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궁궐 지붕을 올려다보면 지붕 양쪽 끝에 용마루가 있다. 하늘과 맞닿는 이 용마루에서부터 차례대로 용두, 그리고 동물의 형상을 한 조각품들인 잡상이 배열돼 있고 지붕 끝에 치미라 불리는 장식재로 마감돼 있다.

잡상은 장엄과 위엄을 의미하는 상징적 장식으로 용, 봉황, 사자, 기린, 천마, 해마, 고기, 해치, 원숭이 등 신성한 동물들이 형상을 하고 있다. 잡상을 건물의 머리 위에 얹어 놓음으로서 건물을 수호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대문 쪽으로 가는 길 오른편에 있는 경희궁 터에 눈이 내렸다. 흰눈이 내려앉은 까만 궁궐지붕의 잡상들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숫자를 세어본다. 기와지붕에서조차 조선의 사대를 읽는다. ⓒ오동명
이 잡상들은 서유기에 나오는 인물과 동물들이 대부분인데 잡상의 맨 위에 삼장법사가, 그 아래로 원숭이인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을 뜻하는 사자상 등이 놓여져 있다. 이를 알고 우리 궁궐을 보고 있노라면 건물 하나를 짓는데도 의미를 부여한 우리 조상의 여유와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용마루 양끝의 치미도 마찬가지다. 치는 바다에서 사는 짐승으로 목재건물을 화재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건물 위에 앉혀놓았다. 이것만이 아니다. 경회루 연못엔 불을 잡아먹는다는 짐승인 신화적 동물, 불가사리를 청동으로 만들어 넣어두기도 했다. 

우리가 중국 황실의 치미보다 적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그러나 궁금했고 찝찝했다. 왜 하필 지붕의 장식기와까지 중국의 것을 따라야만 했을까. 특히 잡상은 건물 안에 묵거나 일을 보는 이의 지위의 격에 따라 세워지는 그 숫자가 달랐다 한다. 그 수는 격이 높을수록 많았다. 경복궁 등 우리 궁궐들의 그 잡상 숫자는 많아야 여덟이다. 대개 일곱 개 정도가 얹어져 있었다. 그나마 일반인들의 집 지붕에선 거의 볼 수도 없다.

왜 여덟일까? 아홉은 아무나 쓸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란다. 황제만이 쓸 수 있는 영적인 수가 '9'였다. 이 아홉은 우리나라에선 쓸 수가 없었고 중국의 황제만이 쓸 수가 있었다. 이래서 중국의 왕궁 지붕에도 잡상이 있는데 그 숫자가 우리 궁궐보다 많은 아홉 개란다.

오래 전 대학 때 국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현판 교체 논란을 빚었던 서울 광화문에도 잡상들이 놓여져 있다. 세어보니 일곱 개였던 것 같다. 용두와 잡상을 정확히 구분할 수가 없는 내 얄팍한 지식 탓에 그 숫자가 일곱인지 여덟인지 지금도 애매하다. 어떻든 아홉은 아니다.

광화문 현판 교체는 다음으로 미뤘다고 들었다. 바꿔야 한다고 떠들어대던 문화재청은 교체 하는 저의를 의심 받은 후 약삭빠른 개 마냥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이 역시 정치적적 '눈치 보기'와 다름없다. 이로 인해 역사 바로 세우기가 또 뒤로 미뤄졌다. 뒤로 미룬다고 하니 시끄럽게 떠들던 양편 모두 침묵으로 일관이다. 이렇게 은근슬쩍 역사의 정의는 또 묻혀져 가고 있다. 광화문 현판만이 아니다.

말로 대충대충 넘어가지 말고 확실한 행동을 보여줘야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엄연한 우리 역사인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 속에 편입시키려고 한다는 뉴스가 나오니 좀 떠들썩한 듯싶더니 이 또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러던 중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겨대기 시작했다. 일본 눈치만 보던 정부도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까지 겹치면서 강경 자세로 선회한 듯하다. 더욱이 편을 갈라 이기적 싸움만 일삼던 우리 정치판이 오랜만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우리 스스로는 안 되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적기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는 늘 편을 갈라 싸움판만 크게 벌려 놓고 역시 그 싸움판은 어떤 결론 없이 항상 대충대충 마무리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의 몰상식한 행동에 오랜만에 싸움을 그치고 한 몸이 된 듯 보인다. '쉬~쉬' 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유리하다던 우리 나라 외교통상부 장관까지 독도 문제는 한일관계를 넘어선 상위개념이라며 일본에 대해 강경하게 돌아섰다.

벌써 잊혀져간 광화문 현판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의도는 여기에 있다. 이 기회에 우리 내부를 정리하고 정돈할 필요가 있다는 바람이다. 보자. 일본이 우리 기준으로나 상식적인 기준으로 봐도 어떻게 저렇게 몰상식하게 나올 수 있겠는가.

중일 관계 소극적 외교에서 적극적 외교로 전환해야

지난 삼일절에 노 대통령이 과거 일제강점 당시의 피해에 대해 일본정부의 보상을 요구하는 발언을 했었다. 바로 이 날,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뭐라고 반응했나. 노 대통령이 국내문제 때문에 그런 발언을 했을 거라며 무반응 또는 무관심한 척 넘기지 않았는가.

