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성우 시인, 전 의원.ⓒ 한겨레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눈을 뜨면서 뜨겁게 뜨겁게 숨쉬는 것을 보았는가. 논과 밭이 가라앉으며 한꺼번에 한꺼번에 죽어 가는 것을 보았는가.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 대고, 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대는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겨울공화국', 양성우)

유신정권의 서슬 퍼렇던 통치아래 반체제 시를 낭송했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국어교사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야 했던 한 시인이 30년 만에 교단에 다시 서게 됐다.

주인공은 1975년 2월 민청학련 관련자들을 위한 구국 금식 기도회에서 시 '겨울공화국'을 낭송한 이유로 같은 해 4월 광주중앙여고에서 파면된 양성우(62) 시인. 양 시인은 이후 중앙정보부 연행과 전남 구례 천은사 유폐라는 고초를 겪었다. 1977년에는 일본 '세카이'지에 시 '노예수첩'을 게재했다가 국가모독 및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서대문구치소에서 3년, 옥중투쟁 혐의로 2년을 추가 구형 받고 복역하던 중 지병으로 1979년 가석방됐다.

이후 정치권에 잠시 몸담기도 했던 양 시인은 지난해 12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변정수, 이하 민주화보상심의위)'의 복직권고 결정에 따라 지난달 24일 교사직 복직요구서를 냈으며, 최근 학교 이사장을 만나 복직에 최종 합의했다.

"어두운 한 시대가 지나고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저의 복직권고를 해 주신 것에 대해 노 대통령과 민주화보상심의위 관계자 모든 분께 감사 드립니다." 18일 수화기 너머 상기된 목소리 속에 너털웃음을 짓는 양 시인의 소감이다.

양 시인은 '반구정에 올라'(시집 '물고기 한 마리' 중)에서 '이른 봄날 반구정에 오르다. 옛 정승 황희가 빈손으로 돌아와 물새들과 놀던 곳, 아직도 잔물결 반짝이며 흐르는 강 언덕에 서서 벼슬 높은 도둑들로 어지러운 이 시절을 한탄한다'고 읊었다.

그러나 지난 1988년부터 13대 평민당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한 양 시인은 이제 정치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했다. "요즘에는 정치적인 발언을 삼갑니다. 정치계를 떠난 지 오래됐기 때문입니다."

대신 양 시인은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시 쓰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 작업을 계속 하려고 합니다"라며 앞으로도 시작(詩作)에 꾸준할 것을 다짐했다. 이제 30년 만에 국어교사 자리로 돌아간 양 시인은 민주화보상심의위 복직권고 결정을 받은 '모든 억울한 분'들의 권리가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제 문제가 이렇게 해결된 것에 대해 혼자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혼자만의 문제라면 기쁘지 않고 오히려 서글펐을  것입니다. 제가 복직된 것을 선례로 해직언론인을 포함, 억울한 모든 분들이 복직되고 권리 회복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양성우 시인은 누구

시인 양성우는 1943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70년 '시인'지에 '발상법' '증언'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5년에는 민청학련 관련 구국기도회에서 시 '겨울 공화국'을 낭독해 광주 중앙여고 교사 직에서 파면됐다. 2년 뒤인 1977년에는 일본 월간지 '세카이'에 시 '노예수첩'을 게재했다가, 국가모독 및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1985), 서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1986),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1988),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2000) 등을 지냈다. 1988년에는 서울 양천갑에서 평화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1985년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시집으로는 '발상법'(1972), '신하여 신하여'(1974), '겨울공화국'(1977), '북 치는 앉은뱅이'(1980),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1981), '5월제'(1986), '그대의 하늘 길'(1987), '세상의 한가운데'(1990), '사라지는 것은 사람일뿐이다'(1997), '첫 마음'(2000) '물고기 한 마리'(200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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