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예산 검증 보도를 기획했던 지역언론 ‘충청리뷰’ 편집국장이 기사 출고에 우려를 표명한 회사로부터 보직해임 통보를 받았다.

이재표 충청리뷰 편집국장은 27일 오전 회사로부터 “편집국장 보직을 해임한다”는 인사발령 통보서를 받았다. 이 국장은 전날 자신의 칼럼을 실은 지면의 마감을 끝내고 퇴근했다. 하지만 27일자 신문엔 이 국장 칼럼이 빠져 있었고, 경위 설명 없이 보직해임을 통보받았다.

이 국장은 이날 통화에서 “어제(26일) 마감을 끝내고 퇴근했는데 오늘 배달된 신문을 보니 내 칼럼이 빠져 있었다. 내가 퇴근한 후 누군가 편집 서버에 업로드된 기사 자료를 싹 지웠다”며 “대주주인지, 아니면 사장인지 실제 이번 인사를 결정한 쪽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평기자 신분이어도 충청리뷰를 통해 검찰 예산 검증 보도를 내보낸다는 생각엔 변함없다”고 밝혔다.

▲ 이재표 충청리뷰 편집국장. 이재표 페이스북.
▲ 이재표 충청리뷰 편집국장. 이재표 페이스북.

충청리뷰는 뉴스타파를 주축으로 구성된 ‘검찰예산검증 공동취재단’ 일원이다. 지난 7월 구성한 공동취재단에는 경남도민일보, 뉴스민, 뉴스하다, 부산MBC, 충청리뷰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전국 67개 지방검찰청을 대상으로 검찰의 세금 부정 사용과 예산 오남용 문제를 검증하고 있다. 충청리뷰는 청주지방검찰청을 포함해 충주지청, 제천지청, 영동지청 등 충청북도에 있는 4개 검찰청과 지청의 관련 서류를 정보공개청구로 받아냈다. 충청리뷰는 지난달 29일 <충청리뷰, 뉴스타파와 함께 ‘검찰 금고’ 연다> 기사에서 충청리뷰도 공동취재단에 가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27일자 지면에 빠진 이 국장 칼럼은 자사의 검찰 예산 검증 보도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 이 국장은 ‘할 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충청리뷰는 뉴스타파 등과 함께 검찰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검사장과 지청장 업무추진비를 분석하는 보도를 준비해왔다”며 “하지만 아직 보도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충청리뷰 ‘총체(總體)’의 동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통화에서 “나는 대표에게 ‘만약 검찰 예산 검증 보도를 내보내지 않으면 내 직을 걸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대표는 ‘사표를 쓸 거면 언제 쓸 건지 알려달라’고 말할 뿐”이라며 “보직해임에 법적대응을 할 생각은 없지만 기사 출고에 대해서는 끝까지 다툴 것”이라고 밝혔다.

김학성 충청리뷰 대표는 “이 국장은 두 번이나 스스로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며 “회사 입장에선 국장 공백을 대비해야 하니 ‘언제까지 신문 제작에 관여할 것인가’ 물었고, 9월26일까지 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이번 인사발령은 이재표 국장 본인 뜻을 수용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대표는 검찰 예산 검증에 우려를 표명한 까닭에 “아시다시피 (검찰 예산 검증 보도는)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이 소송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게 된 것으로 우리가 직접 취재한 내용도 아니다”라며 “우리가 굳이 관여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 검찰 예산 검증 보도를 기획했던 이재표 충청리뷰 편집국장이 27일 오전 기사 출고에 우려를 표명한 회사로부터 보직해임 통보를 받았다. 사진=이재표 페이스북.
▲ 검찰 예산 검증 보도를 기획했던 이재표 충청리뷰 편집국장이 27일 오전 기사 출고에 우려를 표명한 회사로부터 보직해임 통보를 받았다. 사진=이재표 페이스북.

충청리뷰는 1994년 1월 충북권 시사 월간지로 창간했다. 초대 발행인은 당시 해직교사였던 도종환 시인(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맡았다. ‘올곧은 말 결고운 글’을 지향하며 진보적 언론 운동을 벌였다.

