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만성 다다다협동조합 이사장. 사진=박영록
▲ 조만성 다다다협동조합 이사장. 사진=박영록

지난 2021년 교육부는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의 ‘차별 금지 대상’에서 ‘학력’을 제외하자는 의견을 냈다. 학력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성취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합리적 차별 요소라는 것이다. 이후 논란이 되자 “학력 포함에 이견에 없다”며 입장을 바꿨지만, 교육부의 태도는 학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학력은 노력의 결과물이며 이에 따른 차별이 공정하다는 생각은 교육부만의 편견이 아닐 것이다.

학력·학벌 차별은 채용 문제와 직결된다.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내세우는 회사도 많지만 그조차 ‘4년제 대졸’을 전제로 사람을 뽑는다. 마치 세상에 ‘고졸’이나 ‘중졸’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청년도 있지만 아르바이트(알바) 채용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초보 가능’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다. 기업뿐만이 아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펼치는 청년정책 대다수는 대학생이나 대졸자가 대상이며, 고졸 이하의 청년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주거정책도 마찬가지다. 알바조차 쉽게 구하지 못하는 대학 비진학 청년에게 살아갈 집을 구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더 험난하다. 그런데도 정작 정부의 주거 지원책은 이들에게 더 부족하고 협소하다.

비진학 청년들을 위한 사회주택 ‘DA같이사는집’을 운영하는 다다다협동조합의 조만성 이사장을 만났다. 조 이사장은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다가 고등학교를 자퇴했으며, 2011년 동료들과 함께 대학입시 거부를 선언하고 시민단체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하 투명가방끈)을 결성한 비진학 청년 당사자이기도 하다.

-비진학 청년들은 어떤 차별과 소외를 겪고 있나.

“나는 고등학교를 자퇴해서 최종학력이 중졸인데, 알바 채용공고는 보통 고졸 이상이 자격조건이다. ‘학력 제한이 없다’면서 고졸이나 대졸을 채용 조건으로 내건 곳들도 있다. 또 내가 종종 대학 비진학 이야기나 청소년 인권교육을 하는 강사로 초대받는데 그때도 학력에 따라 강사비가 다르더라. 비진학 이야기를 하러 가는데 (강사 이력서에) 학력을 써야 하나?

이제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사회가 아예 무감각해진 것 아닌가 싶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대학 졸업을 전제로 ‘어느 학교, 어느 학과 나오셨어요?’, ‘몇 학번이세요?’라고 묻는다. 인권운동을 하거나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며 만난 분들도 내가 당연히 대졸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졸자가 하는 일과 고졸자가 하는 일이 따로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래서 어디 가면 내가 그 그룹의 학력 인플레이션을 낮춰드리고 있다.(웃음)”

-청년들이 오히려 학력에 따른 차별을 공정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대학만 따지는 게 아니라 어느 캠퍼스인지, 심지어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고 어떤 전형으로 입학했는지 따질 정도로 차별이 견고해지고 있다. 교육제도가 청년들에게 뼛속 깊게 각인한 결과물이다. 기본적 인권마저 ‘노력한 사람만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을 하도록 10대를 보낸 사람들이 이제 20~30대가 된 것이다. 결국 일시적 문화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형성된 문제라고 본다. 이걸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스럽고 갑갑하기도 하다.”

▲ 조만성 다다다협동조합 이사장. 사진=박영록
▲ 조만성 다다다협동조합 이사장. 사진=박영록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사무직이나 전문직을 꿈꾸는 청년’만을 청년 혹은 MZ세대의 기본값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청년담론과 청년정책을 어떻게 보나.

“지금 청년정책에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취약한 청년의 자리가 없다. 대학생에게는 맞춤형 알바 일자리가 제공되지만 비진학 사회초년생에게는 그러한 일자리가 없다. 또 청년의 모습이 정형화되다 보니 청년공간도 마치 취업 준비를 위한 스터디카페처럼 획일적으로 운영된다. 서울시 청년공간 수십 곳을 찾아봐도 씻을 수 있는 공간이 단 하나도 없다. 노숙하거나 배달노동을 하는 청년은 어디 들어가려면 간단하게 씻어야 하는데, 이들을 맞을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

-비진학 청년의 주거 상황은 어떤가.

