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인가, ‘후보’인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백브리핑 발언을 놓고, 금감원 공보국이 한 번 뱉은 말을 수습하려 보도 수정을 요청하고 이에 불응한 언론이 현장 녹취 음성까지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백브리핑은 ‘백그라운드 브리핑’(Background briefing) 줄임말로 공식 브리핑이 끝난 뒤 약식으로 진행하는 브리핑을 말한다. 이 원장은 과거 윤석열 검찰 사단의 경제 특수통이자 윤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만큼 언론 주목도가 높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굿네이버스에서 열린 우리카드 상생금융 출시 기념 취약계층 후원금 전달 및 소상공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굿네이버스에서 열린 우리카드 상생금융 출시 기념 취약계층 후원금 전달 및 소상공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원장은 지난달 29일 굿네이버스 회관에서 열린 ‘취약계층 후원금 전달식 참석 및 소상공인 간담회’ 후 이어진 백브리핑에서 차기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에 관해 발언했다. 그는 “솔직한 바람으로는 이번 KB지주 회장 선임 절차가 업계 모범을 쌓았으면 좋겠다”며 “그런 의미에서 평가 기준이라든가 후보 선정, 그리고 (후배 / 후보)에 대한 공평한 기회 제공이 합리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부탁과 기대가 있다”고 했다. 

이 원장 발언이 있은 29일 오전 연합뉴스 자회사 연합인포맥스를 포함한 다수 언론은 <이복현, 차기 KB금융 회장 선임에 “후배들에 기회 제공 필요”>라는 제목 등으로 보도했다. 금감원 설명에 따르면, 연합인포맥스 첫 보도를 본 이 원장은 본래 발언 취지는 ‘후배’가 아닌 ‘후보’였다며 기사 수정을 요청했고 원장 지시를 접수한 공보국이 기자단 공지를 통해 보도 정정 요청에 나섰다. 

금감원은 기자단에 “금일 원장님 백브리핑 답변 중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건 관련해 ‘후보’들에 공평한 기회를 제공(후략)으로 발언했으며 후배라고 발언하신 것이 아니니 보도에 참고해 주기 바란다”고 공지했다. ‘후배’라고 발언한 적 없다는 해명과 보도 정정 요청은 일부 언론의 반발을 샀다.

▲ 지난 6월29일자 아이뉴스24 보도 화면 갈무리.
▲ 지난 6월29일자 아이뉴스24 보도 화면 갈무리.

29일 오전 이 원장 백브리핑을 <이복현 “KB금융 회장, 후배들에게 공평한 기회 줘야”>라고 보도한 아이뉴스24는 같은 날 오후 <[이복현 원장 녹취 파일] 금감원에 기자단 공지 정정 요청>이라는 제목으로 이 원장의 현장 녹취까지 공개하며 기자단 공지 수정을 요청했다. 아이뉴스24가 이 원장 백브리핑 녹취 음성을 다시 확인한 결과 이 원장의 워딩은 ‘후보’가 아닌 ‘후배’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원장이 ‘후배’라고 발언한 적 없다는 취지의 기자단 공지는 잘못된 것이고 공지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아이뉴스24가 공개한 실제 이 원장의 현장 음성을 들어보면, ‘후보에 대한 공평한 기회 제공’보다는 ‘후배에 대한 공평한 기회 제공’에 가깝게 들린다. 발음이 뭉개져 ‘후보’보다는 ‘후배’ 또는 ‘후봬’로 들린다.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병수 아이뉴스24 기자는 “녹취를 들어보면 이 원장은 ‘후보 선정’을 언급한 뒤 ‘후배’라고 발언하는데, 금감원은 앞의 ‘후보’에 관해서만 해명 자료를 낸 것이기에 고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며 “(‘후배’라고 발언하지 않았다는) 기자단 공지가 잘못됐기 때문에 공지 내용을 수정하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사를 고칠 수 없고, 보도에 책임을 지기 위해 녹취를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후배’와 ‘후보’라는 단어가 그렇게 중요한 걸까. 이 해프닝을 전한 인터넷 매체 ‘월드경제’의 유상석 편집국장은 29일자 칼럼에서 “필자 역시 여러 경로를 통해 복수의 현장 녹취 파일을 확보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도 이 원장의 발언은 ‘후배’가 맞아 보인다. 금융 담당 기자들과 금감원 사이에 있었던, 어쩌면 ‘소동’ 정도로 보일 수 있는 이번 사건. 사실은 상당히 예민한 문제”라면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현재 KB금융그룹을 이끄는 이는 윤종규 회장이다. 2002년 3월 국민은행 CFO로 KB와 첫 인연을 맺은 윤 회장은 2010년 KB금융지주 부사장을 맡은 뒤 2014년 회장이 됐다. 이후 9년간 3연임하며 자리를 지켜왔다. 3번째 임기도 오는 11월이면 끝난다. 올해 하반기 금융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로 윤 회장의 4연임이 가능할 것인지 여부가 꼽힐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은 당연히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후배’인지 ‘후보’인지, 단어 하나 하나가 민감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많은 기자들이 받아들인 것처럼 ‘후배’라고 발언한 것이라면, 금융감독기구 수장이 윤 회장을 향해 4연임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아진다.”

김병수 기자도 “‘후보’가 아닌 ‘후배’는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후배’는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국면에서 논란을 부를 수 있는 표현이다. 기자단 공지를 수정하라는 요청은 그 부분을 명확히 하라는 의미였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 지난 6월29일 오후 아이뉴스24 보도 화면 갈무리.
▲ 지난 6월29일 오후 아이뉴스24 보도 화면 갈무리.

이태호 금감원 공보국장은 “(김병수 아이뉴스24 기자는) 기자단 공지 내용이 잘못됐기 때문에 정정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녹음을 공개하겠다고 했다”며 “만약 ‘후배’로 들린다면, 기존 아이뉴스24 기사를 정정하지 않으면 된다. 나머지 매체들은 금감원 입장과 공지 취지를 받아들여 대부분 기사를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설사 이 원장이 후배라고 발언했대도 (현 KB금융 회장의) 후임으로 지원하는 모든 분들을 지칭한 표현 아닌가”라며 “정말 중요한 사안이었다면 여타 언론도 기사를 수정하지 않았을 것인데, 대다수 언론이 수긍하여 기사를 수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후배’로 들렸다면 기사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된다. 녹취를 공개하고 그럴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