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웅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39)은 더불어민주당이 반(反)기업 정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중도 민심을 잃지 않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을 주적(主敵) 삼는 운동권 정치로는 ‘51%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그는 지난달 4일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국민 정당으로 다시 거듭나기 위해선 무조건적인 친노총 기조와 무조건적인 을의 편에 서서, 갈등 조정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을지로위원회를 혁신하고 당내 만연한 온정주의를 깨부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겨냥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2013년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파견 노동자 등 우리사회 ‘을’ 위치의 서민과 노동자들을 대변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조직이다. 현재 을지로위는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한 박주민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고 민주당 의원 77명이 소속돼 있다. 당의 간판이자 거대 조직을 상대로 30대 청년 정치인이 노선 투쟁에 나선 것이다.

▲ 여선웅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여선웅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민주당 공채 당직자 출신인 그는 2014년 서울 강남구 의원에 당선돼 지방의정을 경험했다. 2018년엔 ㈜쏘카 새로운규칙그룹 본부장으로 영입, ‘타다’ 서비스의 대외 정책·이슈 대응 총괄을 맡았다. 승합차(11~15인승)를 활용한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에 대한 택시업계의 장송곡이 정치권을 포획한 2019년 6월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에 임명됐다. 2021년 1월엔 정치권을 떠나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 부사장으로 새 둥지를 텄다. 정치와 기업을 넘나든 긴 시간 동안 그는 IT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혁신할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왔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현재 을지로위가 하고 있는 업무 대부분은 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가 맡으면 된다”며 “현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은 한국노총 금융노조 위원장이 맡고 있는데 이미 구조적으로 노동계 입장을 반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을지로위가 노동 이슈를 주도하며 당 전면에 나서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노동’이 민주당 간판이 되면 국민 50% 이상의 지지가 필요한 전국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노동은 노동위에 맡기고 민주당은 중도 실용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유권자와 2030세대 눈에 “플랫폼 산업을 적대시하는 을지로위는 반(反)플랫폼·반기업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 대법원은 지난달 1일 여객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재욱 VCNC 대표와 이재웅 전 쏘카 대표에게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쏘카 보도자료.
▲ 대법원은 지난달 1일 여객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재욱 VCNC 대표와 이재웅 전 쏘카 대표에게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쏘카 보도자료.

대법원은 지난달 1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재욱 VCNC(타다 운영사이자 쏘카의 자회사) 대표와 이재웅 전 쏘카 대표에게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검찰은 타다를 ‘무면허 다인승 콜택시’로 간주했으나 법원은 ‘운전사가 딸린 합법적 렌터카’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타다 영업은 합법이라는 판결이다. 2018년 출시된 ‘타다 베이식’은 고객이 앱을 통해 탑승 장소와 이용 시간을 정하면 운전기사가 딸린 11인승 승합차를 빌려주는 서비스였다.

여객법 예외 규정을 활용해 승합차 호출 서비스를 제공했던 타다는 시장에선 큰 호응을 받았으나 기존 택시업계와 강하게 충돌했다. 타다 관계자들이 2020년 2월 1심에서 무죄를 받고 한 달 뒤 국회는 타다를 불법화하는 내용이 골자인 ‘타다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당시 민주당 을지로위원장 박홍근 의원이 주도했다. 대법원이 타다 관계자들의 무죄를 확정하자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타다의 승소가 국회 패소라는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반성문을 썼고, 이에 입법을 주도한 박홍근 의원은 “타다 서비스는 규제 받지 않는 택시 영업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혁신이라도 규제의 예외일 수는 없다”고 반발했다.

▲ 여선웅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은 지난달 12일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왼쪽)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타다금지법 폐기’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 여선웅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은 지난달 12일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왼쪽)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타다금지법 폐기’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여 전 정책관은 지난달 12일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타다금지법 폐기’를 선언했다. 그는 “타다금지법은 정책적으로나 시장에서나 잘못됐다는 게 증명됐다. 국회 스스로 혁신을 가로막은 과거 입법을 자성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만 제2의 타다금지법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규 기업 진입을 막은 입법이 되레 독점 시장을 가속화했다는 비판이다.

