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보도한 KBS와 기자를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호반건설이 소송을 취하하고 KBS 기자에게 사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기업 건설사가 언론소송을 취하하고 사과까지 한 건 이례적이다. 

KBS ‘뉴스9’은 지난해 3월 호반건설이 부당 지원으로 증여세 없이 김상열 전 호반그룹 회장의 장남 김대헌 사장에게 기업을 승계했다는,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다뤘다. 관련 의혹을 조사해온 공정거래위원회가 호반에 대한 제재 방침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직후 호반건설은 KBS와 정새배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남부지법에 냈다. 이와 함께 정 기자에 대해선 급여 채권 가압류도 신청했으며, 언론중재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KBS를 상대로 제소와 민원을 제기했다. 

▲ 2022년 3월30일자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2022년 3월30일자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법원은 지난해 6월 “이 사건 급여 채권 가압류 신청은 미리 보전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한 (호반 측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정 기자에 대한 호반의 채권 가압류 신청을 기각했다. 호반건설은 본안 소송인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첫 공판이 열리기 전 취하했다.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서민민생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정새배 KBS 기자와 호반건설 고위 임원 간 만남이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호반 측은 무리한 법적 대응에 정 기자에게 공식 사과를 표명했다. 

두 사람 만남은 김순환 서민민생대책위 사무총장이 주선하고 중재한 것으로 서민민생대책위는 호반건설이 KBS와 기자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호반건설 사주 일가를 권리행사방해, 강요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한 단체다. 

김 총장은 31일 통화에서 “그동안 호반건설 측에 ‘기업이 언론 보도를 이유로 기자들을 고발하면, 기자들은 깊은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책임을 가진 기업이라면 소송을 취하하고 기자들에게도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수차례 의견을 전했다”며 “이번 사과는 기업이 기자 고소, 고발, 민사소송을 남발하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현실을 타파하고 잘못이 발생하면 먼저 사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 총장은 “기업도 언론 보도에 불만이 있다면 법적 대응을 할 수 있지만, 기자 개인 재산을 상대로 가압류를 신청하는 건 기자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다. 이 부분에 관해 호반 측이 KBS 기자에게 사과했다”며 “서민민생대책위는 현장에서 어렵게 뛰고 있는 기자들에게 불합리한 문제가 발생하면 아무리 시간이 걸린대도 적극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정 기자와 만난 호반건설 임원은 “우리 회사 언론 대응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구두 사과를 표명한 것”이라며 “정 기자에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고 정 기자도 이해하고 진의를 받아주셨다”고 했다. 이어 “언론이 결론 난 팩트만 보도할 순 없고 의혹이 있다면 제기할 수 있는 것”이라며 “기업이든 누구든 그런 의혹에 제대로 된 해명을 하는 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기자는 “지난해 호반건설의 본안소송(손해배상등 청구소송)은 첫 공판이 열리기 전 취하됐고, 이번에는 서민민생대책위를 통해 호반건설 관계자 분을 만나게 됐고 사과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호반건설이 총수 2세 등 특수관계인 소유의 호반건설주택, 호반산업 등을 부당하게 지원하고 사업 기회를 제공한 부당 내부거래 행위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608억 원을 부과한 바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29일 “공정위가 호반건설이 계열사와 협력사들을 동원해 2세 회사들에 공공택지 사업을 몰아줬다고 적발하고도 검찰에 고발 조치하지 않았다”며 김상열 전 회장과 장남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총괄사장, 차남 김민성 호반산업 전무를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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