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사장.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사장.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책 <줬으면 그만이지-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의 저자로 유명한 전직 경남도민일보 기자 김주완에게 13년9개월간 경남도민일보 대표를 지내고 퇴직을 앞둔 사장 구주모에 대해 물었다. 김주완은 지난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외유내강”이란 말로 구 사장을 수식했다. 그는 “기자출신이라도 경영진이 되면 기사 논조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 사장은 어떤 경우엔 기자들보다 더 저널리즘 원칙을 중요시하면서도 유연한 이미지를 보여왔다”며 “나도 참 구 사장에게 싫은 소리를 많이 했는데 앙금이나 뒤끝을 보인 적이 없다”고 평했다.

김주완과 구주모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2010년 2월 당시 경남도민일보 사장 서형수가 김주완을 편집국장으로 내정했다. 그러나 편집국장 임명동의제 투표에서 부결됐고 김주완 당시 내정자는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서형수도 이를 사장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회사를 떠났다. 당시 상무였던 구주모가 3월부터 사장 대행을 맡았는데 퇴사한 김주완을 다시 편집국장으로 지명하고 ‘부결되면 나도 그만두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김주완은 “떠날 땐 돌아올 마음 없었는데 구 사장 요청을 거부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김주완은 2021년 말까지 경남도민일보에 있었다.

김주완과 구주모는 경남매일(지금의 경남매일과 다른 신문사)에서부터 알고 지냈다. 신군부의 1도1사 정책으로 도내 일간지는 경남신문뿐이었는데 여기서 나온 기자들이 민주화 이후 1988년 경남매일을 창간했다. 구주모는 1기로 입사했고, 경남 진주 지역주간지 남강신문(이후 진주신문과 통합)에서 2년간 일한 김주완은 1992년 경남매일에 입사했다. 경남매일이 경영난으로 폐간하고 경남도민일보 창간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구주모는 실행위원장(전 경남매일 사회부차장), 김주완은 기획홍보팀장(전 경남매일 사회부기자)을 맡았고, 경남도민일보는 1999년 5월11일 창간호를 발행했다.

사장 대행 3개월을 포함해 구주모는 14년간 사장을 지냈다. 김주완은 “서울의 신문사 사장, 지역 시민운동하던 사람, 행정관료 출신 등 그 이전 사장을 모두 외부에서 모셨지만 경영 상황이 계속 안 좋았고 구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체불임금을 지불하는데 몇년 걸렸다”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 말고는 우리를 구제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됐고 이후엔 체불임금이 없었다”고 했다. 공식 퇴임식도 잡지 않은 사장 구주모를 지난 22일 오후 경남 창원시 경남도민일보사에서 만났다.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3월28일 주주총회를 끝으로 8~11대 사장 업무를 마친다. 기분이 어떤가?

“보궐임기까지 13년을 넘게 했다. 오너가 있는 회사에서는 사장 오래하는 게 큰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시민주주신문에 월급쟁이 사장이기 때문에 좀 다르다. 지역사회에서 우스갯소리로 ‘이제 (구주모) 독재가 끝나고 민주주의가 열려 변화가 시작된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어떤 체제라도 한 사람이 지나치게 오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그렇다. 지역에 경영이 괜찮은 신문사들은 부동산이나 유동자산이 많아 어려움을 극복할 수단이 있지만 우리는 물적 토대가 시민들 지지 외에는 없다. 콘텐츠로 새로운 성과를 내는 것 말고는 없어 품이 두 배로 들어 힘들었다. 이제 제대하면 그 부담이 없어지니 후련하다.”

▲ 1998년 12월 29일 마산 아리랑 호텔에서 열린 도민주신문 3차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오른쪽 맨 앞)가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 1998년 12월 29일 마산 아리랑 호텔에서 열린 도민주신문 3차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오른쪽 맨 앞)가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기억에 남는 일은?

“전임 사장들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도민주주 신문의 가치를 살리면서도 자본주의 시장과 잘 연계시키는 우리만의 솔루션을 찾으려 했는데 다 실패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렵고 사원들 사기도 저하됐을 때 내가 운 좋게 사장이 됐는데 그런 구조적 문제를 좀 해결해 롱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쉬운 점은?