2002년에는 <법화(法禍)…그 깊은 상처>라는 기사를 통해 △불구속수사 원칙에도 구속자가 양산되는 등 검찰의 인권 침해가 만연해 있으며 △일부 지역 인사들이 검찰을 내세워 호가호위하고 있다는 내용 등을 보도했다가 청주지검이 충청리뷰 주주 관련 회사와 광고주에 대한 수사를 벌여 언론 탄압 시비가 불거지기도 했다. 아래는 27일자 충청리뷰에 실리지 못한 이재표 충청리뷰 편집국장 칼럼 ‘할 말’ 전문.

할 말

지난 9월15일이 충청리뷰 창사 30주년이었다. 1993년 지역일간지를 박차고 나온 다섯 명의 기자들이 100만 원에서 500만 원을 추렴해 만든 월간 충청리뷰가 그 시작이다.

해직교사였던 도종환 시인이 첫 대표를 맡았다. 1997년 주간지로 전환해 여기까지 왔다. ‘열한 번 이사를 다녔다’는 홍강희 선임기자의 기사는 나를 울렸다.

2023년 9월15일자 창간 30주년 특집호(지령 1285호 표지)에 나는 다섯 줄짜리 에세이를 썼다.

“참 많이도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잎을 떨어내며 버텼습니다. 늘 목말랐습니다. 그래도 다른 샘을 찾지 않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를 꿈꿉니다. 가뭄에 마르지 않는 샘이 깊은 물이기를 바랍니다”라는 글의 제목은 ‘용비어천가’였다.

김진석 사진작가가 비행기 안에서 찍은 저물녘 대청호의 모습은 금빛 용(龍)이었다.

사실 충청리뷰는 지금도 흔들리는 중이다. 그래서 위의 글은 다짐이기도 하다. 지난 30년을 ‘잎을 떨어내며 버티고, 아무리 목이 말라도 다른 샘을 찾지 않은 것’으로 요약하고 나니 앞으로 갈 길이 보이는 것도 같다.

충청리뷰는 뉴스타파 등과 함께 검찰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검사장과 지청장 업무추진비를 분석하는 보도를 준비해왔다.

이에 따라 청주지방검찰청을 비롯해 충주지청, 제천지청, 영동지청 등 충북에 있는 4개 검찰청과 지청의 관련 서류(2017~2023년 4월) 대부분을 정보공개청구로 받아냈다.

하지만 아직 보도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충청리뷰 ‘총체(總體)’의 동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30년 충청리뷰의 총체는 ‘충청리뷰에 속한 모든 이들’이 공유한다.

충청리뷰에 속한 이는 직원과 전(前) 직원, 독자, 주주들, 그리고 충청리뷰의 영욕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다.

충청리뷰를 자본으로 소유한 이들은 충청리뷰를 사고팔 때 매겨지는 가격의 그 지분만큼을 소유했을 뿐이다. 충청리뷰가 30년 동안 쌓아온 이름값이 ‘허명(虛名)’이 된다면, 내놓아도 팔리지 않을 것이다.

1996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2005년 충청리뷰로 왔다. 2013년까지 일하다가 ‘행성B를 찾으라’는 임무를 띠고 4년간 자회사 대표를 맡았다. 하지만 행성B는 찾지 못하고 우주미아로 떠돌다가 작년부터 다시 충청리뷰에 속했다.

24면이던 지면을 32면으로 늘렸고, 왕년의 기자 열댓 명을 전문기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지면으로 소환했다. 올 1년 동안 네 차례 정례 여론조사도 하고 있다. SNS 플랫폼 구축과 동영상 뉴스 제공, 출판업 진출 등 꿈만 꾸고 실천하지 못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핵심은 ‘할 말은 반드시 하는’ 충청리뷰로 다시 서는 것이다.

2005년 내가 취재하던 기사가 출고도 되기 전부터 안팎의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외압도 어마어마했다. 그 기사는 그 주에 나가지 못했다.

당시 편집국장은 내 기사에 배정된 한 면을 백지로 내서 추락한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을 막아줬다. 그리고 그다음 주, 결국 그 기사는 활자화됐다.

내가 충청리뷰에 진 빚이다. 갈 때는 가더라도 빚은 갚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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