해자’로 규정한다. 최강욱 전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이 기자가 “사실이 아니라도 좋다. 당신이 살려면 유시민에게 돈을 줬다고 해라”라고 말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은 법원도 인정한 사실이다. 김어준, 유시민, 정준희 등 진보 인플루언서들이 이를 제대로 확인 않고 방송에서 확산시킨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본인의 선 넘은 취재에 대한 성찰, 최소한의 입장은 책에 기록했어야 했다. 기자라면 말이다.  

▲ 지난해 10월4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해 10월4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MBC도 취재원 검증이 부실했다. 이철 대리인을 자처한 제보자X 지아무개씨는 이철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채널A 기자들과 나눈 대화·통화 녹음파일을 이철에게 전하지도 않았다. 대리인을 자처하면서도 이철에 대한 검찰 수사 계획보다 존재하지 않는 정관계 인사 비리 자료를 빌미로 이 기자에게 검찰 관계자와의 연결만 요구했다. 제보자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뒷받침됐다면 보도 출고에 대한 판단이 달랐을 것이다. MBC는 후속 보도로 이철의 일방 주장을 받아썼다가 피소되기도 했는데, 법원은 보도 공공성 등을 이유로 MBC 손을 들어주면서도 “충분한 진위 조사 없이 보도한 것은 상당히 경솔하다”고 꼬집었다. KBS 역시 신성식 검사장 주장만 믿고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동재·한동훈 두 사람이 유시민 비위 의혹을 제기하자고 공모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가 기자가 기소되는 등 오점을 남겼다.

채널A 사건은 언론단체들에도 성찰을 요구한다. 기자가 취재 행위로 수사를 받게 되면 ‘언론자유 위축’을 우려하며 비판 성명을 앞다퉈 내던 진보 언론단체들이 이 사건에서만큼은 고발의 주체로 검찰에 엄정한 수사를 요구하고 압박했다. 이 기자는 자기 책에 검찰의 집요한 압수수색과 수사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속옷 서랍은 물론 화분 속, 전자레인지, 리모컨 덮개, 화장실 천장, 변기 뒤까지 샅샅이 뒤졌다. 심지어 냉동실 속 소고기마저 꺼내져 반으로 썰렸다.” 윤석열 정권 검찰이 뉴스타파, JTBC, 경향신문 언론사와 기자들을 수사 대상에 올려놓고 재단하고 있는 지금, 정권의 무모한 언론 탄압을 감시해야 할 언론단체들은 몇 해 전 달랐던 잣대와 입장을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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