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8일, 그 날부터 20년이 지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늘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천 번의 시간. 그 긴 시간 동안 할머니들은 똑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하나 둘 옆의 동료가 떠나갔다. 그렇게 목청껏 외쳤지만 할머니들 앞에 있는 빨간 건물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이하 수요집회)’가 12월14일로 딱 천회를 맞았다. 긴 세월 동안 오롯이 견뎌낸 세계 최장기 집회다. 때문에 이 자리는 잔치였다. 평일 점심시간임에도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든 3천여명(경찰추산 1천명)의 시민들은 꿋꿋이 버텨온 할머니들을 “사랑한다”며 위로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있어서는 안 될 자리였다. 세계 최장기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일본 정부는 사과는커녕 위로의 말 한 번 하지 않았다. 저지른 범죄를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법적 보상을 했다면 할머니들이 힘든 몸을 이끌고 천 번이나 눈·비를 맞아가며 길거리 시위를 벌이지 않아도 됐다. 때문에 이 자리는 기약 없는 고통의 또 다른 시작이기도 했다.

수요집회 사회를 맡은 연기자 권해효씨는 “이날이 기쁜 날인지, 슬픈 날인지 내 기분이 답답한지 어쩐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권씨는 “20년 긴 세월동안, 이 부끄러운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할머니들, 그들의 소원은 다름이 아니라 다음 주에는 수요시위를 안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할머니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기 때문. 불과 하루 전인 13일 김요지(83) 할머니가 떠났고 얼마전 중국에 살고 있던 박서운(94) 할머니도 떠났다. 올해만 16명의 할머니가 그렇게 떠났다. 처음 위안부로 등록된 234명의 할머니 중 이제 63명만이 생존해있다. 그나마 이날 수요집회에 참석한 할머니는 길원옥·김복동·박옥선·김순옥·강일출 총 5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답이 없다. 심지어 한국정부도 어떤 답을 내려주지 못하고 있다. 윤미향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대표는 “오늘이 집회의 완성이 아니라 다음주에는 1001번째 수요시위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지만 이 기약 없는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이날도 외침은 계속되었다. 김복동 할머니는 “왜적에게 나라를 강탈당하고 총칼아래 쓰러지고, 징병이니 징용이니 심지어 어린아이들은 학도병이니 싹 끌어가 놓고, 이제 피어보지도 못한 소녀들을 먼 외국 전쟁터까지 끌고 가 허무하게 짓밟았다”고 조용히 절규했다.

할머니는 “이명박 대통령도 백발 늙은이들이 거리에 앉아 아우성을 치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정부를 향해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말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일본대사관을 향해 “일본대사는 이 늙은이들이 죽기 전에 빨리 사죄하라”고 외쳤다.

3천여명의 시민들도 할머니의 외침에 따라, 사회자의 외침에 따라 “사과하라”, “배상하라”를 외쳤다. 특히 어린 여고생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운천고등학교의 한 여학생은 “수능이 끝나기 전까지 수요집회가 끝나기를 바랐지만 천회까지 오게 되었다. 너무 야속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학생은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갖는다면 반드시 해결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에서 잠깐 빠져나와 참석했다”는 직장인도, “한국에 오면 반드시 수요집회에 나오고 싶었다”던 재일교포 최단열씨도 있었다. 금발의 외국인도, 일본에서 온 시민사회 관계자들도 할머니들과 함께 외치고 일본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날은 또 하나의 특별한 순서가 있었다. 일본 대사관 앞에 한복을 입고 단발머리를 한 체 대사관을 바라보고 있는 높이 1.3m 가량의 위안부 할머니의 10대 모습을 담은 평화비가 세워진 것이다. 아울러 춘천MBC 박대용 기자와 블로거 미디어몽구가 트위터에서 제안한 뒤 성금을 통해 마련한 ‘희망의 승합차’ 전달식도 가졌다.

한편 이날 시위에서는 TV조선과 채널A 기자들이 시민들을 인터뷰 하려다 거센 항의를 받고 쫓겨나기도 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친일언론”이라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또한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수요집회에 참석해 연대발언에 나섰으나 시민들로부터 “내려가라”며 야유를 받아 말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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