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선 어린 사람을 ○○양, ○○군으로 표현하거나 ‘~해주세요’라는 식의 존대어를 달고 보도한다. 인터뷰 과정에서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라는 질문을 하거나, 어린이·청소년을 아예 인터뷰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도 많다. 청소년 인권 활동가들은 언론을 만나고 취재에 응하는 과정 자체가 한국 사회가 청소년에 대해 가진 편견과 맞서 싸우는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이와 위계에서 벗어나 차별하지 않고 보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지난 9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75주년을 맞아 ‘나이 위계 없는 언론 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사진=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제공.
▲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지난 9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75주년을 맞아 ‘나이 위계 없는 언론 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사진=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제공.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이 지난 9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75주년을 맞아 ‘나이 위계 없는 언론 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지난 1년 동안 어린이·청소년 차별적 표현이 담긴 기사, 평등하고자 노력한 기사의 사례를 수집하고 개선점을 모아 가이드라인을 구성했다. 5가지 원칙으로 정리한 가이드라인엔 △호칭 및 표현 △비중 있는 보도 △차별과 편견 해소 △동시대인으로 존중 △나이 위계 및 어린이·청소년 차별적인 언어 문화를 바꾸기 위한 노력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지음은 “언론의 보도나 방송, 공개적인 매체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표현을 신조어 또는 유행어처럼 다루는 경우도 많다. 어린 사람을 차별하는 태도를 당연하게 여기게 하고, 어린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문화를 더 강하게 만든다”며 “나이가 위아래를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어린 사람을 하대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 언론·사회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어른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매체로 언론의 인식 변화해야”

지음은 언론이 나이에 따라 존대, 하대를 다르게 하거나 다른 호칭,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른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매체로 언론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음은 ‘○○군’, ‘○○양’으로 부르거나, 호칭 없이 ‘○○야’라고 부르는 대신,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님’, ‘○○씨’의 호칭을 동일하게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지음은 한겨레의 <서현역 17살 시민, 피해자 지혈하며 도와…끝까지 보호했다>를 좋은 사례로 꼽았다.

어린이·청소년과 관련된 일은 어린이·청소년에게 취재해 보도해야 하며, 주체적 시민으로서의 의견을 보도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지난 11월 경향신문 <어른들은, 제대로 알려 하지 않고 ‘경의선 키즈’에게 낙인부터 찍었다> 보도는 경의선 책거리에 모인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들을 향한 사회적 낙인을 지적했다.

지음은 “학교급식 총파업으로 급식 대신 빵을 점심으로 제공하는 학교가 많았는데, 기자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은 ‘빵 맛있어요?’, ‘밥 대신 빵 먹으니까 어때요?’ 였다. 청소년 활동가에게 이슈에 대한 질문 대신 ‘누가 가장 친절하게 대해 줬어요?’라고 질문하는 사례들도 많다”며 “나이로 대표되기 보다 당사자로서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지난 9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75주년을 맞아 ‘나이 위계 없는 언론 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사진=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제공.
▲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지난 9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75주년을 맞아 ‘나이 위계 없는 언론 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사진=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제공.

모든 어린이·청소년을 ‘학생’이 아닌 동등한 시민으로 호칭해 예우하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했다. 지음은 “탈학교(자퇴)와 검정고시, 대안학교 등 제도권 학교가 아닌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가고 있다.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이 학생이지 않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은 대부분 ‘학생’이라고 불린다”며 “어린이·청소년이 학교가 아닌 공간에서도 항상 학생이라고 불리는 것 역시 한 가지 정체성으로 귀속시키는 오류다. 어린이·청소년을 항상 보호받는 사람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기사가 작성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화하거나 비하하는 표현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어린이 청소년이 겪고 있는 갈등이나 고민을 ‘질풍노도’, ‘사춘기’ 등의 용어로 가볍게 대상화하고, 교복 입은 청소년을 성적 대상화하는 식이 대표적이다. 미디어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쉽게 집단화해 하나의 특성을 가진 단일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린이’, ‘중2병’, ‘급식충’, ‘잼민이’처럼 어린이와 청소년 비하 표현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음은 어린이·청소년에 차별적인 언어 문화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언론의 공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지음은 “언론 보도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에서도 활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는 존대를 말하고 비청소년 교수는 그레타에게 ‘네가 해봐’라는 식으로 표현되고 있다”며 “언론사 구성원들 간에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사내 보도 준칙을 수정해 나가야 한다. 모든 사람을 대변할 수 있는 언론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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