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서울 여의도에 처음 가봤다. 생애 첫 서울여행이기도 했다. 초저녁에 한강 공원 잔디에 앉아보고 싶었다. 라면도 한젓가락 후후 불어보고팠다. TV로 배운 낭만이었다. 낯선 길이었지만, 씩씩하게 갔다. 분명 한강이 보이고 잔디밭도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낯선 그곳에는 사람도 라면도 낭만도 없었다. 사람들이 즐겨찾는 ‘그’ 한강공원이 아니었 것. 정처없이 여의도 길바닥을 걸었다. 늦겨울 바람이 차서, 눈에 물이 좀 고였다. 여의도에 관한 기억은 이게 전부다. 짠한 여의도 기행이 문득 다시 떠오른 건 그로부터 8년 뒤였다.

2022년 온라인기사 편집 업무를 맡고 있던 때다. 그해 상반기 유난히 큰 산불이 많이 일어났다. 경남에서는 2월28일 합천군 야산에서 일어난 산불이 인근 경북 고령군까지 확산했다. 27시간 만에야 불은 완전히 꺼졌다. 또 며칠 뒤에는 강원도 울진·삼척에서도 초대형 산불이 일어났다. 당시 산불 관련 기사가 연일 쏟아졌다. 업무 때문에 타사 기사도 유심히 봤다. 유독 자주 보이는 표현이 ‘여의도 면적’이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합천군과 경북 고령군 접경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나흘간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숲(675㏊)을 태웠다.’

의구심이 들었다. 합천·고령 사람은 ‘여의도 면적 2배’를 상상할 수 있을까? 당장 나조차도 감이 없다. 지명을 가린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여의도를 짚어보라고 하면 해맬 것 같다. 여의도를 떠돌던 내가 그랬듯이, 비수도권에 사는 약 2580만 명에게 여의도는 낯선 타지이다. ‘여의도 면적’은 대체 누가 발명한 표현일까. 옛날 신문을 찾아봤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여의도 면적’을 비유로 쓴 가장 오래된 기사는 1974년 매일경제 기사였다. ‘잠실종합개발 확정’ 기사에서 ‘여의도 면적의 4배’라는 표현이 쓰였다. 1980년대 중후반에는 더욱 빈번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여의도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75년 국회의사당이, 1976년 KBS 신사옥이 준공됐다. 1979년에는 한국증권거래소가 여의도로 옮겨왔다. 이는 여의도가 정치·경제·미디어의 중심지가 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KBS에 이어서 1982년 MBC, 1990년 SBS가 각각 입주했다. 이밖에 각종 언론사도  여의도에 터를 잡았다. 즉 1980년대 여의도에 기자가 몰려든 것이다. 정치·경제 여론주도층도 다 거기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무개 기자 기사에 ‘여의도 면적’을 썼다. 동료 기자들이 너도나도 따라서 쓰기 시작했다. 독립된 섬이기 때문에 면적을 뚜렷하게 식별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이게 현재 정설처럼 굳어진 이야기다.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마천루. ⓒ 연합뉴스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마천루. ⓒ 연합뉴스

‘여의도 면적’을 워낙 많이 쓰다보니, 2012년에는 국토교통부가 ‘여의도 면적’과 비교할 때에는 윤중로 제방 안쪽 면적 기준인 2.9㎢로 표기하기로 기준까지 정했다. 제방 안쪽과 한강시민공원까지 포함하면 4.5㎢, 여의도동 전체 면적은 8.4㎢이다. 언론사마다 제각각 면적 기준이 다르니까 하나로 통일한 것이다. 서울 사람들은 한강시민공원을 뺀 2.9㎢의 여의도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언론은 여전히 ‘여의도 면적’을 애용한다. 뉴스 빅데이터 누리집인 빅카인즈에 등록된 전국 주요 언론사 54곳이 올해 1월부터 12월9일까지 ‘여의도 면적’을 2615회 썼다. 10년 전 2011건(1~12월)보다 되레 더 많이 썼다.

1980년대 ‘여의도 면적’은 그래도 꽤 정직한 편이었다. 배수가 1.2배, 1.5배, 2배 이랬다. 상당수 기사에서 10배수 안으로 쓰였다. 여의도 면적으로 너비를 연상하는 기능 살아있었다는 얘기다. 최근 용법은 확연히 다르다. 여의도 면적의 100배, 1000배도 막 쓴다. ‘엄청 넓다’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사실 수도권에 살든 비수도권에 살든 여의도 면적 2배를 초과하면 머릿속에 연상이 잘 안 되지 않나.

최근 대안으로 쓰는 ‘축구장 면적’도 마찬가지다. 여의도 면적보다 훨씬 작아서 100배 200배는 예사로 쓴다. 지역기사라면 차라리 ‘창원광장의 몇배’ ‘화개장터의 몇배’처럼 지역의 상징적인 장소로 비교해보면 좋겠다. 지역 독자들에게는 훨씬 친숙할 것이다. 더불어 지역에서 산불처럼 재난이 일어났을 때는 전체면적 대비 피해면적을 비중(%)으로 표기해보면 어떨까. 전체면적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정하는 게 어렵긴 하지만, 일단 분모만 정하면 객관적이고 간명한 수치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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