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약화되어 기사 작성·편집이 독자 반응에 큰 영향을 받게 됐고, 이런 현상이 정치 양극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지난 3일 보고서 <한국의 정치 양극화 : 유형론적 특징 13가지>(박상훈 연구위원)에서 국회의 최대 해결 과제로 정치 양극화를 꼽았다. 

보고서를 보면, 2009년과 2019년 두 차례 정치 양극화 기사가 크게 늘었다. 2009년 이전에는 정치 양극화란 단어는 북한 이슈와 관련한 ‘남남 갈등’이나 ‘영호남 갈등’을 가리킬 때 가끔 쓰였을 뿐 사실상 사용하지 않던 용어였다.

그러나 2008년 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갈등이 이듬해 국회에서 여야 폭력 충돌로 이어지면서 ‘정치 양극화’가 정치 의제로 떠올랐다. 당시 정치 양극화는 ‘정당 정치나 의회 정치가 관용 범위 밖으로 뛰쳐나가 정치가 해야 할 타협과 조정 대신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 것’을 뜻했다. 

▲ 정치 양극화 기사의 출현 빈도. 자료=국회미래연구원
▲ 정치 양극화 기사의 출현 빈도. 자료=국회미래연구원

2019년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제정과 공직선거법 개정을 놓고 여야 폭력 충돌이 있었다. 당시 국회의원 3분의 1이 넘는 109명이 고발됐고 국회가 80일 이상 열리지 못했다. 야당은 국회를 떠나 광장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정치 양극화가 국회의 일상 모습으로 굳어졌다. 

보고서는 한국의 정치 양극화의 13가지 특징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언론 문제도 등장하는데 언론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약화돼 독자 반응에 따라 기사 작성과 편집이 영향 받는 ‘게이트 오프닝’ 현상이 지배, 그 결과 강성 지지층 영향력이 여론 시장 전반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언론의 게이트 오프닝 현상으로 정당이 정책적 일관성과 책임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여론에 따라 움직여 부정적 양상을 만들고, 다른 한편으론 여론 지지를 높일 수 있으면 어떤 정책도 불사하는 무책임한 정당 정치로 이어진다는 진단이다.

팬덤 정치도 주요한 특징으로 언급됐다. 보고서는 팬덤 정치가 당내 다원주의를 억압하고 비합리적 공격과 욕설 정치를 가져와 최근에는 대의원제 폐지 및 팬덤 당원 중심의 당헌·당규 개정을 요구하는 등 민주적 정당 정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에 정당 내 파벌 양극화도 거론됐다. 보통 양극화는 정당과 정당 간의 거리와 갈등을 의미하는데 한국에선 정치 양극화가 정당 사이보다 정당 내부에서 더 심각하다. 당내 파벌은 최고 권력자 개인과의 거리감에 따라 나뉜다. 이를 테면 ‘친명과 비명’, ‘친윤과 비윤’ 등이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이런 양극화는 공존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혐오 정치 성격을 띤다. 국회 규범이 무시되고 동료 의원에 대한 예의가 실종된다. 야유, 경멸적 언어로 상대를 사납게 헐뜯는 무례한 의원들도 늘었다.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고 조정할 수 있는 의회 정치 기반이 좁아졌다는 지적이다.

의원들이 충돌하는 사이 국회가 대변하지 못하는 사회 갈등이 발생한다. 사실 경제성장을 두고 여야 사이 정책적 차이가 크지 않다. 2018년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이나 2019년 탄력적 근무제 사안에서 여야 사이 큰 갈등은 없었다. 사회경제적으로 중대한 갈등은 여야보다 국회와 국회 밖 사회운동 간 전개될 때가 많았다. 국회에서 여야가 ‘갈등 통합자’ 역할을 못해 시민들이 정치 전반에 불만을 갖게 되고, 이는 결국 국회를 불신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외에도 보고서는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 정치’, ‘정책이나 이념 차이보다 권력 이슈로 갈등하는 정치’, ‘법안 폭증과 과도한 입법 경쟁’, ‘대통령 의제가 갖는 과도한 지배력’, ‘정당의 낮은 자율성’, ‘열정적 지지자와 반대자가 지배하는 정치’, ‘소수 지배의 강화’, ‘양극화된 양당제의 출현’ 등을 한국 정치 양극화의 특징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결론으로 “달라서 고통 받는 독단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달라서 더 풍부해지고 더 깊은 사회적 통합을 가능케 하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적 양극화와 팬덤 정치에 대한 진지한 개선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국회 일각에선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 1월30일 여야 국회의원 130여명이 참여한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이 출범했다. 의원들은 출범 선언문에서 “대립과 혐오 정치를 끝내고 국민 최대 다수가 찬성할 수 있는 정치 개혁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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