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혜란 / 한국여성민우회 사무국장
지난 12월8일 모방송사에 근무하는 기자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밀양집단성폭행사건’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언젠가부터 사라진 ‘강간’이라는 용어를 다시 사용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유는 분명한 내용 전달을 통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재발을 방지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성폭력’ 사건만큼 정확한 사실 전달이 오히려 큰 후유증을 초래하는 사건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7일 오전 울산지역 언론사들의 보도로 중앙일간지와 방송에 ‘고교생 41명 여중생자매 1년간 집단 성폭행’, ‘10대 40여명이 여중생 집단 성폭행’ 등의 제목을 단 기사가 일제히 보도되었고, 그 내용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재발방지는커녕 세간의 호기심을 극도로 자극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성폭력’ 사건은 늘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폭력’사건 중 하나다. 물론 그 이유는 성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보도는 사건의 전모를 따라가는 양상으로 전개되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줄 뿐 아니라, 마치 피해자에게 그 원인이 있는 듯한 논조로 제2의 상처를 주곤 했다. 밀양사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밀양 사건에서도 나타났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성폭력의 피해자들에게 가해자보다도 더 많은 죄의식과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이는 성폭력을 ‘폭력’이 아닌 ‘성’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여전한 사회통념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언론은 성폭력 사건을 끊임없이 ‘성’이 아닌 ‘폭력’의 감수성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성폭력’ ‘성폭행’ ‘성폭력피해자’ ‘성폭력가해자’와 같은 단어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이러한 감수성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 기자들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욕만을 앞세울것이 아니라, 성폭력이 명백한 범죄행위이며 폭력임을 인식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도 언론 스스로가 ‘성폭력사건’을 ‘성문제’가 아닌 여타 폭력사건과 같은 ‘폭력의 문제’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만이 피해자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성폭력 사건의 보도관행이나 말초적 관심에 지나치게 호소하는 보도태도가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강혜란 / 한국여성민우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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