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역 근방 금천교시장. 재래시장은 대형 할인매장, 뉴타운 건설 등으로 사라지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꼭 다녀보면 좋을 문화체험장이다. ⓒ오동명

재래시장이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장보다도 더 저렴하다는 통계치가 발표됐다. 하지만 재래시장은 또 다른 값어치를 하고 있다. 시내 한복판의 한 재래시장에 들어가 봤다. 경복궁역에서 나와 사직공원으로 가는 큰 길 뒤편의 금천교시장이다.

과일집은 물론이고 이불집, 솜집, 방앗간이 딸린 떡집, 그리고 조그마한 분식점과 식당들.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길가로 삐져나온 진열장의 반찬거리들을 보고 있자니 침이 돈다. 밥 한 공기를 금세 훔쳐낼 듯 미각을 돋운다. 기웃거리며 시장 골목을 걷다보면 어느 새 어렸을 적으로 돌아가 있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재래시장의 추억

그 땐 재래시장밖에 없었다. 백화점이 있었지만 시장으로 여겨지지 않는 곳이고 더욱이 깨끗하게 꾸며진 대형 할인매장은 없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다녔던 초저녁 무렵. 나처럼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 나온 아이들은 많았다. 골목 가운데에 순두부를 파는 작은 이동가게를 거의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배가 부르다며 나만 혼자 먹였었다.

구경거리도 많았다. 볼 것에 빠져들다 엄마 손이 놓여진 걸 나중에야 알고 그 땐 그저 엄마의 손에 붙들려 있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막무가내로 울곤 했었다. 지금 같으면 그 자리에서 울고만 있었어도 엄마가 바로 찾아왔을 텐데, 찾아 나선다는 게 엄마의 길과 어긋나기 일쑤여서 한참을 울며불며 헤집고 돌아다녔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어느 가게 아줌마가 나를 붙들어 놓고 달래는 동안 엄마가 날 찾아왔고, 엄마가 더 놀래 나를 한번 와락 보듬어주더니 이내 내 등을 때렸다. 나는 이것이 서러워, 또 한없이 소리를 질러대며 울어야했다. 지나는 아줌마가 눈깔사탕을 하나 건네주면 그제서야 입 속에서 오물오물 거리느라 울음을 멈췄다. 놀람과 안도가 섞인 눈물이었고 지금에야 알게 되는 엄마의 매질 역시 나와 같은 것이었다.

연거푸 이런 일이 있고난 뒤 엄마는 내 손에 끈을 달아 엄마 허리춤에 이었다. 때론 시장 어귀의 극장에서 영화도 보았더랬다. 엄마의 취향에 볼 영화가 결정되기보다는 대개가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던 시장 통 가게 아줌마가 준 공짜표에 의해 결정됐다. 아직도 기억나는 영화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간 마후라’와 ‘미워도 다시 한번’이다. 영화를 보면서 엄마가 울면 나도 따라 울었다.

사실 시장에는 나만 따라 나선 게 아니었다. 더 어린 동생은 엄마 등에 업혀있었다.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 남들도 다 겪어본 어릴 적의 잊을 수 없는 일이리라. 우연히 보게 되는 TV아침 여성프로에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다는 사연을 듣고 있으면 대개가 내가 그랬던 것과 너무나 흡사했다. 시장 통에서 엄마와 잠깐 떨어진 그 순간이 가족과 수십 년을 헤어져 살게 했다. 뜨끔하다. 나도 엄마와 저렇게 헤어질 수 있었겠구나 하는.

먹을거리와 인심이 넘치는 곳

과거에서 나와 다시 걸어보는 재래시장. 내친 김에 옆 통인시장까지 건너가 봤다. 한 가게에서 호박죽을 쑤고 있었다. 어렸을 적 순두부 맛이 떠올라 안으로 들어가 한 그릇을 시켰다. 이 이후, 이 맛을 잊지 못해 가끔 가족과 함께 시장 통을 걷곤 한다. 이러다 먹고 싶은 게 보이면 하나씩 주워 먹듯 집어 먹고 한 집 한 가게를 건너가며 구경에 여념이 없다. 처음 지저분하다던 아들도 시장에 가지 않느냐고 먼저 성화다. 지금은 먹을 것이야 아무데도 많다. 그러나 재래시장에서 먹는 맛은 오래 전 나나 지금의 아이나 같은가 보다.

아들 녀석은 “시장에 나오는 게 이젠 싫지 않니?”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군것질하는 재미가 있어 좋아.”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랬다. 나는 물건 깎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값 차이를 잘 알고 있는 아내가 옆구릴 툭툭 치는 바람에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주인인 가게에선 이제 물건 값을 깎질 못한다. 단골로 가는 가게에선 깎지 않아도 덤으로 꼭 무언가를 조금 더 얹어준다. 이런 단골이 몇 집 생겼다. 떡집의 경우엔 아들 혼자 가서 먹고 싶은 떡을 사오게도 한다. 어른인 우리가 사오는 것보다 떡 하나라도 더 받아온다. 아니면 거스름돈을 내놓기 전에 아줌마가 먹어보라며 입에 넣어주는 떡도 두어 점은 된다 했다. 재래시장엔 그래도 아직 옛 정이 남아 있다.

   
오동명 작가는 1957년 생으로 경제학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사진기자를 지냈다. 직업인이 아닌 직장인으로서 신문사에 근무할 때 3년에 한 권 꼴로 책을 내겠다는 계획을 직장을 그만 두고 변경했다. 1년에 한 권은 꼭 내겠다고. 별 다른 재주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 약속을 아직까지는 지키고 있다.

2000년엔 <당신기자 맞아> 증보판을, 2001년엔 <신문소 습격사건>을 냈고, 2002년엔 소설<바늘구멍사진기>, 2003년엔 사진취미 책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가 시중에 나와 있다. 2004년엔 여행책 <5만원 2박3일>을 펴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