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방부가 공문서를 이런 식으로 기자한테 줘버린다는 건 문제 있죠. 국방부가 역사논쟁에 끼어드는 건 좋은데 역사논쟁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치열하게 하는 거고 정확하게 하는 거지.”(국방부 일일 브리핑에서 기자1 발언)

#2. “‘국방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고 했는데, 이 자유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 건가? 헌법에서 찾으신 건가? 우리 헌법 어디에도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없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어느 헌법에서 비롯한 건지 아십니까? 유신헌법이다. 유신헌법.”(기자2 발언)

#3. “일단 국민들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국방부 발로 국가안보에 도움 안 되고 국민 통합에도 도움 안 되는 기사들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어서 참 안타깝다.”(기자3 발언)

▲ 지난달 30일 방송된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화면 갈무리.
▲ 지난달 30일 방송된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화면 갈무리.

최근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과 출입기자단 질의응답이 화제다. 지난달 말부터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을 공산주의 이력을 문제 삼아 이전한다는 소식에 거센 논란이 일었고, 국민 관심사로 부상한 역사논쟁에 기자들은 국방부 대변인에게 벼린 질문을 던졌다. 국방부는 지난달 28일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에 설치해 기념하는 것은 육사 정체성을 고려하면 적절하지 않다”며 흉상 이전 계획을 밝혔다.

MBC가 유튜브 채널로 내보낸 국방부 브리핑 영상 <“얼마나 부끄럽고 천박합니까!” 국방부 브리핑에 폭발한 기자들>(8월30일), <“자유시참변 사망자가 400여 명? 출처가 유튜브인가” 물었더니>(8월31일)는 각각 조회수 524만회, 117만회를 기록했다. YTN 유튜브 콘텐츠 <“홍범도, 김일성이 관계가 있어요?” 역사수업된 국방부 질의응답>(8월29일) 조회수도 120만회에 달했다. 이들 영상에는 전 대변인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드는 기자들 질문에 찬사를 보내는 댓글이 다수다.

댓글 극찬에 담담한 기자들 “원래 이랬어”

이를테면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는 기자님이 있다니. 국민을 대변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끼게 된다”, “기자를 기레기라고 하지 않고 기자님이라 불러보는 게 몇 년 만인가”, “질문하려고 저렇게 공문서 한 줄 한 줄 다 읽고 공부까지 하신 게 미쳤다” 등 칭찬 일색이다. 대한민국이 기자들에 대한 분노와 분개가 지나칠 정도로 일상화한 사회라는 걸 감안하면 누리꾼 반응은 생경하다.

국방부 기자들 반응은 담담하다. 국방부를 출입하는 일간지 A 기자는 “국방부 해명이 납득 안 되니까 질문하는 거고, 질문에 대한 답변도 납득 안 되니까 추가 질문을 하는 거다. 국방부 기자들 질문이 특별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를 출입하는 B 기자는 “우리는 원래 이랬고, 사실 더 세게 질문했다”며 “해병대 채상병 사건과 수사외압, 홍범도 건으로 브리핑 주목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군과 국방부에 부조리한 일들이 많다보니 경력이 많은 기자들이 이렇게 난장을 벌이곤 한다”고 설명했다.

▲ 8월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 8월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국방부는 일반 부처보다 전문 분야로 평가된다. 국방부에는 주로 ‘외교, 통일, 국방, 안보’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기자들이 적지 않다. 상대적으로 경찰 출입 기자들이 부서를 순환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방부를 잘 아는 일간지 C 기자 말이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국방부 기자들은 독특한 면이 있다. ‘옛날 기자’ 느낌이 난달까. 쫀쫀한 성격들이다. 국방부는 제한된 정보만 제공한다. 정보가 공표됐을 땐 이미 모든 의사결정이 끝나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이곳엔 외교, 안보 쪽을 오랫동안 취재한 기자들이 더러 있는데, 그런 기자들은 제한된 정보 너머를 보기 위해 나름 갈고닦은 사람들 아니겠나.”

