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윤석열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는 마지막 방법이라면서 말이다. 여권에서는 보여주기 식 단식이다, 검찰 소환을 앞둔 방탄 단식이라는 조롱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런 모욕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재명 대표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특히 지난 대선 후보이자 현 당대표로서 본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인정은 큰 울림을 준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단식은 민주당 정치의 난맥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점이다.

이재명의 단식은 어쩌면 대선 패배 후부터 예정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선거에서 진다는 건 무슨 뜻인가. 정당이 그간 시행해 온 정치적, 정책적 행보와 앞으로 하겠다고 내건 공약들이 다수의 동의를 모아내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선거에서 진 정당이 지난 행보와 공약을 재검토해 새로운 정책 프로그램과 전략을 내놓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건 유권자에 대핸 도리일 뿐 아니라 정당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특히 정권교체가 일어난 경우, 여당이었던 패배 정당에게 반성과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건 너무나 당연해서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 8월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지도부가 국회본청 앞 투쟁천막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 8월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지도부가 국회본청 앞 투쟁천막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하지만 민주당의 경우 대선 패배에도 문재인 정부나 이재명 후보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뒤이은 지방선거에서 또 실패한 프로그램을 그대로 밀어붙이면서 더 큰 패배를 겪어야 했다. 대선과 지선 사이의 ‘검수완박’ 입법에 대한 대중의 차가운 반응은 검찰 수사권 조정이라는 내용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선거 패배에도 바뀌려 하지 않은 민주당식 정치에 대한 냉정한 평가였다. 잇따른 선거 패배의 책임에도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가 됐다는 것 자체가 원인은 아니지만, 이재명 대표가 지난 1년간 과반수의 유권자를 묶어낼 정책 프로그램의 단초조차 만들지 못한 점은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다수를 설득할 새로운 방안을 대신한 건 더 열심히 뛰겠다는 결기였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방향은 잘못이 없지만 진의가 잘못 전달되거나 외부의 방해로 인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고만 생각했다. 주로 방해한 건 물론 검찰이나 보수 언론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방해를 뚫어내기 위해선 정치인과 열성 지지자들이 더 불굴의 자세로 타협 없이 달려야만 한다. 결국 민주당의 정치는 유권자들이 이미 재차 실패했다고 판정한 방향을 향해 더더욱 열심히 달리는 꼴이 된다.

이렇게 대중의 판정과 엇갈리는 방향으로 열심히만 달리는 정치는 ‘강하고 고립된 정치’로 귀결되기 쉽다. 표현 방식은 점차 거세지지만, 그럴수록 대중의 이해는 구하기 어려워진다.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표현 방식은 더욱 극단적이게 되고, 결국 단식 등 통상적인 의회 정치 방식을 넘어선 극단적 방식이 나타나는 조건이 된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4일 국회 앞 단식투쟁 천막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4일 국회 앞 단식투쟁 천막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대표를 응원하는 지지층 사이에서도 이번 단식에서 내건 요구사항이 불분명하다 지적이 많다. 첫째 요구사항인 ‘국정방향을 국민 중심으로 바꾸십시오’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요청하는지, 언제 단식을 마칠 수 있는지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호함은 단식돌입 연설문을 작성한 한 순간만의 미흡함이 아니다. 당 대표가 단식에 들어간 순간마저도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불분명할 정도로 민주당이 지금 구체적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유권자들은 ‘무엇’을 위해 함께 화내고, ‘무엇’의 부재에 함께 슬퍼해야 하는가. 민주당은 그저 관객보다 먼저 울고 더 크게 화내면서 억지로 감정적 동조를 끌어내는 삼류 신파영화 같은 정치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윤석열 대통령은 아마 사과하지 않을 것이고, 국정방향을 민주당이 요구한 대로 ‘국민 중심’으로 바꾸는 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윤석열도 이미 스스로는 그 나름대로의 ‘국민’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로 자기만 진짜로 ‘국민’을 위해 싸운다는 상황에서, 나만 진짜 국민을 위한다는 호소는 애절할수록 허망하다. 다수를 묶어낼 능력을 잃어버린 민주당의 알리바이일 뿐이다. 민주당이 어떻게 더 많은 유권자들을 묶어낼 것인가 하는 구체적 전략이 구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자리에 어떤 고열량 식사가 곁들여진들, 탓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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