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인 뉴스 조직은 모든 공동체를 존중하고, 그들의 뉘앙스(미묘한 차이)를 포용하고 세심하게 다루는 데에 노력해야 한다. 특히 소외된 커뮤니티나 취약 계층이 직면하는 위험과 편견이란 맥락을 다룰 땐 더 그렇다. 하지만 그렇대도 저널리즘이 항상 그 집단이 원하는 방식을 반영하거나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이슈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NYT) 발행인 겸 회장인 A.G. 설즈버거(Arthur Gregg Sulzberger)가 지난 15일(현지 시각)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CJR)에 발표한 에세이가 화제다.

설즈버거는 ‘저널리즘의 본질적 가치’(Journalism’s Essential Value)라는 이름으로 독립 저널리즘(independent journalism)의 조건과 작동 방식, 독립 언론이 직면하게 되는 난관과 현실, 나아갈 방향을 A4 용지 21장 분량으로 게재했다. 

▲뉴욕타임스 발행인 겸 회장인 A.G. 설즈버거가 지난 15일(현지 시각)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CJR)에 발표한 에세이가 화제다. 사진=CJR 화면 갈무리.
▲뉴욕타임스 발행인 겸 회장인 A.G. 설즈버거가 지난 15일(현지 시각)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CJR)에 발표한 에세이가 화제다. 사진=CJR 화면 갈무리.

민주당 지지자들을 불편하게 한 보도

설즈버거는 2018년 9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관한 NYT 보도로 운을 뗐다. NYT는 미 법무부 2인자였던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이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트럼프 행정부 각 부처 장관들에게 대통령을 몰아낼 방안을 제안했다는 연방수사국(FBI) 국장대행의 메모를 폭로했다.

설즈버거는 이 보도에 대한 보수(the right)의 분노는 예상 가능했으나 진보(the left)의 격분에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진보 진영은 NYT 보도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로젠스타인 부장관을 해임하여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 수사를 종결할 명분을 줬다고 혹평했다. 보도 핵심인 정확성에 대한 시비가 아닌, 보도의 정치적 오용을 우려한 비판이었다. 

설즈버거는 “평소 독립 저널리즘을 지지하던 사람들조차도 NYT가 이번 사건에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잘못된 중립을 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자들은 기자들의 무모함을 비난했고 심지어 반역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며 “이런 반응을 지켜보면서 독립 저널리즘에 대한 커지는 압력보다 NYT 비판에 내재돼 있는 까다로운 요구 사항을 더 우려하게 됐다”고 했다. 

사실을 좇다보면 마주하는 불확실성과 논쟁

설즈버거에 따르면, 언론 독립성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좇겠다는 저널리즘적 약속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 그 자체다. 이는 논쟁의 한 쪽에 유리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실을 명확히 기술할 것을 요구한다. 만약, 그 사실이 불분명하거나 합리적 이견이 있을 땐 단정적 결론 대신 논쟁의 여지와 모호함을 신중히 전달, 독자가 불확실성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대로 ‘불편한 진실’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설즈버거는 “독립성의 가장 확실한 신호 가운데 하나는 독자들이 기대하지 않거나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는 것”이라고 표현하며 NYT 예시를 들었다.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박해를 다뤄온 NYT는 난민 캠프에 있는 네 자매 이야기를 보도하려 했다. 자매들은 기자에게 군인들이 어떻게 자신의 집을 불태웠는지, 어떻게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를 납치했는지 털어놨는데 이들이 말한 내용 가운데 일부는 사실이 아니었다. 설즈버거는 “혼잡한 난민 수용소에서는 고아가 된 자매들이 모든 재산을 잃은 온전한 가족보다 동정을 얻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고 했다.

이를 취재했던 한나 비치 NYT 기자는 자매들의 주장을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이다. 가족을 먹이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면서도 “하지만 거짓된 이야기는 살인, 강간, 집단적 마을 방화 등 미얀마군이 로힝야족에게 가한 진정한 공포를 평가절하한다”고 지적했다. 설즈버거는 “고통 받는 난민 어린이가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수백만을 박해하는 독재자가 실제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로 기소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뉴욕타임스 본사 건물.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뉴욕타임스 본사 건물.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고통 받는 난민 어린이가 진실 말하지 않을 수도

독립 저널리즘은 역동적인 소셜 미디어 확산으로 뉴스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 시민 활동가, 언론인, 인플루언서 등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를 대변하며 언론의 결정을 공개 비판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특히 소수자 정체성을 띤 커뮤니티 요구는 강력하다. 설즈버거는 “많은 소수자 그룹은 주류 뉴스 조직이 자신의 커뮤니티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논란과 비극의 순간에만 주목한다고 생각한다”며 “때때로 이런 그룹은 긍정적인 이야기에 집중해 자신의 커뮤니티를 고무해달라고 언론인에 요청하기도 한다. 때로는 커뮤니티 구성원만이 커뮤니티를 공정하게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하며, 커뮤니티를 취재할 때는 어떤 언어와 프레임을 사용해야 하는지 기자들을 재교육하기도 한다”고 했다. 

