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노동자의 벗” 김민아 노무사(법무법인 도담)가 2023년 12월7일 만 4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김민아 노무사는 26세였던 2007년 건설노조에서 노무사 이력을 시작했다. 연세대 법학과에서 법사회학회, 학생회, 여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노동 현장을 접했던 법학도 출신인 그가 2006년 공인노무사 시험(제15회)에 합격해 수습기간을 보낸 곳도 민주노총 서울본부였다. 그렇게 생전 인터뷰 기사의 제목처럼 “단 한 번도 사측 대리한 적 없는” 노무사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2012~2014년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언론탄압 국면에선 전국언론노동조합 조직부장으로 활동했다. 정권의 직접적 영향력에 놓인 KBS·MBC·YTN 등에서 ‘공정방송 복원’을 내걸고 파업에 나선 이들에서, 주류 언론계로부터 소외된 비정규직까지 다양한 언론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최근까지 언론노조 KBS본부, MBC본부, CBS지부, 카카오노동조합 등 언론·미디어 기업 노조들의 자문을 맡았다.

▲고 김민아 노무사 추도식 안내 이미지
▲고 김민아 노무사 추도식 안내 이미지

투쟁 현장의 바깥에선 노동법적으로 아무런 지식이나 준비 없이 일터로 나온 노동자들을 만났다. 2015년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의 전임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노동법 상담과 교육·연구 사업을 기획했다. 2018년 노동교육센터 늘봄을 설립해 센터장을 맡은 뒤로는 일반 직장인들을 넘어 소셜벤처나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으로 강의 대상을 넓혔다. 

김 노무사는 부고가 전해지기 약 한 달 전까지도  공공연맹 월간교육, 사무금융노조 간부 교육을 비롯한 교육 일정을 놓지 않았다. 2015년부터 5년의 투병 끝에 위암 완치 판정을 받았던 그가, 2022년 암이 재발했다는 진단을 받고 1년여간 항암치료를 받던 시기였다.

동시에 그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 여성들 커뮤니티 ‘빌라선샤인’ 자문, 경력보유여성과 초기 스타트업의 일자리 연결 플랫폼 ‘위커넥트’ 이사 및 자문 노무사를 맡는 등 여성들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고민을 나눴다.

연구자로서 그의 이력은 급속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더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기반했다. 2018년 2030세대 노동을 다룬 ‘자비없네 잡이없어’ 공동 저자로 참여했던 그는 작업을 결심한 계기로 ‘좋은 일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꼽은 바 있다.

2020년엔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연구(보건의료산업에 진입하는 취약계층 청년의 경험: 간호조무사 사례를 중심으로)에 참여해 노동 불안정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간호조무사의 노동 환경을 청년 관점에서 분석했다. 2021년엔 한국노동연구원 ‘일터민주주의의 현황과 발전과제’를 주제로 한 연구에서 700개 무노조 사업장과 200개 유노조 사업장을 조사했다. 수습기자 과잉노동, 언론계 ‘미투’(MeToo)와 같이 시대 흐름과 언론계 조직 문화간 불일치가 불거진 사건의 기록들에도 그의 목소리가 담겼다.

고인의 생전 인터뷰에는 노무사로 일하면서 겪어야 했던 고민과 괴로움의 흔적 또한 남아 있다. 2011년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장담을 할 수 없지만 노무사 일을 그만 두더라도 일하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현장에서 함께 하겠다”(민중의소리, 2011)고 말했던 그는, 10년 뒤 “10년 후의 저에게 묻고 싶다. ‘이 일을 아직도 하고 있어?’ ‘왜?’”(뉴그라운드, 2021)라고 물었다.

노동자의 곁에 남은 이유로 그는 “착한 사람이라서 이렇게 사는 게 아니다. 억울한 사람이 화를 내면 같이 화가 나기 때문”(오마이뉴스, 2019)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문제가 생긴 당사자보다 더 많이 억울함을 느껴야 하고, 싸워야 하는 상대방보다 더 많이 당사자를 의심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고 김민아 노무사 추모 게시물. 사진=출판노조 인스타그램
▲고 김민아 노무사 추모 게시물. 사진=출판노조 인스타그램

고인의 부고에 각계에서 추모와 애도가 전해지고 있다. 언론노조는 8일 추모 성명을 내고 “그는 거인이었다. 국가권력과 사용자들에 의해 찢기고 상처받은 곳곳의 언론노동자들을 한 가슴에 품어 안는 거인이었다. 그는 등대였다. 가진 자들의 위세와 폭력 앞 망망대해 조각배 같은 노동자들에게 생존의 길을 여는 등불이었다”며 “징계와 해고, 차별이 난무하는 현장마다, 권력의 언론장악과 노조파괴 시도가 비수처럼 우리를 겨눌 때마다 우리 곁엔 김민아가 있었다. 우리를 짓누르는 불의가 거셀수록 작은 체구의 그는 가장 거대한 방파제였고,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언론노조는 이 성명에서 “그가 꾸던 꿈, 그가 염원했던 세상은 아득히 있고, 여전히 노무사 김민아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이제 그는 별이 됐지만, 그가 꾸던 꿈은 언론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에 또다른 희망으로 남아 있다”며 “이제 그 꿈은 언론 노동자와 법률 활동가들의 단결된 힘으로 이어지리라. 아픔이 없는 세상을 꿈꿨던 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출판노조도 이날 고인이 출판노조 10주년을 맞아 전했던 축하 메시지를 되새기며 “출판노동자의 든든한 친구 김민아 노무사님을 늘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9일 오후 2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영결식장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의 벗, 김민아 노무사 추도식’이 진행된다. 김 노무사가 자문을 맡았던 언론노조 산하 지부·본부 등 언론계, 김 노무사가 첫 발을 내딛었던 건설노조 등 노동계, 법무법인 도담 관계자 등이 추도사를 전할 예정이다.

고인의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6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0일 5시20분,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일산공감수목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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