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한겨레지부 간부들의 노조비 유용 사건을 자체 조사한 진상조사위원회가 28일 결과 보고서를 내놨다. 한겨레 노조위원장이 자신의 조합비 부정 사용을 은폐하기 위해 실제 만난 적 없는 조합원과 마치 간담회를 가진 뒤 조합비를 지출한 것처럼 사용 내역을 조작하는 등 비위 사실이 확인됐다. 노조비로 개인 차량에 기름을 넣고 이를 감추려다가 결국 조합원들에게 거짓 해명을 하고, 주말·공휴일에 쓴 노조비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는 등 한겨레 노조 간부들의 도덕 불감증과 위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를 감사했던 상급단체 전국언론노조의 특별감사도 부실 감사로 판명 났다.

올해 초부터 언론노조 한겨레지부 조합원들은 33기 노조 전임자들(지부장·사무국장)의 교통비 및 간담회비 지출이 과다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오아무개 전 지부장은 이를 소명하겠다며 지난 4월 언론노조에 특별감사를 요청했고 ‘문제없음’으로 결과가 나왔지만, 한겨레 내부에선 ‘봐주기 감사’, ‘부실 감사’라는 비판이 거셌다. 소명되지 않는 노조비 지출에 해명을 요구받던 오 전 지부장과 이아무개 전 사무국장은 동반 사퇴했고, 오 전 지부장은 사직서를 제출하여 지난 2일 수리됐다.

한겨레 노조 구성원들이 지난 5월 자체적으로 구성한 ‘제33기 한겨레 노조 간부의 노조비 유용 의혹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노조 카드 사용 내역을 전수 분석하고, 관련자들을 대면과 서면으로 조사했다. 오 전 지부장은 대면 조사를 거부해 서면 조사로 대신했다.

▲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조합비 사용 은폐 위해 만난 적 없는 조합원과 만난 것처럼

당초 조합원들이 가장 문제 삼은 지출은 오 전 지부장의 지난해 9월 3~4일 제주도 출장비다. 오 전 지부장은 지난 2월 대의원회의에서 공석인 한겨레지부 미디어국장 섭외를 위해 당시 제주도 한 달 살기 중인 조합원을 설득하려 이 전 사무국장과 함께 1박2일 제주도 출장을 떠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거짓 해명 논란에 휩싸였다. 제주도 출장이 조합 사무가 아닌 오 전 지부장의 가족 일정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사 결과 ‘조합원 간담회’를 이유로 한 제주도 출장은 9월 3~4일(1차) 외에도 한 차례(9월30일~10월2일·2차) 더 있었으며, 두 차례 모두 사무국장과의 동반 출장이 아닌 오 전 지부장 단독 출장이었다. 오 전 지부장은 두 차례 출장에서 숙박, 항공료, 차량 렌트비 등 총 185만2376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 전 지부장은 1·2차 제주도 출장 때 ‘전국부 조합원 간담회’ 명목으로 모두 8건(총 40만2100원)을 조합비로 지출한 것으로 기재했으나 제주도 주재 전국부 조합원은 오 전 지부장과 만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오 전 지부장은 2차 출장 때 ‘콘텐츠 기획(팀) 조합원 간담회’ 명목으로 김포공항 내 식당과 카페에서 총 4건(총 3만8500원) 지출 내역을 작성했는데 오 전 지부장이 지목한 조합원은 “만난 적 없다”고 반박했다.

오 전 지부장은 서면 조사에서 제주도 출장에서 조합비를 유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논란이 된 1차 제주도 출장은 가족과 함께 갔다”며 “조합카드 사용 내역에 공적으로 쓴 내역과 사적으로 쓴 내역이 혼용돼 있다. 출장을 다녀온 후 조합카드에서 사적으로 사용한 내역을 정리해 도합 100여만 원을 조합 계좌에 회입한 바 있다. 사적으로 사용한 부분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진상조사위는 서면 질의를 통해 오 전 지부장에게 2차 제주도 출장에 대한 소명을 요구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노조비로 개인 차량에 기름을 넣고…조합비 부정 사용

유류비 사용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조사위는 33기 노조 전임 집행부의 ‘교통비’ 가운데 209만3000원이 주유소에서 사용한 유류비로 확인됐다고 했다. 이 가운데 79만4000원은 12차례에 걸쳐 휴일(주말·공휴일)에 쓴 것이다. 유류비 중 80만2000원은 회입 처리됐으나 조사위는 나머지 129만1000원에 대해서도 ‘조합비 부정 사용’으로 판단하고 회입을 요구했다.

