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코로나19 발원지 중국 우한(武漢)시에서 귀국한 교민 모습을 담은 뉴스통신사 사진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격리된 이들의 생활을 포착한 여러 사진이 “초상권 침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우한시 교민의 귀국은 전 사회 이목이 집중된 이슈였지만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 앞에서 통신사 사진의 ‘공적 성격’은 입도 못 떼어보고 쉽게 부정됐다.

법원은 동의 없는 촬영의 위법성에 대해 개별 사안마다 ‘초상권 보호’와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이익을 따져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인 다수는 동의 없는 공개 그 자체로 초상권 침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초상권 침해를 주장하면 소액이라도 배상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는 사례가 쌓이고 있는 데다가 법원 판결 역시 사안마다 엇갈리고 있어서다.

그렇다 보니 신문이든 방송이든 ‘모자이크 처리’라 불리는 화면 흐림처리가 넘쳐난다. 언론사마다 흐림처리 기준과 판단이 다르고, 엉뚱한 화면에 흐림처리를 해도 초상권 때문인지 그 연유를 알 수가 없다. 누군가 불만을 제기할 때 어떤 기준에 따라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보니 불필요한 분쟁이 빚어지고 저널리즘 품질은 저하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에 등장인물이 모조리 흐림처리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 앞에서 영상과 사진의 ‘공적 성격’은 입도 못 떼어보고 부정되곤 한다. 사진=PIXABAY 제공.
▲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 앞에서 영상과 사진의 ‘공적 성격’은 입도 못 떼어보고 부정되곤 한다. 사진=PIXABAY 제공.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지난 19일 제주에서 열린 언론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 초상권에 관한 최근 판례를 분석하여 판례 기준이 언론 실무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발표했다. 

심 교수에 따르면, 최근 법원 판결에 변화의 기류도 엿보인다. 이를테면, 출근길에 광역버스 입석 승차 금지의 영향을 취재하는 기자와 인터뷰한 시민이 보도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인터뷰였다며 초상권 침해를 주장했는데 청구가 기각됐다. 이는 지난 2015년 판결로 재판부는 △인터뷰의 취재 형식이나 방법 △방송 내용과 목적 △원고의 초상이 방송에 노출된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적 사안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원고가 시민 불편을 언급하는 화면이 방송됨으로써 발생하는 객관적 손해는 상대적으로 경미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촬영이 이뤄지기만 하면 침해가 발생한다는 초상권의 기존 법리와는 차이가 있다. 

심 교수는 지난 4월 선고된 초상권 침해 관련 대법 판례도 주목했다. 대법은 초상권 침해 일반 기준으로 △피해자가 공적 인물인지 일반 사인인지 △공적 인물 중에서도 공직자나 정치인 같이 광범위하게 국민 관심과 감시 대상이 되는 인물인지, 아니면 단지 특정 시기 한정된 범위에서 관심을 끌게 된 데 지나지 않는 인물인지 △보도된 내용이 피해자의 공적 활동 분야와 관련된 것이거나 공공성·사회성이 있어서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고 공론 필요성이 있는지 △공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데에 피해자 스스로 관여한 바가 있는지 등을 이익형량의 주요 고려 요소로 제시했다.

최근 대법원 판결을 포함해 기존 판례들을 기준으로, 앞서 사례로 든 코로나19 교민 사진에는 어떤 판단을 해볼 수 있을까. 심 교수는 “이 사안은 고도의 사회적 관심사였고 사회적 지지와 관심도 필요한 사안”이라며 “그렇다면 통상의 방법으로 이들이 평균인 시각에서 거부할 만한 내용의 초상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모습을 촬영해서 보도하는 것을 법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다만 심 교수는 “숙소에서의 생활상을 망원렌즈로 촬영하는 것과 자연스럽게 공개적으로 노출된 모습을 촬영하는 것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들 취재에 있어서 보호해야 할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의 구분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고민 없이 모조리 흐림처리 또는 촬영 전면 금지로 귀결되는 일련의 현상에 대한 우려인 셈.

길거리 등에서 자연스럽게 노출된 모습의 촬영도 “언론 기능에 무게를 두는 판단이 가능하다”는 게 심 교수 판단이다. 그는 “촬영이 공개적으로 이뤄진 경우, 또 촬영된 내용이나 초상이 사용된 맥락이 일반적인 사람의 감수성에 비춰 특별히 불쾌하다고 느낄 내용이 아니면 추상적으로 초상권 침해가 인정되더라도 언론 기능에 더 무게를 두는 판단이 가능하다”며 “일반인 초상은 동의가 없으면 무조건 촬영·작성 거절권과 공표 거절권 침해가 면책 가능성 없이 성립한다는 형식적 논리만 벗어난다면 얼마든지 이런 방향의 이익형량이 가능하다. 혹시라도 초상권 침해 문제가 생길까봐 길거리 사진을 모조리 흐림처리하는 언론 관행 개선하기 위해 대법원이 더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심 교수는 집회 참석자를 흐림처리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사협회나 간호사협회 등이 간호법 제정을 둘러싸고 집회를 벌이는 장면을 보도하면서 화면을 흐림처리한 것은 사안의 성격 등을 봐서도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더구나 앵커의 배경화면에 사용한 집회 장면은 흐림처리하고 기자의 보도 부분은 흐림처리 없이 사용한 것은 언론사 뉴스룸에서 얼마나 이 문제를 혼란스러워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했다.

심 교수는 이어 “법과 상관없이 언론사가 자체적 판단이나 주최 측과의 약속 등을 통해 집회 참석자를 흐림처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적어도 법적 판단 기준은 집회 시위의 자유를 누리는 행위는 특별히 왜곡 등의 문제가 없다면 초상의 촬영과 공표에 대한 묵시적 동의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심 교수는 “법원이 초상권 침해 기준 중요성을 공감하고 각 행위자들에게 구체적 행위 기준을 제시해주는 게 중요하다”며 “언론도 제대로 된 원칙적 대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상황에 보다 원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당장 제기되는 불만을 무마하는 데 급급한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 납득할 만한 원칙을 갖지 못한 채 편의적 일처리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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