“항상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종이신문에 얽매이지 않는 수익사업, 문화사업도 많이 하고 기업들을 설득해 도민일보 가치를 알리는 공동 사업도 많이 제안했는데 만족할 만큼 많지 않았다. 이 부분이 많았으면 지금의 어려움을 좀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

▲ 1999년 3월 22일 경남은행 본점 지하강당에서 열린 경남도민일보 창립총회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 1999년 3월 22일 경남은행 본점 지하강당에서 열린 경남도민일보 창립총회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경남도민일보의 자랑거리는?

“학계와 언론현장을 오가는, 나와 교분 있는 어떤 분이 있다. 그분은 서울에 있는 큰 보수신문의 논조를 강하게 비판해왔지만 자신의 제자들이 그 언론사 들어가니까 좋아하더라. 좋은 신문을 만들어 저널리즘 외연을 넓히는 게 맞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현실적으로 월급 많이 주는 신문사에 보내는 걸 자랑하면서 ‘우리가 자리 잡기 힘들겠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서울공화국에 대한 로망이 중첩되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럼에도 막연하고 추상적 언어에 매몰되지 말고 우리만의 특기를 이용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는 문화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최근 그런 문화의 결정판으로 뉴스타파와 힘을 합쳐 지역일간지 최초로 검찰 예산을 검증한 건 큰 보람이다.” 

-지역언론은 수익에서 지자체 의존도가 높은데 경남도민일보도 그렇지 않나?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는 있다. 서울에 있는 언론사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대기업과 유착관계에 빠지는 게 언론 독립성을 훼손하는 가장 큰 변수다. 지자체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는 다르다. 지자체는 지역민의 민복을 위해 뛰는 공적기관이기 때문에 세금을 신문사에 퍼줄리 없고 기껏해야 서로 소통하고 조금 더 신경써달라는 정도다. 또 우리 지역의 지자체들은 경남도민일보 색깔을 인지하고 있어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창원시 여당 의원들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니 행사 협찬 등 예산을 일부 날렸는데 이런 게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지자체에 예속되진 않는다.” 

-2년 전부터 후원회원제를 시작했다. 현재 1600여명 수준인데 어떻게 평가하나? 

“다른 지역신문에서 후원회원제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로 건설사가 소유하고 오너 마음대로 신문을 만드는데 지역민에게 후원해달라고 하겠나. 우린 시민주주 신문이기 때문에 후원회원제에 공감할 만한 토대가 마련돼 있지만 사실 노는 물이 작은 건 사실이다. 오늘 같은 경우에도 호주대사 이야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 <국힘 도의원 총선 행사에 도의회 직원 투입됐나>(경남도민일보 22일자 1면 기사)에 더 관심을 갖겠나. 종이신문 부수는 떨어지는데 온라인으로 독자를 묶어내는데 한계가 있다. 경남도민일보가 독자와 연결을 유지하는 게 후원회원제 목적이다.” 

▲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사장.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사장.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경남도민일보 구성원 80여명이 경남의 모든 것을 다루려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은 인원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선택과 집중을 잘하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업 잘 못하는 소규모 기업 사장들이 자기가 왜 못하고 잘 안되는지 사실 가장 잘 알고 있다. 너무 잘 알기에 잘 안되기도 한다. 선택과 집중도 역량이 필요하다. 계속 교육을 통해 키워야 하는데 축적이 잘 안돼 어렵다. 그래도 타사와 비교할 때 필요한 의제를 꺼내서 집중하는 기본적 틀은 잘 갖춰져 있다. 더 세련되고 폭발력있게 만들어 서울에서 만드는 콘텐츠와 경쟁할 정도가 돼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역 뉴스의 밸류(가치)가 낮아 숙명적 한계가 있다. 고민이다.”

-지역신문들이 모두 어렵다.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지역 건설 경기가 코로나 이후 다 죽었다. 건설경기 한창 살았을 때 아파트 분양 광고 수익이 5억원이었다면 지금은 50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역으로 온 기업들도 지역언론 길들이기부터 한다. 시장 논리로만 운영하는 건 정답이 아니다. 자본주의 거품이 꺼지면 다 죽는다. 프랑스 모델을 가져와야 한다. 옥석을 구분해 좋은 여론을 형성하는 지역언론에 과감하게 세금을 지원해야 한다. 공동배달망을 만든다거나 특정신문이 독과점하지 못하도록 쿼터를 만드는 등의 변화에 경남도민일보가 동의할 수 있지만 한 언론사가 선두에 나서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긴 역부족이다. 불난 산에 가서 양동이 두 개로 끌 순 없지 않나. 전 국가적·시민적 각성이 제도와 합쳐져야 한다.” 

