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중심상업지역에 건립된 SBS 신사옥은 젊고, 건강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첨단 디지털 방송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2004 한국건축문화대상 심사위원들은 준공부문 우수상을 받은 SBS 신사옥(설계/감리 Richard Rogers Partnership, 일건 C&C)을 이렇게 평가했다. 수상작에 대한 예의를 갖춘 평이지만 과장된 말은 아니다. 건물 전체가 유리로 된 외관은 현대적인 감각을 잘 살렸으며 기둥을 최소화하고 채광을 높인 설계로 밝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기업 태영의 빌딩을 방송용으로 개조해 사용했던 SBS가 2004년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자랑한 모토가 바로 '디지털 사옥' 아닌가. 이 건물에는 최첨단 방송장비들을 비롯해 재미있는 시설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36층이 22층으로 줄은 사연

   
▲ 사진설명=SBS 디지털사옥은 크게 세 개의 건물로 나뉜다. 기술구역과 사무구역이 있는 타워동, 교양과 뉴스가 제작되는 스튜디오동, 그리고 타워동과 스튜디오동을 연결해 주는 아트리움이 그것이다. 아트리움은 두 건물의 통로인 동시에 편집실이 위치하고 있어 용이한 방송제작을 돕는 기능을 한다. ⓒ SBS
SBS가 목동 신사옥으로의 이전을 준비한 것은 지난 96년부터다. SBS는 당시 디자인 공모를 거쳐 신사옥의 규모를 36층 지하5층에 연면적 3만1700평으로 계획했다. 방송사 건물로는 상당한 규모였다. 그러나 98년 IMF 한파가 닥치면서 96년 12월에 착공됐던 공사는 2003년까지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36층이었던 애초 계획이 변경돼 22층에 지하4층 연면적 1만8798평(대지면적 4300평)으로 줄어들었다. 지하층까지 포함해 무려 15층이 잘려져 나간 것이다. 게다가 스튜디오동 측면에 계획됐던 공개홀도 전면 백지화됐다.(SBS는 현재 등촌동 공개홀을 사용하고 있다.)

마음대로 나갈 수는 있어도 들어갈 수는 없다?

SBS 신사옥이 디지털사옥인 이유는 모든 것이 중앙에서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송제작, 편집, 송출 등이 모두 디지털화돼있고 자체 통합시스템으로 연결돼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으로 방송업무가 이뤄진다. HD, DMB 등 미래의 방송환경에 맞춰 설계된 점도 돋보인다. 방송장비와 시설에만 500억원 가량이 투입됐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타 방송사와 구별되는 것은 기술적으로 앞서 있는 엄격한 출입관리 시스템이다.

SBS의 타워동이나 스튜디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출입증을 발급 받아야 한다. 방문객들은 1층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주는 임시출입증이 있어야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임시출입증으로 갈 수 있는 공간은 방문객이 방문한 층으로 한정된다. 각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입문 왼편에 있는 카드리더기에 신분증을 갖다대야 문이 열리는데, 임시출입증에는 방문허가를 받은 층 외에는 출입문이 열리지 않도록 입력돼있기 때문이다.

직원이라고 할지라도 직급에 따라 허가되지 않은 곳은 출입이 불가능하다. 또 내부시설 이용이나 이동시 출입증이 반드시 필요하고 70여개의 CCTV가 설치돼 있기 때문에 누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쉽게 드러난다. 직원감시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보안과 고가의 방송장비 도난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 시설팀 이병희 차장의 설명이다.

이용시간 초과하면 전원이 꺼지는 편집실

시간을 철저하게 규제하는 편집시스템도 눈길을 끈다. 테이프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데이터로 저장돼 비선형 편집이 이뤄지는 모습은 이제 방송사에서는 흔한 일이다. SBS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시스템으로 편집이 이뤄진다. 특이한 것은 편성스케줄에 따라 편집시간이 정해져 있고 편집실 이용시간을 초과하면 전원이 자동으로 꺼지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편집담당자들은 편성스케줄에 따라 편집실 이용시간을 배정 받는다. 편집실 사용을 허가받은 담당자가 카드리더기에 출입증을 대고 들어가는 순간 편집기기 사용이 가능해지고 중앙에 입력된 시간을 초과하면 전원이 자동으로 차단된다. 불필요한 시간과 자원낭비를 줄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회사의 방침이다. 만약 편집시간이 더 필요하면 연장신청을 해야한다.

   
▲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편집관리시스템. 스크린을 통해 그 날의 편집스케줄을 확인하도록 되어 있으며, 이용 시간이 초과되면 자동으로 편집실 전원이 차단된다고 한다. ⓒ SBS
 감각이 돋보이는 공간들

SBS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누드 승강기다.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고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게다가 보통 아파트 승강기(60m/min)보다 3배나 빠르기 때문에 고층에서 내려올 때는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툭하고 떨어지는 느낌마저 든다.

SBS의 또 하나의 자랑은 잘 정비된 스튜디오들이다. 시설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180평 짜리 1개, 120평 짜리 1개, 80평 짜리 4개가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8시 뉴스>를 진행하는 오픈스튜디오가 대표적이다. 앵커석과 조명이 360도 회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또 스튜디오에 상주인원들이 있어 사무실을 겸하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이 외에도 책상이나 의자 등 사무실에서 쓰는 집기도 기존 제품이 아니라 업무별 동선에 맞춰 디자인한 제품이라니 그 깐깐함과 배려가 이만저만 아니다.

   
▲ <8시 뉴스>를 진행하는 오픈스튜디오.(좌) 무대와 위에 설치된 조명이 360도 회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SBS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고속 누드 승강기로, 조금 과장한다면 심장이 약한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편이 낫다. ⓒ SBS
탐방후기-효율성 강조된 디자인 돋보여

SBS 디지털 사옥은 기능성과 효율성을 강조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곳이다. 엄격한 보안시스템과 편집관리시스템, 업무 중심의 타워동과 스튜디오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아트리움의 설계에서 이러한 것이 잘 드러난다. 로비에 방송조명을 달아 로비자체를 스튜디오로 쓸 수 있도록 기능을 확대시킨 것에서도 사풍이 느껴진다. 시간과 공간, 인원을 최적의 상태로 관리하는 것, 이것이 SBS 사옥에서 묻어나는 느낌들이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 접어들면서 지상파 방송사의 권한은 점점 약화되는 미래의 방송환경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SBS의 경영철학은 경쟁력 강화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완벽한 중앙통제시스템으로 운영되는 SBS 사옥은 편리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 사는 곳 같지가 않은, 야누스처럼 이중적인 모습을 가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직원들이 언제 어디를 통과했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출입관리시스템은 업무의 영역을 벗어나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

   
▲ SBS 디지털 사옥 전경과 로비. 로비에 방송조명을 설치해 기능을 확장시킨 점에서 SBS의 일면이 엿보인다. ⓒ SBS
이러한 이물감을 줄여준 것은 직원들이 이용하는 편의시설들의 이름이었다. 구내식당을 '잘먹고 잘사는 집', 이발소를 '미스터Q', 여성휴게실을 '여인천하', 헬스클럽을 '육체와의 전쟁'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젊은 방송사로서의 일면을 엿보게 해준다. 또 앞으로 스튜디오동의 비어있는 옥상에 나무를 심고 지압산책로를 만드는 등 사원복지시설 증축도 곧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자체 정화시설도 잘 되어 있어 오염물질을 한번 거른 뒤 밖으로 배출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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