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새 경제부총리로 한덕수 전 국무조정실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여론을 통한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해 일부 언론이 "본말이 전도된 여론재판식 인사검증"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과연 누가 여론재판을 했느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 사퇴 이후 청와대는 한 신임 부총리와 함께 윤증현 금감위원장, 신명호 전 아시아개발은행 부총재와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을 부총리 후보로 언론에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여론을 통한 인사검증을 했다. 노 대통령은 강봉균 의원을 제외한 3명의 대상자와 면접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최종적으로 14일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을 부총리로 임명했다.

동아 "적임자 찾기 보다 약점 감추기 인사검증"

   
▲ 동아일보 3월15일자 A4면.
이를 두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은 여론을 통한 인사검증 시스템에 잡음이 많았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15일자 4면 <시비 가리기보다 인사검증 시비 피하기 급급>에서 "청와대가 이 전 부총리의 후임 인선과정에서 4명의 후보자를 사실상 공개한 것도 '사전 여론 검증' 명목이었지만, 후보자들의 결점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과연 누가 적임자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약점이 없느냐'에 초점이 맞춰지는 본말 전도 현상이 빚어졌다"고 지적했다.

동아는 이어 "참여정부의 협소한 인재풀은 이런 문제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는 게 인사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라며 "이러한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검증능력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덧붙였다.

   
▲ 경향신문 3월15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사설 <한덕수 부총리, 시장개방이 만능은 아니다>에서 "청와대는 이번 경제부총리 인선 과정에서 후보자들에 대한 '여론재판'식 검증이 이뤄지면서 나타난 후유증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지금부터라도 인력풀을 확충하고 인사시스템을 혁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 "잡음과 상처남긴 인사시스템" 경향 "여론재판식 검증"

중앙일보도 <노 대통령, 후보 3명 '면접'>에서 "언론에 2∼4명의 후보군을 거명하고 여론 검증을 받게 하는 청와대의 새 인사 시스템은 이번에 적잖은 잡음을 남겼다"며 "탈락자들은 '아들 문제'로 상처를 입거나 과거 재직시의 불분명한 의혹을 시민단체가 집중 제기하는 등 파문이 적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 중앙일보 3월15일자 3면.

이장규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대표이사은 이날 <이장규 칼럼: "해일에 휩쓸려 가는 장수…">에서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 첫째 관건을 여론의 향방이라며 "후임 경제부총리를 뽑는 과정이나 방법을 봐도 첫째도 여론이고 둘째도 여론"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어 "여론을 떠보는 일도 좀 기술적으로 은밀하게 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노골적이고 서툴러서 거론되는 사람마다 민망하게 만든다"며 "누가 봐도 적임자를 뽑으려는 게 아니라 트집 안 잡힐 사람을 고르겠다는 의도가 너무도 뻔히 들여다보인다"고 덧붙였다.

중앙 이장규칼럼 "청와대 인사는 첫째도 둘째도 여론"

이 대표는 "이런 식으로 뽑으면 설사 유능한 인물이 뽑혔다 해도 그 사람은 공연히 무능한 사람 취급받기 딱 알맞다"며 "사람 뽑느라고 시간 보내고, 뽑은 사람 내보내느라고 이처럼 시간 보내는 정부는 처음 본다. 일하는 데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계속 반복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라고 주장했다.

   
▲ 중앙일보 3월15일자 35면.
청와대는 이 같은 언론보도에 "여론의 검증을 거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공개하니 부작용이 많다고 지적하는 것은 이중잣대"라면서도 내심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언론의 보도태도가 과연 합리적인지 모르겠다"며 "4명 중 문제가 없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4명 모두 적임자였고, 이 중 검증을 통해 선정됐으면 이 또한 적임자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다른 한편으로 인사검증시스템의 문제를 보완할 개선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여론검증 거치자고 할 때는 언제고...여론재판은 언론이 한 것"

다른 관계자는 "우리도 제도개선을 계속 해나갈 것이지만 언론도 바뀌어야 한다"며 "마치 우리가 여론재판을 한다고 언론이 비판하는 게 말이 되느냐. 흠이 있어도 대승적으로 인정해달라고 그렇게 얘기해도 이를 수용하기보다는 오히려 흠을 확대해 나간 게 누구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한편 15일자 조간신문들은 신임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해야할 역할에 대해 엇갈린 주문을 했다.

조선일보는 정부 내 실용노선이 좌절을 겪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 조선은 사설 <경제부총리,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다>에서 "대통령과 경제철학이 일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개입이 아닌 민간부문의 활력에서 경제회복 동력을 구하는 시장친화적 성장정책에 대한 확신을 대통령에게 심어줘야 한다"며 "대통령 주변에서 분배와 형평을 위한 정부 개입 요구가 득세하고, 그래서 정부·여당 내 실용노선이 좌절을 겪는 일이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한부총리와 대통령이 함께 할 일, 말 일>에서 "재보선 앞두고 여권이 무리한 선심정책과 인위적 경기부양의 유혹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나 부총리마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면 부작용과 후유증이 커질 우려가 농후하다"며 "출자 총액 규제, 금융계열사 의결권제한 등도 재검토해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아는 한 부총리에게 "대통령이 조율되지 않은 정책을 꺼내면 그 문제점을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임 경제부총리 할 일, 실용노선 고수 vs 양극화 해소

반면 서울신문과 한겨레 경향신문 등은 양극화 해소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해 대조를 보였다. 서울신문은 <한 부총리, 가슴으로 '양극화' 만나라>에서 "어쩌면 경기의 불씨가 살아난 만큼 한 부총리는 양극화를 해소하는데 제1의 역할을 두어야 할 것"이라며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도 사설 <한덕수 부총리에 대한 걱정과 기대>에서 개방 만능주의 사고에 젖어있고 세제 금융 부문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군걱정이 되기를 바란다며 그러자면 △경기회복 △기업·금융개혁 △양극화 해소 △정책 기조가 개방 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는 것 △개혁 지향적인 세력과의 진지한 대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경향은 사설 <한덕수 부총리, 시장개방이 만능은 아니다> "자신의 실력이나 이나 공을 과시하기 위해 성급하게 기존 정책을 뒤집거나 손을 대서는 안된다"며 "앞으로 시장친화적 정책이나 시장개방을 통한 개혁이 가속화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시장경제, 시장원리로만 풀 수 없는 문제도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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