혹여 노 대통령에게 직접 들은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가질 법하다. 우리 땅 제주도에서 두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우리 대통령은 일본 총리에게 임기 중에 과거사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직접 들은, 그것도 한국 땅에서 마주 보고 들은 얘길 믿고 있을 것이다. 그걸 노 대통령의 진심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친일파의 잔재와 친일청산파가 야당, 여당으로 갈려 싸움질만 하고 있는데다가 친일파 후손인 자가 당 대표로 있는 야당의 공세에 밀려 후퇴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일본 총리가 감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된다. 이러니 고이즈미는 방송 마이크 앞에서 공개적으로 노 대통령의 삼일절 발언에 대해 '노 대통령이 국내 문제 때문에 할 수 없이' 라는 그럴 수밖에 없는 국내의 상황 모면을 위한 부득불한 정치적 쇼라는 뉘앙스를 흘렸던 게 아니던가.

대통령이나 야당 지도자나 우릴 우습게 봤다는 말이 된다. 누굴 탓해야 하나. 우선 일본보다도 우리의 역사를 정리하거나 우리 역사에 대해 국민의 뜻을 맞추지 않고는 일본이 보이고 있는 작금의 몰염치, 몰상식 내지는 제2의 침략의도를 분쇄할 수가 없다. 100년 전 우리 땅에서 일어난 일과 지금이 뭐가 다른가. 또 우리 내부의 합일 없이 싸움질만 하다가 또 다시 100년 지난 지금 합방치욕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래서 나는 지금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보고 있다. 우선 눈치 보고 뒷날로 미뤄놨던 광화문 현판 문제와 함께 이 기회에 우리의 자주성을 찾아야 한다. 이 글 서두에 쓴 우리 궁궐 지붕의 잡상부터 없애든가 잡상의 숫자를 자주적인 숫자로 맞춰놔야 한다. 잡상의 숫자를 줄임으로써 스스로 중국에 복속했던 조선 왕들의 사대주의부터 이젠 우리 후손들이 제대로 바꿔놔야 한다.

일본 눈치 보기 집어치우고 일제 청산은 과감히

말만 자주를 부르짖을 게 아니다. 그리고 이참에 일본으로 비틀어진 광화문의 위치도 제대로 잡아줘야 한다. 광화문의 위치 바로잡기는 건축물의 자리 옮기기는 문제가 아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다. 그리고 이왕 재건축해야 할 광화문이라면 멋스럽게 짓자. 허여멀건 돌 위의 목재건축물이 늘 눈에 거슬렸었다.

건물 하나라도 천년이 이어질 수 있도록 제대로 세워두자. 돈이 없다고? 수도이전 비용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되는 돈이다. 새로 지어야 할 수도건설도 중요하지만 지금 국내외적으로 더 필요한 건 우리의 과거 바로 세워놓는 일이다.

묵묵히 행동하는 자가 끝내 이기는 법

일본이 저렇게 날뛰고 있을 때, 우리 땅의 일본잔재를 정리하자는데 누가 시비를 걸 수 있겠는가. 시비를 걸어온다면 자충수가 될 게 분명하다. 이젠 분위기로 봐서 몇 달 전처럼 이 땅의 일제잔재가 일제청산이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느니 하며 어찌하진 못할 것이다.

이 지혜는 분열된 우리를 보고 까불어대는 일본을 겁주는 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정부의 강경 선언이니 시민단체의 거리 성토로는 눈 깜짝하지 않을 게 일본이다. 왜? 그들은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 잘 꿰차고 있다. '저러다가 말겠지' 라는 우리의 약점을 드러내 놓고는 어느 외부의 적 또는 마찰에 당당할 수가 있겠는가.

며칠 전에도 듣지 않았던가. 미국의 일개 상원의원이 하는 말을. "한국이 미국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적과 친구를 분명히 하라." 한 민족인 남과 북을 이렇게 이간질해대고 있다. "도움을 받으려면?"이라는 말은 우리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트렸다. 광화문 복원이 단지 옛 건축물(광화문) 하나 뜯어고치는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상대(일본이나 미국)는 입만 떠들어대는 일과는 다른 공포감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

싸움판에서 한판 붙기 전 웃통을 벗어던지고 '너 가만 안 놔두겠다'고 입만 설쳐대는 자가  곧바로 한방에 쓰러지는 장면과 같은 모양새다. 아무 말 않고 고개를 숙이고 제 주먹을 주무르며 상대의 공격에 대비하는 자는 늘 싸움에서 이겨온 것이 싸움판의 법칙이다. 호들갑만 떨다 그만 두게 되면 적에게 또 하나의 허점만 노출시킬 뿐이다.

묵묵히 이제라도 광화문을 헐자. 아직도 권력으로 득세하고 있는 일제의 잔재를 이 땅에서 쓸어내자. 

   
오동명 작가는 1957년 생으로 경제학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사진기자를 지냈다. 직업인이 아닌 직장인으로서 신문사에 근무할 때 3년에 한 권 꼴로 책을 내겠다는 계획을 직장을 그만 두고 변경했다. 1년에 한 권은 꼭 내겠다고. 별 다른 재주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 약속을 아직까지는 지키고 있다.

2000년엔 <당신기자 맞아> 증보판을, 2001년엔 <신문소 습격사건>을 냈고, 2002년엔 소설<바늘구멍사진기>, 2003년엔 사진취미 책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가 시중에 나와 있다. 2004년엔 여행책 <5만원 2박3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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