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정준영 방송통신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19세기에 ‘하세요’ ‘계세요’와 같은 ‘해요’에서 ‘요’가 빠진 게 반말이다. 말 그대로 말이 반이 된 거다. ‘말이 짧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반말은 존댓말이라는 상대어가 떠오르기 때문에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존댓말이 가져오는 위계 질서, 반말이 가져오는 부정적 뉘앙스때문에 반말보다는 ‘평어’를 써보자는 움직임이 있다. 

지난 28일 한글문화연대가 주최한 토론회 ‘세상의 높낮이와 말의 높낮이’에서 이성민 작가는 평어를 ‘예의 있는 반말’로 정의한다. ‘오빠’ ‘형’ ‘언니’ ‘누나’ ‘진환아’ 등의 반말호칭과 달리 평어에서는 ‘진환은 어떻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이 작가는 5년 전부터 한 디자인학교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평어를 쓰고 있다. 그는 최근 ‘말 놓을 용기’란 책을 냈는데, 책을 낸 출판사 민음사에서도 한 팀 안에서 평어를 사용하고 있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가 수업에서 평어를 사용하는 사례는 이미 다수 언론사에서 다뤘다. 

이 작가는 “비행기에 기장과 부기장이 있는 이유는 비행기 안전 때문인데 위아래가 있는 한국 문화에서 그런 안전장치는 소용이 없었다. 부기장은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기장은 제대로 듣지 않았기에 대한항공에 비행기 사고는 전부터 계속 있어왔다”며 대한항공의 혁신 사례를 소개했다. 한국어가 유독 위계질서를 따지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된 데이비드 그린버그는 대한항공의 공용어를 영어로 정했고 문제 상당수가 해결됐다고 한다. 

또한 2002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은 거스 히딩크가 선수들 간에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사용하라고 지시했고 수평적 소통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 사례는 유명하다. 

이 작가는 “말 때문에 우리는 겪을 필요가 없는 고통을 겪어왔고 말 때문에 우리는 누릴 자격이 있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수업시간에 평어를 사용하는 이유다. 

그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한 대목을 가져와 노인 산티아고와 소년 마놀린의 대화를 존댓말에 담긴 서열 없이 재번역한 것을 제시했다. 

[기존 번역] 
“산티아고 할아버지.” 노인의 배를 끌어 올려놓고 해안 기슭을 올라가면서 소년이 노인에게 말했다. “저 다시 할아버지와 함께 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돈을 좀 벌었거든요.”
소년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노인이었다. 소년은 노인을 사랑했다.
“아니다.” 노인은 말했다. “넌 운 좋은 배를 타고 있어. 그 사람들하고 계속 있어.”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전에 할아버지가 팔십칠 일이나 고길 못 잡다가 저랑 함께 나가서 삼 주 동안 매일 큰 고기를 잡은 적이 있잖아요.”

[평어 번역]
“산티아고.” 소년이 그에게 말했다. 그들은 배를 끌어 올려놓고는 거기서부터 해변 언덕을 올라가는 중이었다. “다시 내가 너와 같이 갈 수 있겠어. 우리가 돈을 좀 벌었어.”
노인은 소년에게 고기잡이를 가르쳤다. 그리고 소년은 그를 사랑했다.
“아니.” 노인이 말했다. “넌 운 좋은 배를 타고 있어. 그들과 계속 있어.”
“하지만 너가 나가서 87일 동안 고기가 없었는데 그러고 나서 우리가 3주 동안 매일 큰 고기를 잡았던 걸 기억해봐.”

