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 관련 보도를 한 언론사 31곳에 대해 장애 차별행위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지난 20일자 진정서를 보면 학대 사건 발생 전 일어난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불필요하게 자세하게 적고 기사 제목에 ‘바지 훌러덩’ 등 자극적 표현을 사용해 장애 아동이 보일 수 있는 인지·행동 특성에 대한 설명이 부재한 채 ‘성적인 문제’로 단정하고 부각해 장애인을 위험하고 문제있는 인물로 묘사해 차별 행위라고 주장했다. 

특히 MBN, 머니투데이, 스포츠경향, 아시아투데이, 뉴스어몽, 뉴스엔미디어, 이데일리 등은 해당 학교폭력 사안에 대하여 “성폭력”이나 “성추행”이라고 규정해 9세 장애아동을 마치 성범죄자인 듯 묘사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발표한 “모든 언론보도와 관련하여 차별을 영구화하는 묘사로부터 보호받을 권리(CRC/C/GC/16, para. 58)”를 현저히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한국일보의 경우 국회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공소장에 기재된 장애아동과 특수교사, 관계자들 발언을 그대로 보도하고 아동과 교사의 대화내용을 담은 이미지를 첨부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장애인의 성적 문제’라는 프레임을 강화했다고 비판했다. 

또 다수 언론사는 아동학대행위자인 특수교사의 동료 교사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인용해 학대 피해아동(장애아동)이 통합학급 여학생을 대상으로 뺨 때리기, 머리 뒤로 젖히기, 신체접촉과 같은 문제 행동을 했다거나 수업 도중 여자아이에게 속옷까지 내려 보여주는 행동을 했다는 등 단편적인 사실을 열거해 역시 문제 학생으로 호도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보도는 장애아동을 통합학급이나 학교, 궁극적으로 사회에서 분리해야 할 이유를 견고히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특수교사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사건 경위서를 인용한 기사도 많았다. 학대 피해아동이 평소 ‘사타구니, 배꼽, 엄마 브래지어, 고추 등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는데 MBN, 뉴데일리, 뉴스1, 아시아투데이, 세계일보, 파이낸셜뉴스, 해럴드경제 등 언론사는 기사 제목에 ‘사타구니·고추’ 등 선정적 단어를 포함했다. 

이는 아동학대 사건과 무관한 장애아동의 행동 특성을 공개하고 이를 이용해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붙여 장애아동이자 학대피해 아동의 언행을 대중들 구경거리로 전락시켰다고 이 단체는 비판했다. 인권위와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을 보면 언론은 장애인이 자존감과 존엄성, 인격권을 무시당한다고 느낄 수 있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정했다. 

▲ 국가인권위원회
▲ 국가인권위원회

 

한 부동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다수 기사에서 ‘서울 ○○초 비상’, ‘사춘기 시작해서 본능에 충실해서 저지른 일’, ‘경기도 △△초 쑥대밭 만들어 놓고 서울 ○○초로 전학’ 등 해당 장애아동의 발달 상태 등을 사실확인 없이 한 누리꾼의 글을 그대로 보도했다. 특히 뉴데일리, 뉴스1 등 보도제목에선 ‘본능에 충실한’이란 문구를 썼다고 진정서에 포함했다. 

뉴데일리는 한 부동산 중개업자의 발언이라며 “특수반이 아니라 아예 특수학교로 가서 비슷한 사정을 지닌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보도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을 사회에서 배제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간 갈등을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경기도교육청 소속 한 특수교사가 SNS에 ‘당신(피해아동의 아버지), 버스에서 대변 본 지적장애 제자, 그 아이 놀림당할까 봐, 손으로 얼른 주워 담은 것 상상해본 적 있냐’, ‘자폐장애 제자가 몰래 자위해서 사정한 거 어디 여학생이라도 볼까봐 얼른 휴지로 닦고 숨겨줘본 적 있냐’ ‘여의도에 꽃놀이 체험활동 나갔다가 갑자기 달려든 제자가 목을 물어뜯은 적 있다. 말 그대로 물어뜯겼다’ 등의 글을 올렸는데 다수 언론에서 이를 인용보도했다. 

이에 정치하는엄마들은 “장애아동이 보일 수 있는 인지·행동 특성에 대한 설명, 이를 뒷받침해야 할 시스템과 인프라가 부족하고 열악한 문제는 생략한 채 장애아동과 관련된 단편적인 사실만 열거해 장애인을 위험하거나 문제가 되는 인물로 묘사했다”며 “특수교사가 좀 더 안전하게 장애아동을 지도하고 보호할 수 있는 노동환경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에 초점을 두지 않고 장애아동의 행동을 맥락 없이 열거한 것은 장애아동을 비하·모욕하는 결과를 낳는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뉴스1, 뉴스엔미디어, 파이낸셜뉴스 등은 장애가 질병이 아님에도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자폐를 앓고 있는’ 등의 표현을 썼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앓다’는 ‘병에 걸려 고통을 겪다’는 의미로 과거에는 장애를 의학적 모형으로 판단했다면 현대 사회는 사회적 모형으로 이해하며, 장애를 개인의 독자적인 특징·성격으로 바라본다”며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도 ‘장애를 질병으로 묘사하거나 연상시킬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밝히고 있다”고 했다.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인 서성민 변호사는 “국내 1위 포털사이트인 네이버가 기존 제휴 언론사에 지급하던 뉴스 전재료(플랫폼 기업이 언론사에 지급하는 뉴스사용료)를 폐지하고 기사로 생기는 광고 수익을 배분하는 방법으로 각 언론사가 수익을 창출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피진정인(31개 언론사)은 물론 대다수 언론사가 기사 트래픽에 따라 수익을 배분받기 위해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공정 보도, 품위유지, 올바른 정보사용, 사생활 보호, 갈등과 차별 조장 금지 등)을 무시하면서까지 자극적인 뉴스 양산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럼에도 언론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경험의 축적을 통해 더 자극적인 보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사회적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라고 진정 취지를 밝혔다. 또 “이달 말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의 4차 공판이 예정돼 있다”며 “공판 이후 모든 언론사가 또다시 장애 혐오의 장을 펼치는 대신 기자협회 스스로 세운 인권보도준칙에 따라 장애인을 위한 제도 개선과 사회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인권위에 진정을 넣은 31곳은 JTBC, MBN, SBS 각 방송사업자의 대표자, 매일경제, 뉴데일리, 뉴스1, 한국일보, 뉴스어몽, 뉴스엔미디어, 머니투데이, 살구뉴스, 스포츠경향, 아시아투데이, 이데일리, 뉴시스, 대전일보, 더팩트, 동아일보, 매일신문, 서울경제, 세계일보, 스타뉴스, 스포츠조선, 아시아경제, 아주경제, 위키트리, 조선일보, 중앙일보, 파이낸셜뉴스, 한국경제, 헤럴드경제 각 신문사의 발행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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