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구정의 정취를 북한이 깨고 나왔다. 북한이 6자회담 무기한 참가 중단과 함께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향후 기상도가 예측 불허의 상태로 접어드는 형국이다. 집권 2기에 들어선 미국이 이번 북한의 조치에 대해 어떤 대응책을 내놓느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나 북미관계가 종전보다 개선될 여지는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 동안 북한의 6자회담 참가 가능성 쪽에 무게를 두는 전망과 노력을 해온 한국의 향후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 6자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할 것이라는 외무성 성명을 발표하는 북 아나운서. 조선중앙TV/북한 ⓒ연합뉴스
북한 외무성은 10일 성명을 통해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변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6자회담참가를 무기한 중단할 것이며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성명은 “6자회담과정이 지금과 같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 것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 때문이며 미국이 또다시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언급하면서 북한을 전면 부정한 조건에서는 6자회담에 다시 나갈 그 어떤 명분도 없다. 북한은 이미  부시 행정부의 증대되는 북한에 대한 고립 압살 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그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요지의 언급을 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성명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입장과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혀 핵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협상과 타협의 여지를 분명히 했다. 북한은 핵문제의 공을 미국에 넘기면서 대북 정책의 변화를 압박한 것이다.

북한은 그 동안 10차례 비공식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주장해왔으나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그것을 밝혀 핵 경각심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국제사회에서는 핵무기 보유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NCND) 모호한 정책을 취함으로써 핵무기 보유에 따른 부담과 국제적 비난을 모면하면서도 주변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 효과를 거두는 2중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북한은 2003년 상반기부터 핵무장에 대한 언급을 점차 구체화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일본 등 주변국들은 외교적인 전술로 인식할 뿐 아직까지 실체적인 군사적 압박으로 인정치 않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무장은 일본의 핵무장화를 부르면서 동북아 질서의 세력균형을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한국 국민과 이 지역 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 한다
 

   
▲ 북한이 10일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과 핵무기 제조, 보유를 공식적으로 밝혀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4년 6월 23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제3차 6자회담에 앞서 미국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왼쪽부터), 한국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 중국 왕이 외교부 부부장,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 일본 야부나카 미토지 일본 외무성 대양주국장, 러시아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외무차관 등 수석대표들이 개막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추출한 플루토늄을 이용해 1∼2개의 핵무기를  제조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고 미 워싱턴 쪽에서는 북한이 2∼9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추정한다. 북한이 실제 핵무기를 보유했을 경우 그 기술수준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구형 핵무기 급의 조악한 수준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한반도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예고된 수순일지 모른다. 북한은 핵문제와 6자 회담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미세한 변화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해 왔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중국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태도를 여러 번 보여 왔을 정도다. 그러나 그동안 참여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의 원칙을 확고히 밝히면서 다각도로 노력한 바 있다.

한반도 긴장 높아지면 안돼

즉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말 “한반도 문제는 한반도 스스로 남북이 당사자 간에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미국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한국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어떤 결정도 한국과 협의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관철되고 있다. 남북이 주도하는 6자의 틀, 이것을 위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 해결을 위해서 우리가 미국과 아주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의 이번 외무성 담화 발표가 어느 선까지 파문을 일으킬지 아직 속단키는 어렵다. 그러나 이제 막 본격적인 첫발을 내디딘 개성공단 문제 등을 고려할 때 한반도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북한의 이번 움직임을 보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행한  북한 핵문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진단과 해법제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북핵 문제는, 북한이 핵을 원하기보다 생존의 길을 열기 위해 핵을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핵 카드화를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안심하고 살고 경제를 발전시키려 한다. 국제사회와 남한은 그걸 도와야 한다. 기회를 주면서 개방을 유도해야지, 봉쇄하면서 변화를 바라는 건 효과가 없다. 부시 대통령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거듭 표명하면서 북한에 대해 불침공, 불전복, 불제재와 같은 안전보장을 해주는 대신 북한도 과감하게 핵 포기 선언을 해야 한다.”

   
필자 고승우 박사는 1980년 당시 합동통신(현 연합뉴스) 근무 중 광주민중항쟁 보도와 관련해 제작거부운동을 펼치다 강제해직 당한 뒤 ‘말’지 편집장을 역임하고, 한겨레신문 창간작업에 참여해 민권사회부장, 출판부국장 등을 지냈다. 현재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성대 겸임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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