이 작가는 평어 번역에 대해 “소년의 존댓말과 노인의 반말로는 붙잡기 힘든 두 마음을 품은 대화”이자 “마을의 둘도 없는 친구인 그 둘의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대화”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작가는 “평어는 반말이라는 기존의 말을 가져다 사용하기에 반말로 흐를 위험이 있다”며 “평어 사용이 사회운동처럼 갑자기 확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 28일 한글문화연대가 주최한 세상의 높낮이와 말의 높낮이 토론회. 사진=장슬기 기자
▲ 28일 한글문화연대가 주최한 세상의 높낮이와 말의 높낮이 토론회. 사진=장슬기 기자

이날 토론회에서 신지영 고려대 교수는 한국어는 2인칭 대명사를 쓰기 어려운 언어인 부분을 지적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2인칭 대명사의 사용을 중심으로 전 세계 언어는 네 가지 범주로 분류가 가능하다. 첫 번째 범주는 영어처럼 2인칭 대명사를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언어다. 207개 언어를 분석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36개 언어(66%)가 이에 해당한다. 다음은 공손성에 따라서 두 가지 범주를 갖는 언어다. 불어가 대표적인데 대상에 따라 공손과 비공손의 두 가지 2인칭 대명사 범주를 가진 언어다. 207개 언어 중 49개 언어(24%)가 이 두 번째 범주에 속한다. 세 번째 범주는 공손성에 따라서 3가지 이상으로 구분되는 언어로 207개 언어 중 15개 언어(7%)가 이에 속한다(필리핀 타갈로어). 마지막 네 번째 범주는 한국어가 속한 범주인데, 공손성의 이유로 2인칭 대명사의 사용이 기피되는 언어다. 약 3%(7개)가 이에 속한다. 

신 교수는 “한국어로 말할 때 ‘너’ ‘당신’ 등의 2인칭 대명사를 쓰는 건 상대에게 공손함을 드러낼 필요가 없음을 표시한다”며 “한국어로 말할 때 상대를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 또한 공손함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대상으로 상대를 인식한다는 뜻이 되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든다”고 했다. 결국 상대자를 2인칭 대명사나 이름으로 부르지 못하게 된다. 대신 적절한 호칭을 찾아서 상대의 직업명이나 직함으로 불러주거나 마땅한 호칭이 없으면 ‘아무개 선생님’ 등의 표현으로 상대를 불러야 한다. 높임법과 함께 상대와의 관계, 정확하게는 서열을 고려해야 하는 언어다. 

존댓말-반말의 틀 대신 공공어-친밀어로 구분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정태석 전북대 교수는 “존댓말은 나이 서열주의 문화를 존속시키는 제도적 힘으로 처음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상적 인사, 소통, 대화에서 장벽을 만들고 있다”며 “존댓말-반말 대화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 방식이 평어 사용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정태석 교수는 “어투를 갑자기 모두 반말(낮춤말)로 통일하거나 지나친 존댓말로 통일하는 건 나이 든 사람들에게 심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먼저 적당한 수준의 높임말(해요체)로 평상어를 통일한 다음에 적응기를 거쳐 어투의 단일화를 시도하는 게 거부감을 줄이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공적인 관계에서는 해요체, 친밀한 사이에서는 해체(반말)로 단순화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준영 방송대 교수도 “위계관계를 강화하는 존대법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존대법은 평등한 수평적 교류를 강조하는 현대사회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며 “위계와 관계없이 단일한 말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정준영 교수는 낮춤말, 그중에서도 ‘해체’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해라체’에 비해 낮춤의 의미가 약화돼 있어 거부감이 덜하고,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사진=pixabay
▲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사진=pixabay

끝으로 신 교수는 “언어는 개인이 바꾸지만 개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새로운 질문들을 통해 우리의 언어가 잘 쓰이고 있는지, 과거에 만든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잘 담고 있는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지 섬세하게 살피고 새로운 사용법을 익혀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태석 교수는 “서열에 가두는 존대법은 다양한 세대의 소통을 막는 장벽”이라며 “서열주의 중 하나가 나이서열이기 때문에 서열주의로부터 해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존대법을 해체해가는 논의가 확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를 통해 문화적 서열의식에서 벗어나는 게 소통을 확산하고 관계를 넓힐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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