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공보물을 읽을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화면 낭독 프로그램 파일을 제공하는 등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나왔다. 

한 시각장애인이 지난해 6월1일 진행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선거공보물에 접근할 수 없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정책·공약마당 누리집에 게시된 일부 후보자들의 ‘5대 공약’ 피디에프(PDF) 파일, 시각장애인 접근성 디지털 선거공보, 시각장애인 접근성 디지털 선거공보의 저장매체 등에 접근할 수 없었다.

선관위는 정책·공약마당 사이트의 정책·공약 등 자료는 정당과 후보자가 제출한 것을 그대로 게시하는 것으로 선관위가 임의로 해당 파일을 재가공할 수 없고, 시각장애인 접근성 디지털 선거공보 또한 선관위가 임의로 재가공하거나 대신 작성할 수 없다고 했다. 또 ‘공직선거법’ 제65조(선거공보) 제11항에 따라 시각장애인 접근성 디지털 선거공보의 제작 주체는 후보자이므로 선관위는 이 사건에서 차별 행위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답변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하지만 인권위는 지난 17일 선관위가 선거 관련 정보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여기서 선거 관련 정보는 선관위 정책·공약마당 누리집에 게시되는 선거 관련 정보, 선관위가 배포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자형 선거공보의 내용을 음성·점자 등으로 출력되도록 전환한 디지털 파일’과 해당 디지털 파일이 저장된 유에스비(USB) 메모리 라벨 등을 말한다. 

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소위 위원장 남규선 상임위원)는 우선 선관위가 이 사건 차별 행위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피진정인이 정당·후보자가 작성·제출한 선거 관련 정보를 선관위 정책·공약 마당 사이트 게시·저장매체 발송 등 방식으로 시각장애인에게 전달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3조 제8호 가목에서 규정한 ‘배포’로 볼 수 있으므로 선관위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시각장애인이 정책·공약마당 누리집을 통해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선거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점,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저장매체가 어느 정당·후보자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 정확한 선거 정보가 제공됐다고 보기 어려운 점, 더욱이 저장매체에 담긴 파일이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저장매체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점 등을 종합해 이 사건에서 시각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선관위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했다. 선관위가 시각장애인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은 정보에 대해 보완 요청을 할 수 있고, 저장매체를 접수·배포하는 과정에서 정당·후보자 이름이 점자나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로 표기됐는지 여부를 실무상 조치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선관위에게 ‘5대 공약’ 피디에프 파일과 저장매체 속 파일·라벨의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높이는 데 지나친 부담이나 뚜렷하게 곤란한 사정이 있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3항 제1호에 따른 차별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