“대학에 가면 자취방을 마련할 때 가족이 돕기도 하고 대학이나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기숙사에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비진학 청년은 가족과의 갈등으로 지원 없이 독립하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다가 가족과 싸우고 쫓겨나서 탈가정 생활을 한 2년 했고, 친구 집에 얹혀살기도 했다. 또한 집안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 대학에 비진학하는 경우에도 가족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비진학 청년을 위한 주거 지원책은 찾아볼 수 없다. 청년주거 지원책은 ‘대학생 유형’, ‘신혼부부 유형’, ‘청년 유형’으로 구분된다. 대학생은 ‘대학생 유형’과 ‘청년 유형’ 모두에 지원할 수 있지만, 비진학 청년은 ‘청년 유형’으로만 지원해야 하는데 경쟁률이 수백 대 1이다. 결국 독립을 포기하거나 고시원·반지하 등 취약한 곳으로 가야 한다.”

-다다다협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는 2015년에 비진학 청년들이 셰어하우스 형태로 모여 산 ‘거부하우스’다. 당시 경험이 어땠길래 사회주택을 시도하게 됐나?

“함께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했던 동료들이 모여 살았는데, 거주자가 점점 많아져 계약기간 막바지에는 한 명이 더 살 수 있도록 거실에 난방텐트를 설치하기도 했다. 작은 집에 5~6명이 함께 지내다 보니 싸울 땐 엄청 싸우더라. 화장실이 하나뿐이니까 출근 시간대에는 무한 대기하고. 그래서 난 그 집에 안 들어가고 따로 살았다. 같이 살 자신이 없어서.(웃음)

하지만 함께 사니까 사람들이 덜 불안해했다. 비진학 청년은 주거 불안은 물론이고 삶에 대한 불안도 크다. 당장 뾰족한 묘수가 있는 것은 아니라도 여럿이 같이 사는 것이 위로와 지지가 된다.

그래서 거부하우스 계약이 끝난 뒤에 제대로 된 집을 만들어보자고 논의했다. 덜 불안하고 덜 외롭고 그러면서도 덜 싸울 수 있는 집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사회주택을 알게 되어 투명가방끈 안에 ‘사회주택 염두팀’을 만들었다. 아직 사회주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추진’까진 아니고 일단 염두해 보자는 뜻에서.(웃음)”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DA같이사는집’을 짓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듯하다.

“염두팀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마다 집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 현관문부터 사적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방문부터 사적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교육을 듣고 워크숍도 했는데 2년 동안 사업계획서가 3번 정도 엎어졌다.

그러다가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의 ‘빈집활용 토지임대부 사회주택’(빈집 부지에 공적 주택을 지어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일종의 공공주택)에 선정됐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과 은평구 녹번동의 작은 필지를 사업지로 받았는데, 그땐 몰랐다. 시공비가 이렇게 비싸다는 걸.(웃음) 게다가 ‘정상가족’을 기준으로 설계한 일반적인 집과 달리 방을 여러 개 만들고 커뮤니티 공간까지 만드는 ‘특이한 설계’라서 더 비쌌다. 그사이 코로나19 때문에 시공비가 오르고, 코로나19가 끝나니 이번엔 푸틴이 전쟁을 일으켜서 또 올랐다. 설계를 마치고 설계비도 이미 지출했는데 2년째 시공을 못 했다. 정해진 기간 안에 시공을 못 해서 이제는 땅을 돌려줘야 하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그사이 다른 빈집을 인수해서 다다다협동조합의 1호 주택으로 서울 구로구에 ‘DA같이사는집’을 열게 되었다. 이 집에는 2개 층에 7명이 사는데 늘 만실이다.”

▲ 조만성 다다다협동조합 이사장. 사진=박영록
▲ 조만성 다다다협동조합 이사장. 사진=박영록

-다다다협동조합의 사업과 성과도 소개해달라.

