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갑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신임 지도부가 17일 오후 4시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찾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민주당은 지난 3일 전당대회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이날 김 전 대통령을 찾은 것도 DJ와의 깊은 인연을 재확인하고 정치적인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민주당 지도부에게 쓴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쓴소리에는 민주당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신낙균 민주당 부대표는 "민주당이 정통성을 계승하는 정당이고 대통령의 유일한 적자로서 역할을 하고 가끔 찾아뵙겠다. 좋은 방향을 제시하는 말씀을 듣고 싶다"며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조언'을 구했다.

김 전 대통령 "민주당이 무엇을 반성해야 할지 생각해 보라"

김 전 대통령은 "나는 이미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고 전제하면서도 "민주당 창당이후 50년이 넘었는데 지금처럼 어려운 적이 없었다. 선배들의 업적을 훼손하지 않고 잘 해결해 나갈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반성도 해야 한다.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새롭게 해야 할지 잘 생각해 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한화갑 대표는 "솔직히 우리는 대통령(김 전 대통령)을 의지하고 싶다. 그러나 대통령을 우리 몫이라고 하면 그게 누가 될지 모르겠다"고 속내를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누가 되지 않는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누구를 존경하고 배운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내가 정치개입을 안하는 것은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 "우리 역사에 민주당 같은 정당이 어디 있나"

김 전 대통령은 "여러분과 내가 반세기 동안 함께 정치를 해왔는데, 내가 정치하는 것을 봐 왔으면 거기서 배우고 뼈를 깎는 반성도 해야 할 것"이라며 "나 자신을 버리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우리 역사에 민주당 같은 정당이 어디 있느냐. 민주당은 창당 이래 3대 업적이 있다"며 "민주당이 50년 동안 3대 원칙(이승만 독재 반대, 관치경제 반대, 평화통일정책 정착)을 지키고 그 바탕에 대한민국의 국기를 세웠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훌륭한 정당이 어디 있는가"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 지도부가 신익희 조병옥 장면 박순천 정일형으로 이어지는 역대 민주당 지도자들의 묘소를 참배한 것에 대해서도 "참 잘한 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 "북한 핵보유 선언, 미국 일본 강경파에 구실 줘"

김 전 대통령은 북핵 해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북핵 포기와 북한의 안전보장'이라는 자신의 소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은 '자신들이 핵을 포기하려 하는데 미국이 왜 북한의 안전보장을 하지 않는가'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라며 "일리 있는 말이다. 해결책은 그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이 정당한 이야기를 6자회담에 참여해서 하지 않고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이번 북한의 행위는 미국과 일본의 강경파에게 큰 구실을 줬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행동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북한이 주장은 옳은데 방법은 잘못돼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고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 "처음에 열린당 초선의원들이 4대법안 밀어붙여"

지난해 연말 쟁점이 됐던 '4대 개혁입법' 문제도 이날의 화제가 됐다. 김효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4대 개혁입법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고 분열됐다. 정부 여당에서 무리하게 처리 안하고 있어 다행"이라며 "사립학교법 등을 무리하게 처리하면 정권에 도움이 안 되고 국가적으로 불행해진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열린당 젊은 초선의원들이 처음에 4대법안을 밀어붙이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안 그런 것 같다"며 "그 사람들이 이제 정치를 좀 배운 것 같다. 늘 국민의 뜻을 살피고 국민이 이해를 못하면 국민을 설득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 "현 정부 초기 노조 온정주의"

김 전 대통령은 노동운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밝혔다. 그는 "민노총도 우리가(국민의 정부) 합법화시켰다. 폭력과 불법은 어떤 경우도 용납이 안 된다고 선언하고 그 원칙을 지켰다"며 "민주노총이 몇 번 파업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노동운동도 억지 가지고는 안된다. 현 정부 초기에 노조에 온정주의로 갔는데 이제 바로 잡아졌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전교조에 대해서도 "전교조가 너무 평준화에 매달리는 것 같다. 평준화는 산업사회에서의 일이고 지식사회에서는 빌 게이츠 같은 천재를 길러야 한다"며 "한명의 천재가 500만, 1000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 여러분은 돌아가서 최선을 다해 잘들 하라. 이렇게 찾아줘서 감사하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에 한화갑 대표는 "오늘 긴 시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다. 저희가 용기를 받고 간다"며 "최선의 노력을 해 민주당을 재건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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