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 주미대사 부임을 앞두고 14일 중앙일보회장 직을 사임한 홍석현 주미대사 내정자가 15일자 중앙일보에 고별사를 실었다. 홍 회장은 <“무거운 짐 지고 낯선 세상으로 가는 심정입니다”>란 고별사를 “저는 지금 삶에 있어 참으로 중요한 변화의 첫발을 내딛고자 합니다”는 말로 시작했다.

   
▲ 홍석현 주미대사 내정자 ⓒ 연합뉴스
홍 회장은 이어 “지난해 주미대사로 나라의 일을 도우라는 소명을 받았을 때, 왜 우리의 선비들이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분별할 줄 아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았는지 비로서 깨달았다”고 밝히면서 중앙일보 경영을 맡아온 11년을 회고했다.

홍 회장은 섹션화,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편집, 오피니언 페이지 강화 등을 중앙일보가 해온 변화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신문이 되기 위한 일련의 개혁을 단행해 한국 언론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고 자평하고, 세계신문협회(WAN) 활동을 “세계적 차원에서 신문의 질적 향상과 언론 자유의 신장을 위해 봉사하는 일”로 표현했다.

홍 회장은 주미대사직을 수락한 이유로 “신문 경영에서 얻은 작은 식견과 세계신문협회 회장으로 봉사해온 국제적 체험이 만의 하나라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양극화의 깊은 구렁을 메우는 힘이 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금이 간 민족 공동체와 외교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티끌만한 힘이 될 수만 있다면, 제게 주어진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한동안 저의 부임을 놓고 여러가지 추측이 나왔지만 지금 저는 집을 떠나 무거운 짐을 지고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는 심정”이라고 밝힌 홍 회장은 그 짐에 “우리 국민 모두의 염원이 담겨 있기에 무거운 책임감으로 제가 가진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해 저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홍 회장은 우리 나라를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나갈 거대한 배”에 비유하며 “이 거대한 배가 목적지를 향해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뒤, “다같이 잘사는 따뜻한 나라, 우수한 기술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경제 강국, 동북아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로 가도록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홍 회장은 주미대사 부임으로 중앙일보 논조가 친정부적으로 바뀔 것이란 외부의 지적에 대해선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애정과 성원이 있는 한 중앙일보는 기사의 질이나 의제 설정과 비판의 기능에서 결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는 간단한 표현으로 대신했다.

   
▲ 중앙일보 15일자 2면
다음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고별사 전문.

"무거운 짐 지고 낯선 세상으로 가는 심정입니다"

저는 지금 삶에 있어 참으로 중요한 변화의 첫발을 내딛고자 합니다.
지난해 주미대사로 나라의 일을 도우라는 소명을 받았을 때, 왜 우리의 선비들이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분별할 줄 아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았는지 비로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지난 11년 동안 신문의 섹션화,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편집, 오피니언 페이지 강화 등을 통해 일제시대 이래의 신문 제작 방식을 탈피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신문이 되기 위한 일련의 개혁을 단행해 한국 언론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중앙일보는 신문이 사실과 주장, 감정을 뒤범벅해 국민에게 혼란을 주었던 과거를 반성하고, 갈등의 조정과 분열의 통합에 힘썼습니다. 동시에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중앙일보의 혁신 작업과 세계 104개국 1만 8000여개의 신문이 가입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신문의 질적 향상과 언론 자유의 신장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저의 삶을 돌아보면 많이 부족했고 안타까운 순간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격변기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면서 개인적으로나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어려운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고단할수록 마음이 더 깊어진다는 선인들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부족함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제가 그동안 신문 경영에서 얻은 작은 식견과 세계신문협회 회장으로 봉사해온 국제적 체험이 만의 하나라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양극화의 깊은 구렁을 메우는 힘이 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금이 간 민족 공동체와 외교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티끌만한 힘이 될 수만 있다면, 제게 주어진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한동안 저의 부임을 놓고 여러가지 추측이 나왔지만 지금 저는 집을 떠나 무거운 짐을 지고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는 심정입니다. 제가 진 짐에는 우리 국민 모두의 염원이 담겨 있기에 무거운 책임감으로 제가 가진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해 저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진심어린 대화로 문제 해결

제가 가는 길 앞에는 여전히 무수한 대립과 갈등의 골이 펼쳐져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선인들의 지혜와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계실 국민들의 마음을 슬기롭게 모은다면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경험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고, 나라와 민족들도 서로 다른 역사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작은 가정에서부터 국가 간, 민족 간에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의 역사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혀끝에서 이뤄지는 말에 현혹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진심어린 대화를 한다면 그 어떤 어려운 문제도 결국에는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금 우리는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나갈 거대한 배에 함께 타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배가 목적지를 향해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 그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며 서로가 제 역할을 다할 때 거대한 폭풍을 만나도 끄떡없이 이겨내고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고 격려하며, 목적지를 향한 우리의 항해가 무사히 끝나 다같이 잘사는 따뜻한 나라, 우수한 기술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경제 강국, 동북아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함께 가야 할 것입니다. 저도 주미대사로서의 임무와 역할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중앙일보 논조 변함없을 것

그동안 열린 생각, 열린 신문을 지향한 중앙일보의 노선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애정과 성원이 있는 한 중앙일보는 기사의 질이나 의제 설정과 비판의 기능에서 결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의 바람처럼 따뜻한 사회와 희망이 넘치는 가정을 만들어 가는 한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2005년 2월14일

홍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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