“앞서 택시 플랫폼과 택시업계가 크게 갈등을 빚을 때 정부와 정치권의 선택은 ‘택시 면허를 사라’는 것이었어요. 당시 쏘카는 스타트업이었고, 카카오모빌리티는 대기업이었죠. 추격을 당하는 입장인 모빌리티 시장 1위 카카오는 그만큼 자본이 있으니 정부안을 수용했고, 적자를 보고 있던 쏘카로선 수용하기 어려웠죠. 그 결과 모빌리티 시장은 카카오 호출 서비스 독점으로 재편됐죠. 혁신 기업 성장을 막은 정부가 카카오모빌리티 독점을 도와준 꼴이 됐어요.”

여 전 정책관은 내년을 벼르고 있다. 2024년 총선과 이어질 전당대회에서 제대로 된 노선 투쟁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의원 77명이 소속된 을지로위를 작심 비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 전 정책관은 “전당대회 때 민주당 지지자들과 당원들이 ‘여선웅 노선’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면서도 이보다 앞서 총선서 박주민 을지로위원장과 맞붙는 경선 구도 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민주당이 50% 이상의 국민 지지를 받기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더 외연이 확장돼야 한다”며 “나는 민주당이 ‘친기업’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권 세대들이 생각하는 기업상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재벌’인데, 너무 낡은 사고방식이다. 물론 이윤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재벌이 존재하지만 오늘날 혁신기업과 스타트업 성패는 좋은 개발자와 사람을 모시고 있는지 여부로 결정된다. ‘기업들은 무조건 노동자를 착취한다’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기업과 반기업’, ‘갑과 을’, ‘부자와 서민’식 이분법적 사고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 전 정책관은 노조의 투쟁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이 비통, 구찌 등 세계적 명품 기업이 잠수교, 경복궁 등 국내를 무대로 유례없는 패션쇼를 열어 화제가 된 적 있어요. 한류와 K-콘텐츠 저력을 보여준 사건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민들은 이들 패션쇼가 유발한 교통과 소음에 불편함을 호소하며 항의했어요. 국가적으로도 득이 되는 행사인데 시민들은 자기와 무관한 행사를 못 받아들인 거죠. 시대가 그만큼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노조가 시청에서 1박2일 노숙 투쟁을 한다거나 도로를 점거하는 시위 방식, 장애인 단체가 지하철 출근길을 가로막는 투쟁 방식이 얼마나 국민 지지와 호응을 얻고 있는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체들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투쟁 목적이 문제 해결이라면 말이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로 상징되는 국민의힘 청년 정치는 민주당보다 역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준석, 천하람 등은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 독주를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민주당의 젊은 정치인들은 과거 조국 사태나 이재명 사법 리스크 등 이슈에서 침묵하거나 늦은 대응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 여선웅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이 중앙일보 칼럼으로 을지로위원회를 비판하자 권지웅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정책위원이 반박에 나섰다. 사진=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 여선웅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이 중앙일보 칼럼으로 을지로위원회를 비판하자 권지웅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정책위원이 반박에 나섰다. 사진=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여 전 정책관은 민주당 청년 정치에 “운동권 계파가 당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민주당 청년 정치인들은 비판 목소리를 내기보다 침묵을 선택하고 그 대신 공천을 기다린다. 일례로 을지로위 비판은 나로선 소속 의원 77명을 적으로 돌린 것이다. 을지로위 소속 의원들이 추후 공천심사위원회에 한두 명이라도 참여하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가만히 있으면 운동권 계파 막내를 시켜주고 잘하면 공천도 받을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선 스스로 쟁취하지 않고 기다리려 한다. 기다리다 보면 이것저것 눈치를 보게 되고 결국 입을 닫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비단 청년 정치인뿐 아니다. 3선 이상 다선들도 당내 현안에 목소리를 하나도 내지 않는다. 공천을 받기 위해 숨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럴 거면 정치를 왜 하나 싶다”고 말했다.

여 전 정책관 생각에 민주당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권지웅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정책위원은 중앙일보 칼럼을 통해 여 전 정책관을 세게 비판했다. 권 위원은 “불공정과 불평등 문제를 현장에서 정면으로 다루는 몇 안 되는 정치 세력 중 하나가 그나마 있다면 그게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라며 “을지로위원회는 탄생부터 지금까지 ‘반기업’이라는 무수한 비판과 공격을 받으면서도 ‘불공정 피해자’를 대변하는 일을 묵묵히 해왔다”고 반박했다. 이어 “약자들의 편에 서서 정치를 해온 집단의 성과를 없애고 지우는 게 민주당의 혁신이라고 주장하면, 그 주장에 동의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며 “약자들의 편에 선 정치는 민주당 구성원이 스스로 깎아 내릴 것이 아니라 고쳐가고 살려가야 할 정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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