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것 같아서……”
‘역사의 목격자’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셔터를 눌렀지만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과 같이 슬퍼해주지는 못할망정 그 앞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시는 내 카메라 앞에 슬픔이 없었으면” 하는 게 그의 이룰 수 없는 바람이다.
영정사진 앞에 동생 나타나 셔터눌러…불빛은 차마 사용못해
피랍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6월21일 고 김선일씨 집. 저녁 때까지만 해도 살아있을 가망성이 있다는 쪽으로 얘기가 모아졌다. 사진은 더 나올 게 없다는 판단 하에 기자들은 하나둘씩 현장에서 철수했다. 밤 12시를 조금 넘긴 시각, 집 근처 여관에 있던 이종근 기자에게 최상원 선배(한겨레 부산지역기자)로부터 “무조건 빨리 올라오라”는 연락이 왔다. 김선일씨 살해 소식이 공식 확인된 것이었다.
▲ 한겨레 이종근 기자가 김선일씨 피살 사실을 접한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취재한 ‘오빠야!’ ⓒ 한겨레 | ||
“내 차례가 왔을 때 여동생 김정숙씨가 들어오더니 갑자기 오열을 하더라. 그것도 이쪽을 보고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쪼그리고 앉은 채로 15번 정도 셔터를 눌렀다. 도저히 스트로보(불빛)는 사용할 수 없었다. 희미한 촛불과 형광등 불빛에 의존한 채 떨리는 손을 최대한 빠르게 놀렸다.
“국민이 주인이라면서 자국민 보호의무 얼마나 지켰나”
그렇게 찍은 사진 중 한 장이 바로 한겨레 6월23일치 4면에 실린 이 사진이다. 이 사진은 한겨레에서 처음 보도된 이후 로이터를 통해 전세계로 릴리스됐다. 이종근 기자는 이 사진으로 지난해 7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고 최근 한국사진기자협회 대상, 한국기자협회 전문보도부문 사진보도부문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김선일씨가 먼 나라에서 혼자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국가의 의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새삼 질문을 던지게 됐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며 입버릇처럼 얘기하면서 정작 자국민 보호에는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국민이 세금을 내야 할 정당한 이유를 국가는 납득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종근 기자와 함께 고 김선일씨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