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서 잠이 안 와, 그 때 왜 그랬어? 구차해도 묻고 싶어, 그 때 난 뭐였어?”

가수 백아연의 히트곡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의 도입부다. 국회의 선거제 개편 논의를 지켜보는 마음이 딱 이렇다. 이렇게 현역 국회의원들의 이익만 따져서 결정할 거면, 바쁜 국민들을 불러다 공론조사는 왜 했단 말인가? 공론조사를 해놓고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결정할 거면 말이다. 구차해도 묻고 싶다. 대체 왜 그러고 있으며, 공론조사 할 때 국민들은 뭐였는가?

지난 5월, 시민참여단 469명은 공론조사에 참여했다. 2주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직접 모여 조별 토론도 했다. 전문가로서 공론조사에 참여한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원호 교수는 참여자들이 “‘나라의 장래를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란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셨던 것 같다”고 회고한다. 어르신들이 자료집에 줄 쳐서 보고, 참여자들이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앞에서 토론하며 가슴이 찡했다면서 말이다. (오마이뉴스 〈“‘국민 핑계’ 뒤에 숨은 정치인들, 좀 들어라”〉 2023년 9월5일)

▲ 5월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시민참여단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에서 참여자들이 분임 토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5월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시민참여단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에서 참여자들이 분임 토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론 조사의 가장 두드러진 결론은 비례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례대표 의석 비율문제에 대해,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70%로 현행 유지 18%, 축소 10% 응답을 압도했다. 숙의 참여 전에 확대 27%, 현행 유지 16%, 축소 46%였던 것과 비교하면 극적인 변화였다. 비례대표 선출 범위에 대한 의견은 현행 전국 단위 선출 58%, 광역 단위 40% 였다. 지역구 선거구의 크기는 소선거구제를 선호했으며, 국회의원 정수는 현행 유지, 확대, 축소 의견이 모두 비등했다. 거칠게 요약하면, 국회의원 정수나 지역구 크기, 비례대표 선출 범위는 현행을 유지하되, 비례대표는 확실히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국회 논의는 공론조사의 결론과 완전 반대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여야는 현재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며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향을 공감대를 이루었다고 밝혔다. 쟁점이었던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불발됐고, 의석수를 늘리거나 지역구를 줄여서 비례대표를 늘린다는 방안은 사라졌다. 비례 의석수를 유지하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오히려 비례성이 떨어진다. 단순히 계산하면, 유권자 수가 동일하게 3개 권역을 나누면 비례대표 1석을 얻기 위한 최소 득표율은 3배 올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공론조사의 결과를 겨냥이라도 한 듯 정반대의 행보다.

게다가 여당은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공식 입장은 준연동형제 유지이지만, 지난 총선과 마찬가지로 여당이 위성비례정당을 만드는 걸 막기 어렵다는 이유로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게 현실적이란 당내 주장도 만만치 않다. 권역별 비례와 병립형을 조합하면, 인구가 적은 비수도권 권역에서는 두 자리 득표율이 되어야 비례대표 1석을 얻을 수 있는 경우도 생긴다. 비례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최악의 제도 조합이다. 현재 국회에서의 선거제도 논의는 공론조사 결과에 역행한다는 방향은 합의한 채, 오십보백보의 논쟁만 하고 있는 꼴이다.

▲ 9월1일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리는 국회 본회의장으로 의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 9월1일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리는 국회 본회의장으로 의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어떤 선거제도가 민주주의에 이로운지는 이 글에서는 일단 넘어가자. 개정 방향보다도 공론조사의 경험이 완전히 무시되는 이 상황 자체가 걱정이다. 공식적 절차로 여론을 듣는 건 최대한 그 결과에 구속되겠다는 약속이다. 앞으로 국회나 행정부에서 또 공론조사 등 여론청취를 한다고 한들, 어떤 국민이 진지하게 참여하겠는가. 이렇게까지 가다듬어 갖다 바친 여론까지 무시되면 우리 정치가 어떻게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선거법 개정 논의는 내용과 방법에서 모두 민주주의를 거스르고 있다.

“난 진심이었는데, 넌 그랬구나… 비겁하게 숨어버린 너를 돌아올 거라고 믿은 내가 바보야” 공론조사에 참여한 국민들, 국회의 선거법 개정을 기대한 국민들의 진심은 어디로 가는가. 이 상황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트릴 것이다. 비겁하게 숨어버린 국회의원들을 믿은 우리만 바보가 된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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