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드라마다. 드라마를 볼 때 '아니야, 저건 아닌데'라는 식으로 이성적 판단을 앞세우다가는 드라마를 즐길 수 없다.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가 불륜 내지 파격적 연인 관계의 경연장이라 해도 일반 시청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본다. 어쩌면 세상사 복잡한 것 다 잊어버리기 위해 드라마에 푹 빠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문적인 구경꾼 입장에서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보는 재미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감독과 연출자 입장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도 감상의 맛을 깊게 한다. 요즘 잘 나가는 드라마가 여럿 있겠으나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일일이 다 거론키는 어렵다. 그래서 KBS의 <불멸의 이순신>과 SBS의 <토지>를 꼼꼼히 감상해보기로 한다.

   

▲ KBS [불멸의 이순신]

   
▲ SBS [토지]

<불멸의 이순신>은 명나라, 일본 등 3나라가 등장하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요즘 일본, 중국에 부는 한류와 관련시킬만한 좋은 소재의 하나다. 그것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극적 효과를 십분 살린다면 일본, 중국에 수출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그래서 당시 의상 등의 고증에 신경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우선 이 극은 종래 사극과는 좀 더 색다른 진행이 돋보인다.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 등이 수준급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 등장인물의 의상 등은 고증을 소홀히 한 탓일까? 전문가들 말대로라면 엉터리가 두어 가지 지적된다. 우선 우리나라 사병들의 가슴과 등 뒤에 한문으로 '水'라고 쓴 헝겊을 달고 다니는 것으로 나오는데 당시 조선군에 그런 표지는 달지 않았다 한다. 또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여러 그림을 참조했겠으나 사병들이 일률적으로 헐거운 짚신을 신고 전투에 나서거나 해변의 갯벌에서 훈련하는 것으로 묘사된 것도 너무 현실감이 없다. 당시를 고증할만한 자료가 별로 없는데다가, 조선의 재정이 넉넉지 않았던 탓에 군 보급이 매우 보잘것없었지만 전투에 따라서는 가죽신을 신는 등의 대비를 한 것으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일본, 중국과 함께 누가 정보화시대의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가를 놓고 엄청난 기 싸움을 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특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드라마 속의 복식 등은 상식선에서 원만하게 처리하는 원칙이면 큰 무리가 없겠다. 그러나 만약 일본과 중국의 관객이 비판의식을 가지고 이 드라마를 보게 된다면 과거 3개국의 조상들을 비교하려 할 지 모른다. 조선 병사 등에 대한 고증이나 드라마제작진의 능력을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사병들의 복장이 춘향전에서나 나옴직한 나졸 복장 일색인데 이 또한 너무 화면을 단조롭게 한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철갑선을 만든 이순신 장군이 효율적 전투를 위해 여러 가지 묘안을 짜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유독 조선 사병들의 복장만은 너무 허술하다. 상대적으로 일본 군인들의 복색은 그럴싸하고 화려하다. 조선이 결과적으로 침략군 일본을 격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럴만한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드라마 속에서 묻어날 수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조선에서 군인들의 복식이 무기의 체제가 변하면서 그에 맞게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즉 창과 칼등을 무기로 삼았을 때에는 장교나 사병을 포함한 모든 군인들이  갑옷을 입었다. 그렇다가 화포가 보급된 이후부터 사병들은 바지저고리 위에 입는 두꺼운 전복을 걸치게 되었다. 일대 일로 싸우는 백병전보다 화포에 의존하면서 장비를 합리화한 것이라 한다. 이런 것들을 일일이 드라마에 담는다는 것은 사실 돈 문제가 따르는 것이어서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 신경 쓰면 눈에 거슬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터이다.

한편 SBS의 <토지>는 지금까지 너무 사랑 타령 쪽으로 기울었다. 원작이 80년대의 암울한 상황에서 던진 충격적인 재미는 상당했다. 당시 만주 쪽에서의 전개된 한민족의 근현대사를 소설 속에 담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이 책의 시대적 의미가 강조되었다. 30여년 전 집필된 토지는 오늘날 중국이 동북공정을 서두르면서 간도 등 고구려 영역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더욱 새롭다. 박경리가 토지를 통해 간도, 용정 등을 무대로 펼쳐진 우리 민족의 애환과 독립운동 등을 소설 형식으로 담은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시골 양반 댁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 그랬을까? 정상에서 거리가 좀 있는 애정행각, 남녀 관계 등이 큰 줄기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분명한 것은 소설이 주는 무게와 드라마가 전달하는 감흥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극적 재미를 살리려고 그랬겠으나 원작에서 비중을 둔 부분은 가벼워지고 원작에서 스치는 재미로 넣은 부분들이 무게 있게 다뤄진다. 물론 필자가 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으니 옆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이 뭐하기는 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적인 드라마의 특성에 충실한 탓에 이 극이 일정 수준의 인기를 유지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니 시청자들이 드라마에서 미처 맛보지 못한 원작의 중후한 맛은 책을 통해 충족시킬 것 같아 다행이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수용자들은 전개되는 내용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성향을 지니고 있어 이를 전문용어로 정향반응(orienting response)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니 웬만한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한류시대를 사는 우리는 좀 더 전문가다워야 할 것이다. 국내 시청자에서만 그치지 않고 해외로 나갈 것도 반드시 고려를 하는 것이 요즘 말로 정상적인 사고다. 드라마의 주제와 그 전개가 감탄을 자아낼 만큼 매우 기발한 것은 당연히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우리 드라마도 완성도에 좀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 그것이 한류의 생명을 연장시킬 테니까.

   
필자 고승우 박사는 1980년 당시 합동통신(현 연합뉴스) 근무 중 광주민중항쟁 보도와 관련해 제작거부운동을 펼치다 강제해직 당한 뒤 ‘말’지 편집장을 역임하고, 한겨레신문 창간작업에 참여해 민권사회부장, 출판부국장 등을 지냈다. 현재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성대 겸임교수로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