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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이곳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립니다-북한 내부 주민과의 BBC 비밀 인터뷰' 보도 화면 갈무리. 

북한 주민 3명과 인터뷰에 성공한 BBC 보도가 공개 나흘 만에 유튜브에서만 320만 조회수(6월21일 낮 12시 기준)를 기록하며 높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며 BBC 보도를 호평하는 댓글도 1만 개 이상 달렸다. BBC는 22분 분량의 영상에서 애니메이션과 대역 배우를 활용해 신원을 공개할 수 없는 북한 주민 인터뷰를 내보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중국 국경 부근에서 약을 밀수해 판매하고 있는 명숙(가명)씨는 “코로나 이전 삶은 안정적이었으나 코로나 이후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국경 너머 물품 밀수가 어려워졌다. 한번은 잡혀서 (단속) 관계자를 돈으로 매수해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식량 상황이 이 정도로 나빴던 적은 없다. 너무 배고파서 집 문을 두드리며 음식을 나눠달라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정권은 코로나를 핑계로 국경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지금은 강을 건너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중국 국경 부근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찬호(가명)씨는 “마지막 국가 식량 배급이 아주 오래전 일이다. 마을에선 5명이 굶어 죽었다”며 절망적 상황을 전했다. 그는 “한 가족은 엄마가 아파서 일을 할 수 없어 아이 두 명이 구걸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결국 셋 다 죽었다. 공식적으로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집계됐다”고 전했으며 “또 다른 가족은 엄마가 코로나 격리 규칙을 어겨 중노동에 처하는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고 그와 그의 아들은 굶어 죽었다”고 전했다. 그는 “고난의 행군 때도 힘들었지만, 당시 정권이 통제력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에 지금 같은 강력한 탄압과 처벌은 없었다”고 밝혔다. 

▲Gettyimages.
▲Gettyimages.

평양의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지연(가명)씨는 “(예전엔) 과일과 채소를 조금 빼돌려 시장에 팔아 쌀을 샀지만 이젠 뒷주머니를 채울 수 없다. 우리는 굶더라도 아이들은 먹이겠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 한번은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물만 마셨다”며 절박한 현실을 전했다. 그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길거리에) 누워있으면 사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라고 전했으며 “코로나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 전쟁이 난다면 사람들은 정권을 배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경봉쇄는 주민들의 삶을 20년 전으로 되돌려놨다. 굶지 않고 이웃들이 죽지 않고 서로를 감시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밝혔다.

지연씨는 “요새 해외 영상물을 시청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엄벌 대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조심스러워졌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위반 여부와 관련해 심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로는 남들에게 제 생각을 절대 밝히지 않는다. 이제 사람이 더 무섭다”고 전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을 처벌하는 방식은 특히 더 살벌하다”며 “평양 법원에서 지역 지도자들이 모여 22세 남성에 대한 공개재판을 진행했다. 그 남성은 남한 음악과 영화를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결국 10년 3개월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2020년 이전이었다면 1년 교화형 정도로 조용히 지나갔을 재판이다. 사람들은 처벌 수위가 높아졌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고 전했다. 

▲진 멕켄지 BBC뉴스 서울특파원의 모습. 
▲진 멕켄지 BBC뉴스 서울특파원의 모습. 

 

BBC, 취재 과정 상세히 전하며 북한측 반론도 담아

진 멕켄지 BBC뉴스 서울특파원은 “북한 전문 언론 매체 데일리NK와 협력해 지난 몇 달간 우리는 북한 내 취재원과 수백 개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인터뷰에 응해준 주민의 신원과 안전 보장을 위해 조각난 정보가 메시지에 담겨 전달됐다”며 취재과정을 상세히 전했다. 그는 “데일리NK 정보원들은 주민 3명을 만나 BBC 질문을 전달하고 답변을 받아 전달해줬다”고 했으며 “주민 3명 모두 서로의 이야기를 확증해줬다”고 덧붙였다. 이어 “주민들의 신변을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당시, 이들은 모두 안전하게 지내고 있었다”고 전했다. 

북한은 세계 최악의 언론 통제 국가다. BBC는 “북한 주민들은 정권이 말해주는 것을 믿는 것 외에 선택지가 많지 않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세상을 접하는 수단은 USB 등을 통해 밀수되는 해외 영상물 정도”라고 전한 뒤 “김정은은 2020년 말 해외 영상물을 공유하는 자를 처형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북한의 국경봉쇄는 김정은이 영상물 반입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보도했다. 수미 테리 전 CIA 한반도 선임 분석관은 BBC를 통해 “이 정권은 억압을 통해 살아남는다. 정보당국과 현장 전략을 통해 정보를 완전 차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찬호씨는 탈북을 시도한 사람들이 비공개로 처형당하고 있다면서 “사람들은 이곳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TV 선전을 믿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대놓고 한다. 정권을 통째로 제거해야만 사람들이 살 수 있다”고 밝혔다. 고위공직자(북한 대리대사) 출신의 탈북민 류현우씨는 BBC와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은) 북한 주민들의 의식의 변화를 가장 두려워한다”고 밝혔다. 

BBC는 “본 취재를 통해 수집한 정보에 대해 북한 정부에 문의한 결과 북한 런던 대사관 대표자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며 북한의 입장을 담기도 했다. 북한은 “취재진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안에서 모은 정보가 모두 다 진실은 아니고, 반조선세력들이 조작한 이야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어려운 시기에도 인민의 요구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인민의 안녕을 위해 흔들림 없이 헌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BBC가 북한 정부의 반론권을 보장한 대목으로, 국내 언론보도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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