설즈버거는 “소외된 커뮤니티나 취약 계층이 직면한 위험과 편견”을 다룰 때는 “존중, 뉘앙스(미묘한 차이),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고 하면서도 “저널리즘이 항상 그 집단이 원하는 방식만 반영하거나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이슈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설즈버거가 말하는 언론 독립성을 일각에선 ‘양비론’이라고 비판한다. 낙태권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첨예한 이슈에서 양측 입장을 소개하고 알리면, 다른 한 쪽을 훼손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설즈버거는 양비론이라는 공격에 대해 “언론인으로 하여금 특정 이슈를 확정된 사실로 취급하도록 요구함으로써 논쟁을 피하도록 하여 결국 논쟁에서 이기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설즈버거는 ‘양비론’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을 겨냥해 “여러 가지가 동시에 진실이고 중요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광범위한 보도 내용을 가장 진실하고 중요한 것에 관한 단일 진술로 축소하려는 시도”라며 “저널리스트는 잘못된 동등성의 위험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만 오늘날 더 큰 저널리즘적 위험은 기자들이 이야기의 다른 측면을 드러낼 수 있는 새롭고 진화하는 사실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는 것이다. 이보다 더 나쁜 경우는 저널리즘적 일방주의를 적극 수용해 자신이 의로운 편에 서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의로운 편에 서 있다는 착각은 편향으로

설즈버거는 일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키고 러시아 군이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우크라이나 군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집속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를 보도하는 건 “우크라이나도 나쁜 짓을 했다”는 도덕적 비난을 위해서가 아니라, 분쟁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설즈버거는 이번 에세이 발표 전 미국 공영 라디오 NPR(National Public Radio)과의 인터뷰에서도 정부의 협박, 기업의 영향력, 정파적 의제, 기자의 개인적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저널리즘’을 강조했다. 그는 “언론인들은 자신이 의로운 편에 있다는 걸 너무 보여주고 있다”며 “나는 그것이 사각지대와 에코 체임버(Echo Chamber·자신이 좋아하거나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만 소통하면서 편향된 사고를 갖는 현상)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자와 편집자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다. NPR은 설즈버거의 이번 공개 발언에 “미투와 사회 정의 운동이 NYT를 포함한 주요 뉴스룸 조직 내에서 더 큰 활동가적 정서를 불러일으킨 후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설즈버거가 기치로 내건 독립 저널리즘에 이견과 비판도 있다. NPR에 따르면, 퓰리처상 수상자인 웨슬리 로워리(Wesley Lowery)는 NYT와 설즈버거가 편견을 회피하는 데 집중하는 까닭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구독자들에게 매력적이고, 공격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제공하고자 하는 욕구를 꼽았다.  

로워리는 트렌스젠더 청소년을 다룬 NYT 보도를 지적하며 “어떤 이슈에 대한 보도는 해당 기사 자체의 맥락만 고려할 것이 아니다. 뉴스 조직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더 큰 맥락에서 기사가 어떻게 부합하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1986년 설립된 미 언론감시 단체 페어(FAIR)의 수석 애널리스트 겸 편집장인 줄리 홀러(Julie Hollar) 역시 트랜스젠더 아동 치료에 관한 NYT 보도가 젠더를 범죄화하고 제한하는 데 정당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 보도가 성전환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과장·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A.G. 설즈버거(Arthur Gregg Sulzberger). 사진=flickr(world economic forum)
▲ A.G. 설즈버거(Arthur Gregg Sulzberger). 사진=flickr(world economic forum)

“더 나은 세상 위해 십자군 전쟁 벌여야 할까?”

설즈버거는 에세이에서 “나쁘거나 위험한 견해를 가진 이들을 기사에 포함하거나, 이들이 오피니언 섹션에 기고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 자체가 세상을 더 나쁘고 위험하게 만든다는 개념”을 ‘플랫폼화’로 표현하며 비판했다. 이를 테면, NYT가 무책임하게 혐오주의자들의 글을 싣는다는 지적에 설즈버거는 위험한 의견을 공유하는 것이 곧 그 의견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반면 홀러는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신문사가 혐오스럽거나 위험한 의견을 비난하지 않고 공유한다면, 그 의견에 반드시 동의한다는 의사 표현을 한 것은 아니래도, 그 의견을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관련 시위에 군 투입을 주장한 톰 코튼 상원의원 기고를 실었다가 사과한 적 있다. 홀러는 그때를 상기시키며 “(의견 공유 여부는) 뉴욕타임스가 가진 중요한 권한으로 신중하게 행사돼야 한다”며 “어떤 견해가 정당화돼야 하는지에 이견을 가진 이들을 검열자라고 주장함으로써 이 문제를 손바닥으로 가려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설즈버거는 앞서 NPR 인터뷰에서 “업계 안팎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널리스트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세상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할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벌여야 할까?” 독립 저널리즘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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