국방부가 공개하는 정보가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차별화한 기사를 만들기 위해선 전문가들을 자주 찾아 질문을 던지고 기자 본인도 출입처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도자료 너머를 보기 위한 국방전문 기자들의 생존방식이라는 것.

고압적 질문 왜? “군 지휘부에 보내는 메시지”

이번 홍범도 이슈에선 일부 기자들의 다소 고압적 질문이 양면적 평가를 불렀다. 국방부가 공식 입장을 통해 김일성이 7~10세 때의 홍범도 장군 파르티잔(partisan·비정규군) 이력을 문제 삼자 “국방부 출입기자로서 우리 국방부 인문학적 소양이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무척 안타깝다”, “얼마나 부끄럽고 천박한가”라고 개탄한 기자도 있었고, 홍범도 흉상을 육사 교정에서 빼내기 위해 부러 다른 독립운동가를 거론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그냥 정공법으로 하면 어떨까 싶다. 원하는 것 있으면 그것을 밀어붙이라”고 비꼰 기자도 있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 4일 경향신문 칼럼에 “얼마나 갑갑하면 국방부 정례 브리핑 중에 나온 기자의 질문을 가장해 힐난한 목소리가 시원하다는 세평이 있을까”라고 쓰기도 했다.

‘훈계조 질문이 나오는 이유’에 국방부 기자들은 “브리핑 질문도 군 장성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했다. 국방부를 출입하는 방송사 D 기자는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이런 질문을 하더라, 저런 질문을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더라,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 자체가 장·차관 등 지휘부에 던지는 메시지”라며 “정보가 한정적이다 보니 차별화한 기사를 생산하기 매우 어렵고 방송 기자의 경우 브리핑 질문과 답변을 제한된 방송에 넣기 위해선 기술적 질문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비(OB) 기자들 질문은 때때로 꽉 막힌 이슈에서 국방부가 길을 찾는 출구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홍범도 이슈에서 기자들의 거친 질문은 그만큼 반대하는 여론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국방부가 역사논쟁에 섣불리 뛰어들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언으로 해석된다. C 기자는 “언론 카메라 앞에서의 발언은 그 자체로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되기 때문에 국방부로선 굉장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반면 기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하나라도 더 끌어내고 싶어하니 국방부와 기자들 사이 자연스레 ‘밀당’이 벌어진다”고 전했다.

▲ 홍범도 장군 사진. 이인섭의 외손자인 세르게이 솔로보치코브(Sergey Slobodchikov)가 2016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것들 가운데 하나다. 사진=홍범도기념사업회
▲ 홍범도 장군 사진. 이인섭의 외손자인 세르게이 솔로보치코브(Sergey Slobodchikov)가 2016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것들 가운데 하나다. 사진=홍범도기념사업회

“대변인, 흉상 이전 근거 윗선서 제공받지 못한 모습”

국방부 출입 종합편성채널 E 기자는 해병대 채상병 사건보다 홍범도 이슈에서의 국방부 행보가 비상식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흉상 이전 사유로 꼽은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학계에서는 홍 장군의 자유시 참변 개입 의혹과 공산주의자 논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E 기자는 “국방부 주장에 동의하지 못해도 최소한의 논리적 근거라도 제시한다면 일단은 알겠다는 입장이었다”며 “그러나 홍범도 흉상 이전 건은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국방부가 공문서로 제시한 근거자료는 왜곡 주장으로 점철된 것이었고 대변인은 윗선으로부터 흉상 이전 근거를 전혀 제공받지 못한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김형준 CBS노컷뉴스 기자는 지난 1일 CBS 뉴스 프로그램 ‘정다운의 뉴스톡’에 출연해 “정치가 특정한 의도를 갖고 군에 개입하면 군에서는 정치에 복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뒤트는 이런 일이 생긴다”며 “그래서 (기자들이 국방부에) 계속 항의한 거다. 어떻게 국방부의 역사 인식이 이 정도 밖에 될 수가 없느냐, 그렇게 항의한 게 무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C 기자는 “홍범도 장군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 유명한 분”이라며 “높아진 국민 관심사에 기자들의 에너지가 많이 올라간 것도 사실이다. 기자들의 긴장감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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