조사위는 “우리 노조 회계에 ‘교통비’ 계정 과목이 있으나 개인 차량에 기름을 넣는 유류비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노조 사무간사와 과거 집행부 전임자들에게 확인한 바 집행부 워크숍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집행부가 유류비를 ‘교통비’로 쓴 전례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만약 유류비를 조합비로 쓰고자 했다면 ‘유류비’ 계정 과목을 신설하고 이를 대의원대회에서 승인 받아야 했다는 지적이다. 유류비 대부분은 이 전 사무국장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위는 “조합비로 유류비를 쓰고 이를 감추려던 것은 이후 오 전 지부장의 ‘제주도 출장’과 맞물려 이후 전임자들이 조합원들에게 거짓말을 반복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도 확인됐다”며 “조합 전체 씀씀이가 이전 집행부 때보다 커진 데다가 유류비 때문에 ‘교통비’ 지출이 너무 커져 올해 2월 열린 대의원대회를 계기로 일부 대의원들이 회계 장부 공개 등 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며 ‘부적절한 조합비 사용’ 문제가 불거졌다”고 설명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오 전 지부장과 이 전 사무국장은 사실을 밝히는 대신 ‘교통비’ 가운데 일부 금액을 오 전 지부장의 ‘제주도 출장비’로 이전하는 방법으로 대응키로 했고, 그 결과 ‘교통비’가 줄어드는 대신 ‘제주도 출장’ 비용이 커져 누구와 출장지에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등 제주도 출장 의혹이 증폭됐다는 진단이다.

조사위에 따르면, 33기 전임 집행부가 주말에 사용한 조합비는 279만 원이었다. 조사위는 “당사자들 스스로 구체적 집행 항목에 대해 지출 적정성을 제대로 소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말·공휴일 사용분 전체를 조합비 부정 사용 또는 부적절한 사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설사 개인적 용도로 쓰지 않은 내역이 있대도 주말·공휴일에 조합비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진상조사위 최종 판단”이라고 했다. 오 전 지부장은 “휴일 사용과 관련해 사적 사용은 없었다”고 했고 이 전 사무국장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100% 다 소명할 수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회입한 적 있다”, “개인적으로 쓴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은 잘못을 인정하고 회입 조치했다”며 주말 사용분 일부를 회입 조치했다.

▲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피감사인 주장만 들어”…언론노조 특별감사 ‘부실’

진상조사위는 “노조 요청을 받아 언론노조 특별감사가 진행됐지만 부실 감사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진상조사위 판단”이라고 밝혔다. 한겨레 노조비 유용에 관한 언론노조 특별감사는 지난 4월25일 이뤄졌는데, 조사위는 언론노조 특별감사가 오 전 지부장이 작성한 것으로 파악된 보고서만 참고했다고 지적했다. 오 전 지부장은 감사에게 “가족 동반 의혹이 제기됐지만 결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으나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 가족 동반 출장임이 확인됐다. 진상조사위는 “언론노조는 오 전 지부장이 제주도에서 만났다고 한 조합원 등에 대한 추가적 확인을 거치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피감사인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는 형태로 감사를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언론노조 관계자는 “한겨레 내부 사정을 세세하게 알 수 없고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은 언론노조 회계감사로선 피감사인이 기망을 작정하면 조사를 하는 데 있어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며 “장부를 중심으로 점검하는 회계감사의 한계는 분명하기 때문에 이 부분 개선을 위한 감사 투명성 강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한겨레 사내 상황에 밝지 못한 언론노조 감사들로서는 장부를 중심으로 한 대차대조에 그칠 수밖에 없고 관계자 면담 등 추가적 확인도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상조사위는 “조사 결과, 노조 전 간부인 오 전 지부장과 이 전 사무국장은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납부한 소중한 조합비를 부정 사용했다고 본다”며 “노조 규약 및 운영 규정 등을 토대로 해당자에 대한 징계를 추진할 것을 노조에 요청한다”고 했다.

다만, 오 전 지부장의 경우 현재 퇴사한 상태이기 때문에 적어도 부정 사용액에 대한 회입 요청을 통해 노조비를 복원할 것을 주문했다. 노조비 유용 재발을 막기 위해 노조 활동 참여와 소통을 활성화하고 노조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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