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정당하다. 즉, 프리랜서로 형식적 계약을 한 아나운서는 프로그램이 부당하게 폐지돼도 대항하지 말고, 위장도급 방송노동자는 10년 넘게 일해도 낮은 연봉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권리 구제를 통해 정규직으로 인정되더라도, 신입사원으로 처음부터 다시 경력을 쌓으라는 것이다.”

광주MBC(사장 김낙곤)에서 방송노동자 ‘위장 프리랜서’와 위장도급 관행이 노동자들 문제 제기로 드러났지만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지역·사회·노동단체들이 연대체를 출범했다. 미디어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과 광주청년유니온, 민변 노동위원회, 민주노총법률원 광주사무소 등 21개 단체는 22일 광주 남구 광주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M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광주MBC 만행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프리랜서 노동자 집단해고 사태 이후 2년 만에 광주 시민사회가 다시 움직였다”며 “광주MBC에 사회적 책임을 묻고 불법적 방송 관행을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광주MBC에선 지난 2021년부터 최근까지 방송노동자들에 대한 위장 프리랜서와 위장도급 문제가 당사자들 문제 제기로 드러났다.

▲미디어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과 광주청년유니온, 민변 노동위원회, 민주노총법률원 광주사무소 등 21개 단체는 22일 광주 남구 광주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M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엔딩크레딧 제공
▲미디어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과 광주청년유니온, 민변 노동위원회, 민주노총법률원 광주사무소 등 21개 단체는 22일 광주 남구 광주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M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엔딩크레딧 제공

김동우 아나운서(가명)가 대표 사례다. 김 아나운서는 지난 2021년부터 광주MBC에서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다 총 세 차례 법률 구제를 신청해 모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판단을 받았다. 광주고용노동청에 근로자지위확인·연차수당 미지급과 근로계약서 미작성 진정,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기간제 차별시정 신청을 제기한 결과였다.

광주노동청은 지난 8월 말 광주MBC에 근로계약을 체결하라는 시정지시를 내렸으나 회사가 시정 기한을 넘겨 이행하지 않았다. 김 아나운서와 대리인 하은성 노무사는 지난 15일 김낙곤 광주MBC 사장과 윤근수 컨텐츠본부장 등과 첫 면담을 가졌지만 회사가 경력 인정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소득 없이 끝났다.

CG와 광고편집, 영상편집, 무대세트장치 설치, 자료실, 전산 등 업무를 해온 8명의 노동자는 지난 4월 광주MBC를 상대로 직접고용과 불법파견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광주MBC에서 10~16년간 상시 지속 업무를 해왔지만 형식상 하청업체 동광개발 소속으로 도급·파견계약서를 1년 단위로 갈아가며 일했다고 밝힌다.

광주MBC는 SNS업무 담당자를 지난 2년간 ‘프리랜서’ 계약으로 고용했다가 계약 기간을 6개월 남기고 중도해지를 통보해 ‘무늬만 프리랜서 부당해고’ 논란도 일고 있다.

연대체에 참여하는 단체 대표들은 이날 광주MBC의 문제 해결 의지 부족을 비판했다. 이들은 광주MBC를 비롯한 방송사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적극 보도하면서도 사내 비정규직 문제는 외면한다고 지적했다.

김 아나운서는 이 자리에서 “본질적으로 비정규직 업무는, 정규직이 하기 싫은 일들을 대신 하는 자리임을 알았다. 저도 지난 7년간 ‘9 to 6’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는 물론, 새벽뉴스, 야간뉴스, 주말 당직뉴스를 전담해 왔다. 힘들고 위험한, 야간과 휴일 근무를 해왔다”고 했다.

그는 “광주MBC는 (기간제법이 정한) 2년마다 새로 사람을 뽑아 가르치는 것조차 귀찮은 나머지 비정규직을 고용해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시킨다. 그리고 넌 이제 와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며 “비정규직의 노동 인생과 경력을 퇴행시키려는 사측의 불법 행태에 정면으로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남구 월산동 광주MBC 사옥. 사진=김예리 기자
▲광주 남구 월산동 광주MBC 사옥. 사진=김예리 기자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광주MBC가 제시한 신규입사 계약서는 김동우씨의 지난 7년을 부정하는 행위다. 이미 노동청과 노동위에서 그가 ‘노동자’임을 분명히 인정했음에도 광주MBC는 법 위에 서 있으려 한다”며 “광주MBC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8명은 10년 넘게 정규직 업무를 맡으면서도 1년 단위 도급계약으로 일했다. 12년 일한 노동자의 연봉이 3000만 원을 넘은 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방송사들은 경영난과 뉴스사막화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면서 프로그램을 뼈대부터 만들어온 프리랜서들을 입맛대로 해고한다”며 “과거 부당한 권력과 언론탄압에 맞서 공정과 상식을 외치고 투쟁한 언론노동조합의 결의를 기억하지만, 구호 이면에는 본인 곁에서 함께 방송을 만드는 불안정노동자에 대한 존중은 없다”고 했다. 그는 “광주MBC노동조합(언론노조 광주MBC지부)는 이 사안에 단 한 번도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그리고 현재 김낙곤 사장은 광주MBC 노조위원장 출신”이라고 꼬집었다.

황정민 청년정의당 광주광역시당 위원장은 “학교를 벗어나 경험한 건 청년 불안정 노동자에 가혹함을 넘어 잔인한 현실”이라며 “내가 중학생일 때 긴 시간 광주MBC 노조위원장이던 김낙곤씨가 현재 광주MBC 사장이 돼 불법파견과 차별, 꼼수와 억압에 앞장서는 모습에 좌절한다. 딴 게 아니라 7년을 근무해도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41만 명의 쉬는 청년들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광주MBC 직원이 광주MBC 내 위장 프리랜서와 위장도급 등 비정규직 문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광주MBC 직원이 광주MBC 내 위장 프리랜서와 위장도급 등 비정규직 문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범규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은 “(공공운수노조 소속인)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도 정규직과 같은, 아니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공적인 업무를 함에도 해마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려 총파업에 나섰다”며 “공공 영역이자 공정해야 할 방송사에서 또다시 노동자를 내치고 비정규직 프리랜서를 양산하고 있다”고 했다.

‘광주MBC 비정규직 해결 모임’은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의 소송과 투쟁에 연말 해고 위협과 압박, 회유로 일관하는 광주MBC에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느냐”며 “모든 책임은 ‘자사’ 출신 사장으로 사실상 수십 년간 문제를 방관해온 김낙곤 광주MBC 사장에게 있다. 구성원 반발을 앞세워 정당한 노동자 권리를 무시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박재욱 언론노조 MBC본부 광주지부장은 22일 통화에서 사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에 “입장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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