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머니' 스틸컷. 주인공 키스 길 역을 맡은 배우 폴 다노가 유튜브 생중계로 주식방송을 하는 장면. 출처=그린나래미디어
▲'덤 머니' 스틸컷. 주인공 키스 길 역을 맡은 배우 폴 다노가 유튜브 생중계로 주식방송을 하는 장면. 출처=그린나래미디어

1주에 3달러, 우리 돈 약 4000원. 가격만 보고 소위 ‘개잡주’ 취급했던 주식이 하루 만에 100배, 1년 사이 1600배까지 폭등하는 유례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2021년 미국, 게임CD 판매업장을 운영하던 게임스탑(Gamestop)이라는 회사의 주가가 말도 못 하게 뛰어오른 거다. 더 놀라운 사실, 이 폭등을 주도한 건 기관도 세력도 아닌 바로 개미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모든 걸 ‘다운로드’하는 시대가 도래하자 게임도 더는 CD를 사지 않고 내려받게 될 거라고 짐작하던 어느 시점. 한 헤지펀드의 창립자 ‘게이브 플롯킨’(세스 로건)은 게임CD 판매업장 다수를 운영 중인 기업 게임스탑의 매출이 점차 줄어들 거라고 예측하고, 2014년부터 2021년까지 그 주식을 장기간 공매도한다. 아, 공매도! 여러 기사에서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아직도 도무지 그 의미를 잘 모르겠는 바로 그 개념에서 촉발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바로 17일 개봉한 <덤 머니>다. 

<덤 머니>를 즐기려면 공매도를 알아야 하고, 공매도를 이해하려면 ‘전제’부터 납득해야 한다. 게임스탑처럼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판단되는 기업의 경우, 투자자들은 머지않은 시기에 그 주가가 떨어질 거라고 본다. 이때 투자자는 게임스탑 주주에게 합법적으로 주식을 빌려올 수 있다. 이유는? 큰 차익을 노릴 수 있어서다. 주당 3달러의 게임스탑 주식 100주를 빌려와 즉시 팔면 40만 원을 벌 수 있는데, 몇 달쯤 흘러 빌린 주식을 되돌려줄 때가 되면 주가는 예상대로 떨어져 있을 테니까. 주당 2달러로 하락했으면 26만 원에, 주당 1달러까지 급락했으면 13만 원에 해당 주식을 다시 사서 주인에게 돌려주면 되는 거다. 값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이득은 커진다.

▲'덤 머니' 스틸컷. 주인공 키스 길 역을 맡은 배우 폴 다노가 매주 게임스탑 주식을 추매하며 자신의 잔고내역을 공개하는 장면. 출처=그린나래미디어
▲'덤 머니' 스틸컷. 주인공 키스 길 역을 맡은 배우 폴 다노가 매주 게임스탑 주식을 추매하며 자신의 잔고내역을 공개하는 장면. 출처=그린나래미디어

개념을 이해했다고 한들, 개미 투자자로서는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복잡한 투자다. 그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보 비대칭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기업 주가가 조만간 떨어질 거라는 걸, 먹고살기 바쁜 평범한 개미 투자자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고급 정보를 선점하는 건 해당 기업의 사업 내용, 재무구조, 시장 현황, 내밀한 업계 소문까지 파악할 수 있는 금융계 종사자들이다. 그 ‘정보의 독점’이 공매도라는 제도와 만나면 무서운 부수 효과를 일으킨다. ‘모 헤지펀드가 주식 공매도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실제 기업의 건전성과는 상관없이 ‘금융계에서 부실기업으로 평가받았다’는 낙인이 찍히고, 나름의 분석과 소신대로 투자를 이어가던 개미들은 돌연 주가 하락이라는 날벼락을 맞게 된다.

<덤 머니> 속 게임스탑도 딱 그럴 뻔한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 건 비범하기 그지없는 주인공 키스 길(폴 다노) 덕분! 그는 독학 끝에 게임스탑이 여전히 괜찮은 매출을 내고 있다고 판단, 헤지펀드의 공매도가 과도하다면서 소신껏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한다. 그냥 사들이기만 한 게 아니라 매주 추매 내역을 유튜브 라이브로 공개한다.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 진을 치고 그의 잔고 공개 행보를 눈여겨보던 개미들이 점차 게임스탑을 따라 매수하기 시작하고,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재밌어진다.

▲'덤 머니' 스틸컷. 키스 길을 따라 게임스탑 주식을 사들인 개미군단들이 환호하는 모습. 출처=그린나래미디어
▲'덤 머니' 스틸컷. 키스 길을 따라 게임스탑 주식을 사들인 개미군단들이 환호하는 모습. 출처=그린나래미디어

왜 재밌어지냐고? 앞서 설명한 공매도의 원리 덕분이다. 떨어질 걸 전제하고 게임스톱 주식을 빌려다 팔았더니, 예상과 다르게 주가가 마구 올라간다면? 빌려온 주식을 다시 갚아야 하는 헤지펀드로서는 비싼 값으로 되갚아 손해를 보게 된다. 주가가 오를수록, 피해도 커진다. 게임스탑을 집중 공매도했던 월가 헤지펀드 멜빈 캐피탈의 손해는 실제 조 단위까지 이른다. ‘개미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오만한 태도로 돈을 빌려 공매도 규모를 키워대던 그는 결국 파산하고 만다. 

물론 게임스탑을 중심으로 뭉쳤던 개미들의 대동단결은 주식 역사상 무척 예외적인 사례다. 한 차례 헤지펀드를 혼쭐내줬다고 해서 주식시장의 엄청난 정보 비대칭이 단박에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적어도 개미들의 소중한 쌈짓돈을 ‘호구’(Dumb money) 취급하는 금융계의 부도덕한 태도에 따끔한 경고가 됐다는 건 분명하다. 복잡한 주식 개념에 휘둘리지 않고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긴 다윗’이라는 단순명료한 테마를 밀어붙여 ‘개미 반란’이라는 통쾌한 여정을 묘사한 <덤 머니>의 재미가 여기 있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의미심장한 ‘선언’까지 남기는 건 덤이다. “주식시장의 개념은 공정한 운동장입니다. 머리와 운이 따른다면 돈이 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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