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기 분당 서현역, 지난 5일 대전 소재의 한 학교에서 각각 흉기를 휘두른 사건으로 사회적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언론에선 범죄 원인을 정신장애(정신질환)로 단정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흉악 범죄와 정신장애의 인과 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국제사회가 인권 침해로 규정하고 헌법재판소에서도 헌법불합치 결정한 강제입원 제도를 사법부를 통한 방식으로 강화하겠다고 했다.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과거 정신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언론이 이를 범죄 원인으로 규정하는 모양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확산하는 것에 우려가 나온다.

지난 6일자 연합뉴스 <‘치료 중단’ 정신질환자 중대범죄 잇따라…“치료지원·관리해야”>란 기사 제목은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중단해서 범죄를 일으켰다’는 해석을 부른다. 

기사는 서현역에서 흉기를 휘두른 최아무개씨가 2015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3년 전부터 치료를 중단한 사실, 대전에서 교사를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의 경우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입원 치료 권유에도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했다.  

기사에선 증오문화대응네트워크 낙원 공동간사의 의견이라며 “정신질환이 범죄의 원흉이라는 식의 프레임이 생기면 (정상적인 삶을 사는) 다른 정신질환자들도 잠재적 범죄자로 몰고 가는 셈”이라는 우려를 함께 전했다. 연합뉴스는 부제에서 “정신질환자, 잠재적 범죄자 낙인”을 일부 우려라고 전했지만 기사 끝에 소개하는 정도로 끝내, 기사의 전체적 방향은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으로 읽힌다.

▲ 7일자 조선일보 기사
▲ 7일자 조선일보 기사

7일자 조선일보 <분당 칼부림도, 교사 습격도…‘치료 거부한 정신질환자’>도 비슷한 내용을 보도하며 보건복지부가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신 질환자 입원과 치료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법무부가 정신질환자 입원 여부를 법원이 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 기사도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지만 역시 ‘일각의 의견’ 정도에 그쳤다. 이들 기사뿐 아니라 정신질환을 흉악 범죄 원인으로 지목한 기사는 온라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 등이 ‘정신질환 관련 관계부처 합동 TF’를 구성하는 것과 별개로 정치인들도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듯한 발언을 했다. 예를 들어 신상진 성남시장은 지난 6일 분당경찰서를 방문해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치료를 중단하고 있는 환자에 대해선 지자체, 경찰, 의료계 등이 협력해 치료와 관리를 받도록 하는 예방조치가 필요하다”며 사법입원제를 주장했고 다수 매체가 이 발언을 보도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에 “정신질환자가 서현역에서 차량과 흉기로 많은 사상자를 내어 충격을 준다”고 썼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단체인 ‘침묵의소리’가 지난 2021년 제정한 ‘정신장애 보도 미디어 가이드라인 2.0’에는 “정신질환과 범죄와의 인과 관계를 팩트체크해 기사를 작성한다”, “보도 제목에 정신장애에 대한 공포, 불안, 혐오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등 규정이 명시돼 있다.  

▲ 세계일보 7일자 기사
▲ 세계일보 7일자 기사

‘정신질환자=잠재적 범죄자’로 전제하면 그에 뒤따르는 분석과 해결책은 정신장애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강화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는 범죄자가 남성이었다는 이유로 남성을 범죄 원인으로 지목하거나 의사나 목사가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그들 직업을 범죄 원인으로 지목하는 언론 보도가 적절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상대적으로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며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을 찍고 이유를 붙이기 시작하면 엉뚱한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정신장애의 경우 언론이 전문가라는 이유로 특정인의 과도한 주장까지 전하며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기도 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가 수많은 매체에 등장하는데 이 교수는 “이 사람이 정신병력이 있었던 사람인지 아닌지 이런 것들은 아직 수사가 돼 있지 않았다”며 정신병력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이 교수가 피의자의 병력을 진단하고 이 내용이 언론보도 제목으로 편집되기도 한다. 전문의들도 직접 진단을 하지 않은 채 정신질환 여부를 판단하는 게 부적절한데 범죄심리학자의 부정확한 주장을 언론이 여과없이 전하고 있다. 

