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회장 김승연, 이하 한화)이 편법승계 의혹을 제기한 한겨레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정정·반론보도 조정신청에 나섰다. 한겨레는 한화가 새로 도입한 임원 성과급 제도가 김승연 한화 회장에서 장남 김동관 한화 부회장으로 경영권 승계에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한화 측은 한겨레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한화는 기존 현금으로 지급하는 임원 성과급제를 줄이거나 폐지하고, 지난 2020년 성과 보상을 주식으로 지급하되 성과를 내는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10년 뒤 보상하는 RSU(Restricted Stock Unit, 양도 제한 조건부 주식) 제도를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도입했다. RSU를 받은 임원은 10년 뒤 절반은 의결권 있는 보통주로 전환하고 나머지 절반은 지급(소유) 당시 주가에 상당하는 현금으로 지급한다. 

▲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 17일 다보스포럼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한화그룹
▲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 17일 다보스포럼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한화그룹

기존 현금 성과급제가 단기 성과에 급급하게 만든다는 문제의식에 회사의 장기 성과를 유도하는 성과 보상 체계(성과 장기 이연 보상제도)라는 게 RSU 도입 이유다. 자기회사 주식을 일정한 가격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스톡옵션(Stock Option)’은 행사 시점에 주가 부양 등을 통해 거액의 차액을 얻으려는 부작용이 있어 법령상 대주주에게 지급을 못하게 하지만 RSU는 주가 상승에 따라 행사하는 옵션이 아니라 성과급을 주식으로 보상하는 것이라 법적 제한이 없다. 

김 부회장이 매년 RSU를 받아 온 사실은 사업보고서를 통해 이미 알려졌다. 한화 측 설명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2020년과 2021년 보수 총액이 5억 원이 넘지 않아 구체적인 보수 내역을 공시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금융감독원이 보수 공시를 강화하면서 올초 처음 김 부회장이 2020년 ㈜한화, 2021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받은 RSU 내역이 공개됐다.

한겨레는 지난 16일 1면 기사 <한화 장남에 ‘RSU 389억원’ 경영권 승계수단 악용 우려>를 비롯해 3·4면에서 한화의 경영권 편법승계 의혹을 제기했다. RSU는 10년 뒤에 받는 보상이기에 정확한 액수를 알 수 없다. 한겨레가 지난해 12월 일 평균 종가를 기준으로 현재 가치를 추산했는데 이에 따르면 김 부회장이 보유한 RSU의 현재 가치는 총 389억여원이다. 

▲ 16일자 한겨레 1면 기사
▲ 16일자 한겨레 1면 기사

한겨레는 김 부회장이 입사 직후에 RSU를 받은 사실을 지적했다. 지난 2020년 1월1일 ㈜한화에 입사한 김 부회장이 다음달인 2월11일 RSU 약 3만7000주를 받았고 2021년 3월28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비상근 사내이사 선임과 동시에 RSU 약 1만9000주를 받았다. 

한화 측은 한겨레에 “직위와 직급을 고려해 미래 성과를 미리 예측해 RSU를 선지급했다”고 해명했다. 한겨레는 “RSU는 성과보수 이연 보상이라는 긍정성도 있지만 그룹 지배력을 확장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복현 금감원장 발언을 기사에 함께 실었다. 

▲ 지난 16일 한겨레 3면과 4면
▲ 지난 16일 한겨레 3면과 4면

한화 측은 RSU가 경영권 승계와 관련 없다는 입장이다. 한화 관계자는 22일 미디어오늘에 “사실과 다른 보도로 인해 회사와 주주, 구성원 모두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지난 18일 언론중재위에 정정·반론보도를 청구했다고 했다. 

한화 관계자는 RSU제도 도입 취지를 “단기 성과에 기반한 현금을 매년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대신 장기 이연 기간을 거쳐 소속회사 주식을 지급해 회사 가치 상승을 위해 책임경영·장기성과 중심의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효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입 초기부터 이사회 결의, 주주총회, 계약서 작성, 공시 등 규정에 따라 공정·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초기 미공시 건은 (김 부회장의) 보수가 5억 원 미만으로 공시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RSU를 도입하면서 대주주만 예외로 둘 수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한화 관계자는 “대주주도 다른 RSU 지급 대상자와 동일하게 정해진 기준에 따라 RSU를 부여했는데 RSU 제도를 도입하면서 대주주만 성과급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특혜가 될 수 있다”며 “RSU는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며 오히려 기존 단기 성과급 제도는 현금으로 수령해 저점에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등 지분 확보에 보다 유리할 수 있다”고 한겨레 보도를 반박했다.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는 23일 미디어오늘에 “언론중재를 신청한 것은 한화 쪽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며 “기자는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게 주업이며 월급받는 이유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편법 승계 의혹에 대해 한겨레 기자는 “한화의 RSU가 지배력 확장의 우회로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은 금융당국과 시장에서도 공유되고 있고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말 대주주 부여 RSU 공시 강화 방침을 밝힌 것이 그 예”라며 “상장 기업의 임원 보수 문제는 지배구조의 핵심 사안이며 이를 상세한 공시를 통해 시장의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