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병규 / 본지 객원논설위원
우연은 아닐 것이다. 정반대 논조의 신문들이 신년 사설에서 모두 ‘말’의 진정성을 화두로 삼은 것은.

경향신문은 신년 사설에서 ‘전환시대의 언어’가 갖추어야 할 말의 진실성을 역설했다. 폭력의 언어, 거짓의 언어가 판치는 오늘을 ‘언어의 위기’로 규정하고, 언어의 회귀, 언어의 절제, 언어의 정돈을 설파했다. 개혁과 대화가 결코 대립되는 언어가 아니며, 상생의 언어임을, 그리고 ‘조화’와 ‘균형’의 언어를 살려내 ‘소통’과 ‘희망’의 언어를 가꾸어나가자고 역설했다.

   ‘언어의 위기’에 주목한 경향과 조선

조선일보 또한 새해의 화두로 ‘바로 보고 바로 말하자’며 언어의 위기를 지적했다. 그것이 자신들을 비롯해 그 책임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언론’보다는 그 바깥을 향하고 있어 과녁을 빗나간 듯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 시대가 겪고 있는 언어의 위기에 대해서는 어쨌든 같은 목소리를 냈다. “언어가 대화와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공격과 파괴의 흉기로 남용되는 한 공동체 존립의 근거인 이견에 대한 관용의 정신이 자리잡을 수가 없다”고 역설했다.

말할 나위 없이 언어를 희롱하고 오염시킨 주범은 정치권과 언론이다. 그 중에서도 책임의 경중을 따지자면 언론의 책임이 더 무겁다. 언론이 진실과 양심의 언어에 충실했다면 정치권의 막가는 말의 폭력도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두 신문이 신년 사설을 통해 설파한 대로 설령 시각과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진정성을 되찾는 노력을 공동으로 기울인다면 올 한해 한국 언론의 앞길은 밝다.

문제는 말과 행동(지면)이 따로 가는 경우를 그동안 수없이 목격해온 데 있다. 바로 보고 바로 말해야 한다면서도 정작 그 의도는 당파적 시각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체면치레였던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바로 보고 바로 말하자면 먼저 언어의 절제와 그 정돈부터 필요한 까닭이다. 아니, 그 이전에 언론과 언론인으로서의 양식과 상식의 복원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의 행보와 주미대사로 내정된 홍석현 회장의 신년사는 언론과 언론인의 양식과 본분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이다. 중앙일보는 신년 사설에서 “대주주의 거취와 관계없이 언론의 바른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홍 회장은 신년사에서 자신의 새로운 인생 길에 대한 소회와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는 주변의 반응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주의 요구와 구미에 맞춰 신문을 만들던 시대가 지나갔음을 신문지면을 통해 증명해 보여줄 것을 중앙일보 임직원들에게 요청했다. 나아가 세계 일류신문들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의사 결정구조를 마련해놓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가 왜 중앙일보 회장, 한국신문협회 회장, 그리고 세계신문협회 회장이라는 남부럽지 않은 신문인의 길을 포기하고 주미대사직을 맡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야망의 끝이 또 어디까지인지도 가늠하기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권력과 언론의 유착의 사례를 또 하나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사주였던 유진 마이어 세계은행 초대 총재의 사례에 빗대 말했지만 국무총리의 길을 선택했던 장기영 한국일보 창업자의 사례가 더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홍석현 회장의 선택과 결단

그의 선택이 그의 말대로 ‘아름다운 결단’일 수 있다. 사주의 요구와 구미에 맞춰 신문을 만들던 시대가 더 이상은 아니라는 판단과 국가의 부름에 호응하겠다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어도 좋다. 어렵사리 구축해놓은 그의 자리를 내놓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출발일 수 있다. 그러자면 그는 언젠가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올 것임을 기약하는 ‘거자필반(去者必返)’을 말해서는 안된다. 중앙일보를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중앙일보 사람들에게 맡길 일이다. 그럴 때 그의 새 길도 온전하게 열릴 것이다.

허무맹랑한 꿈 같은 희망일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 아름다운 결단도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은 자신을 비우는 데서 나온다. 홍석현 회장은 이제 신문인으로서 마지막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전적으로 그가 결정할 일이지만 단지 ‘글로벌한 의사결정구조’뿐만 아니라 중앙일보의 소유까지도 중앙일보 사람들과 공유하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기대해보는 것은 너무 무리일까. 경향신문이든 조선일보든 올해는 ‘바로 보고 바로 말하는’ 언론의 바른 길을 걸어가고, 권언유착의 혐의를 아름다운 결단으로 바꾸어내는 그런 꿈같은 일이 올해에는 언론계에도 많았으면 한다. 그런 한해를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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