소수자 정체성을 범죄 원인으로 손쉽게 규정했다간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번 범죄는 모방범죄 성격뿐 아니라 산업재해(노동재해)를 인정받지 못하는 등 피의자의 열악한 삶과 사회적 대우, 가정 환경과 개인적 성향 등 다양한 요인이 범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신장애 당사자 입장에선 흉악범죄 논란 때마다 반복되는 언론 보도를 집단적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한결 경기동료지원센터장(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위원)은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1995년 정신보건법(현 정신건강복지법) 제정 때부터 ‘빨리 치료하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서구사회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며 “정신장애인 절반이 기초수급권자이고 10%만이 직업 활동을 하는데 현재 정신장애 관련 사유로 자격·면허 취득 시 결격 사유로 규정한 법률은 모두 28개나 된다”고 말했다. “낭떠러지로 내몰면서 치료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정부에 결격 조항 폐지·완화를 권고했지만 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사자 입장을 외면하는 보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센터장은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면 비싼 돈을 내는데 고작 5분 만에 끝나고 약만 받아오니 갈 필요가 없고, 내 신체는 10대때 다르고 30대 때 다른데 ‘당뇨병 같으니 약을 잘 먹어라’라는 말만 하고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며 “이러니 치료를 기피하게 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도 의료 선진국이라고 하고 약을 대부분 서구에서 가져오는데 왜 한국만 정신장애인을 범죄자 취급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더 근본적으로는 개인 질병은 내밀한 개인 정보인데 이를 언론을 통해 공개부터 하면, 같은 질병이 있는 이들이 잠재적 범죄자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다. 현재 언론 보도가 범행 동기를 확실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묻지마 범죄’를 분석해 진지하게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과정에서 정신병력을 고려했다고 보기 어렵다. 피의자는 감형을 위해 정신병력을 이용하고 수사기관이나 언론은 사건을 명쾌하게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쪽에 가깝다. 

흉악 범죄가 벌어졌을 때 원인은 소수자들의 정체성으로 귀결된다. 또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지난 6월 구속된 정유정의 경우 그가 젊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성차별 보도가 많이 나왔고 사건 양상이 다른데도 또 다른 여성 범죄자와 연결하는 보도도 많았다. 당시에도 그의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여부를 두고 전문가 발언이라며 관련 기사가 보도됐지만, 정유정이 사이코패스인지 기사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중단해 흉악 범죄를 저질렀다’는 서사 끝에는 이들을 격리하자는 ‘대안’이 이어진다. 정부가 ‘사법입원’을 꺼낸 배경이다. 판사가 결정해 정신장애인을 강제 입원시키겠다는 발상인데 이는 현실성이 없고 반인권적이다. 정신장애인 본인의 동의 없이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정신보건법 제24조 1항 등에 이미 2016년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관련 법이 개정됐고, 사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위반이라며 국제사회에서는 정신장애인을 강제로 입원시키는 제도를 꾸준히 비판해왔다. 

▲ 지난 6일 JTBC '잇단 살인 예고글…학원가·지하철역 무장 경찰 배치' 보도 화면 갈무리
▲ 지난 6일 JTBC '잇단 살인 예고글…학원가·지하철역 무장 경찰 배치' 보도 화면 갈무리

물론 지금도 지방자치단체장이 결정권을 가진 ‘행정입원’ 제도가 있어 당사자 동의 없는 강제입원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강력한 대책을 위해 정부가 이번에 ‘사법입원’을 다시 꺼내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법입원제는 과거에도 논의가 있었지만 판사가 정신장애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의사들 판단으로 강제입원을 결정하는 제도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 센터장은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선동하면 오히려 사회적 고립과 방치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현재 정부와 언론의 논의 방안은 흉악 범죄에 대한 적절한 재발 방지책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지원책도 아니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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