▲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사장.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사장.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예산이 계속 삭감되는 등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남에는 경남지발위가 있어서 조금 나은 편인가?

“경남지발위는 김두관 경남지사일 때 지역신문 발전지원 조례를 만들어 예산 10억 원을 편성해 일간지와 주간지 수십군데에 조금씩 나눠줬다. 우송료 지원, 취재지원 등 다양하게 있는데 경남지사가 바뀌면서 예산이 또 줄었다. 큰 도움이 되겠나. 언 발에 오줌누기다. 뜻은 좋지만 서울지발위도 문화체육관광부가 ‘촌신문 살려서 뭐하냐’는 기획재정부 눈치 보며 전전긍긍해 예산을 줄이고, 지역신문 불만 없도록 조금씩 다 나눠주는 식이다. 지발위가 사실상 형해화됐다. 옥석을 가려 지원하는 특단의 조치 없이는 취지만 좋은 빛 좋은 개살구다. 정치인들이 지역신문 지원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양당 모두 서울 중심 기득권이다. 지역의 문제를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다.”

▲ 2000년 12월6일자 경남도민일보
▲ 2000년 12월6일자 경남도민일보

-서울, 대전, 강원 지역에는 계도지가 남아있다. 경상남도는 최초로 계도지를 없앤 지역이고 경남도민일보도 계도지 폐지를 주장했다.

“경남도민일보가 앞장섰다. 계도지 폐지의 주 동력이었다. 경남도민일보를 창간하면서 ‘독버섯에 거름을 줘선 안 된다’며 신문 본연의 저널리즘 책무를 다하지 않는 관행이자 지자체 예산으로 여론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고 계도지에 문제제기를 했다. 언론개혁 차원에서 이후에 족벌·재벌신문이 주도하는 한국신문협회에 들러리 설 수 없다고 선언하며 신문협회를 탈퇴했는데 이 사건도 지역에서 반향이 컸다.”

▲  1988년 경남매일 초년 기자 시절 사령장을 받는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맨 오른쪽 두 번째).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 1988년 경남매일 초년 기자 시절 사령장을 받는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맨 오른쪽 두 번째). 사진=김구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기자생활을 경남매일에서 시작했다. 어떤 시기였나?

“과거에는 신문이 허가제였다. 노태우 정부 들어 자유화되자 경남신문으로는 부족하다고 해서 경남신문에서 나온 분들이 중심이 돼 경남매일을 만들었다. 1988년 창간했는데 운영이 어려웠다. 크게 간섭하지 않는 건설사에 넘겼는데 그 건설사도 어려워져 문을 닫게 됐다. 그래서 경남에 뜻 있는 분들이 다시 모여서 경남도민일보를 만들었다. 그런 정신이 면면히 내려오면서 우리만의 정체성을 확립했기 때문에 재정적으로는 어려울지 몰라도 큰 보람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는 뭘 할 계획인가?

“일단 집에서 쉴 생각이다. 평소 한국 사회에 대한 내 나름대로 고민이 있어 책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언론사 생활 36년을 했으니 관점을 가지고 사회 각 방면을 ‘지역’, ‘지역신문’이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재해석해보고 싶다.” 

-경남도민일보 구성원들에게도 한마디 하면?

“중세 이슬람 역사가 이븐 할둔의 ‘역사 서설’에 나오는 ‘아사비야’란 개념이 있다. 조직의 내적 결속이 가장 높아질 때 그 힘을 아사비야라고 하는데 아사비야가 높아지면 조직이 활성화되고 문제해결능력이 생긴다. 우리 내부의 환경보다 외부 환경이 엄혹할 때 생기는데 제국의 경우 외적의 침입이 많은 경계지역에 아사비야가 높다. 경남도민일보가 민주적 프로세스를 우리 문화로 자랑하고 있지만 바깥 환경은 정글 자본주의라 방심하면 한순간에 우리는 물에 떠내려간다. 그 경계를 정확하게 인지하면, 우리가 더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분투할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결론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경남에 경남도민일보같은 신문 하나는 있어야 한다. 경남도민일보는 그래도 남다른 신문이다. 경남도민일보 후원회원도 가입하고, 멀리 있더라도 꼭 구독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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