“크게 두 가지다. 주거사업과 네트워크사업. 주거사업은 ‘DA같이사는집’처럼 비진학 청년이 살 수 있는 주거를 기획하고 공급·운영하는 사업이다. 네트워크사업으로는 ‘학교밖청소년·비진학 청년 예술가 및 창업가 공익활동 지원사업’ 등이 있다. 지난해에는 금융부채 상담도 진행했다. 또한 청년이 주거 문제를 고민할 때 협동조합이 동행하면서 위기 상황도 함께 파악한다. 월세가 미납되는 분을 파악해 긴급복지사업으로 주민센터와 연결하는 식이다.

다다다의 가장 큰 성과는 위기 상황에 놓인 청년들이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도록 관계를 만든 것이다. 은둔·고립 상황에 있는 조합원들과 같이 살면서 입주자 회의도 하고 종종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공원 산책도 한다. 그러다가 청년들에게 좀 힘이 생기면 복지기관과 연계한다. 이 과정이 너무 힘든데 너무 뿌듯하다.”

-입주희망자가 조합을 면접하고 관련 서류 발급도 함께 하는 등 선정 절차가 독특하다.

“입주자들은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니까 원칙상 집주인이기도 하다. 세입자와 집주인의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그래서 입주희망자와 조합이 서로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면접을 한다. 질문하고 회의하는 경험이 익숙하지 않은 분에게는 이러한 방식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데 효과적인 것 같다.

또한 다다다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집이라면 행정절차가 낯설거나 대면을 어려워하는 분들도 들어올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 제출 서류 안내문에 ‘두려워하지 마세요. 협동조합 활동가와 함께 서류 발급을 진행합니다라’고 적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게 쉽지 않을 듯하다.

“월 1회 입주자 회의를 통해 자치규약을 만들고 다듬는다. 처음 시작할 때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서 집을 젠더프리 공간(성별이나 성정체성, 성적 지향 등에 따라 계약을 받거나 분리되지 않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논의하는데, 다행히 위생의 난이도를 너무 높이지는 말자고, 그 부분은 합의했다.(웃음)

우리 집에는 두 가지 임대료가 있다. 현금 임대료는 월세·공과금·관리비 같은 것이고, 참여형 임대료는 청소·분리배출 등으로 참여를 하는 것인데 현금 임대료와 마찬가지로 3회 미납하면 퇴거당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쫓아내려는 취지는 아니다. 입주자가 참여를 계속 안 하면 ‘무슨 일 있어요?’ 이렇게 함께 얘기를 시작하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혹시 참여를 못할 것 같으면 미리 상의해달라고 입주자들에게도 사전에 설명한다.”

-2011년 첫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한 지 벌써 햇수로 13년이 됐다.

“흔히 ‘전교조 교사가 선동해서 학생들이 인권 운동한다’고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나는 중학교에서 못돼먹은 교사들이 깨달음을 줘서 인권운동을 시작했다.(웃음) 학생들이 모욕적으로 맞는다거나 두발 규제를 당하며 등교하는 모습이 끔찍했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했다. 그러다가 19살이 됐을 때 대학에 가지 않기로 했는데, 생각해보니 주변에 대학에 안 간 사람은 보이지 않는 거다. 이에 대해 동료 활동가들과 얘기하다가 함께 거부선언을 해 보자고 말이 나왔다. 대단한 결심을 한 건 아니다. 다만, 대학에 안 가는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그대로 묻히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한 3년쯤 뒤에 ‘DA같이사는집’의 동료들이 구로구에서 주민발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꼭 주민발의가 아니더라도 산책 모임이나 반찬 만들기 모임도 좋다. 청년들이 먹고살기에 지쳐 고립되거나 파편화되지 않고 동네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이 다양하게 연결됐으면 좋겠다.”

-비진학 청년 혹은 비진학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에 한마디 한다면?

“협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가장 좋은 게 이런 거다. 청년들에게 ‘사는 게 막막할 때 다다다에 오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각자도생의 삶은 불안해도 협동의 방식으로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대학에 가지 않는 삶’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는지 묻고 싶다. 비진학 이후의 삶이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비진학자에 대한 지지와 지원이 없다는 뜻이다. 비진학 이후에도 막막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면 좋겠다.”

※ 이 인터뷰는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가 참여연대 월간 매거진 ‘참여사회’ 인터뷰어로 참여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참여사회 2024년 3월호(통권 313호)에 실렸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미디어오늘과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인용 시 ‘참여사회’ 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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